'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과유불급 아쉬움만 남기다
[김준모 기자]
▲ <키리에의 노래> 포스터 |
ⓒ 미디어캐슬 |
10월 스튜디오 지브리를 이끌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선보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재패니메이션 열풍을 이어가며 극장가에서 화제다. 그리고 11월, 다음 타자로 또 다른 거장이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영화, <러브레터>의 감독 이와이 슌지의 신작 <키리에의 노래>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선을 보인 <키리에의 노래>는 3시간의 디렉터스 컷을 1시간 분량 가량 줄인 2시간 버전으로 개봉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지진이 남긴 상흔을 지닌 세 명의 청춘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휴머니즘의 따뜻한 위로보다는 아픔이라는 새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자신을 찾을 것이란 희망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 선 존재는 길거리 뮤지션, 키리에다.
키리에는 말을 잃고 노래로 소통을 한다. 루카가 뮤지션으로 키리에라는 활동명을 쓰는 이유를 작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담아낸다. 첫 번째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죽은 언니에 대한 추억이다. 루카의 언니 키리에는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다. 그 아픔을 루카는 키리에가 되어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두 번째는 종교적인 의미다. 키리에는 천주교에서 미사가 시작되는 부분의 성가 '자비송'과 같은 단어다. 노래를 통한 평화와 안정의 추구를 키리에라는 단어에 담았다.
▲ <키리에의 노래> 스틸컷 |
ⓒ 미디어캐슬 |
키리에 역으로 아이나 디 엔드를 캐스팅한 이유는 그녀의 독특한 음색에 있다. 키리에의 노래는 온몸에서 쥐어 짜내는 듯한 비명 같은 소리에 가깝다. 이 목소리는 도입부 눈이 덮인 거리 위를 걷는 키리에와 잇코, 그리고 열린 새장을 통해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간절한 외침임을 보여준다.
집 없이 노숙을 하며 버스킹을 이어가는 키리에의 모습은 그 어떤 공간도 허락받지 않은 절망으로 읽힐 수 있다. 작품은 넓고 푸른 하늘 아래가 모두 키리에의 집이라는 희망의 의미로 변화를 시도하며 시린 겨울과도 같은 지진의 상흔에 갇혔던 소녀가 어떻게 새장 밖으로 나올 수 있을지를 암시한다. 점점 자신의 목소리로 대화할 수 있게 변해가는 키리에의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표현하고 보듬어 주는 거장만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 <키리에의 노래> 스틸컷 |
ⓒ 미디어캐슬 |
잇코는 키리에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우정을 나누는 인물이다. 그녀 역시 마오리라는 이름 대신 잇코를 쓴다는 점, 사기 혐의를 받고 사라진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사연이 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런 잇코의 드라마는 키리에와 엮이는 부분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캐릭터에 대해 감정을 이입하거나 그 사연을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때문에 키리에가 잇코를 통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서사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이런 점은 나츠히코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언니 키리에와 사랑을 나누며 결혼까지 약속했던 사이이자, 동생 루카와 원치 않는 이별을 반복하는 인물이다. 그의 서사 역시 키리에 그리고 루카와 엮인 부분만 조명이 된다.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나츠히코가 겪는 개인적인 고민이나 아픔은 보여주지 않으며 남매의 서포트 역할에만 철저하게 머문다. 특히 루카와 엮이는 장면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품은 감정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시간조차 작품은 허락하지 않는다.
▲ <키리에의 노래> 스틸컷 |
ⓒ 미디어캐슬 |
<키리에의 노래>는 '이와이 월드'로 불리는 이와이 슌지가 선보여 온 감성들의 집합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은 <릴리 슈슈의 모든 것>, 현대인의 소외와 단절이 일부 반영되어 있다는 점은 <립반윙클의 신부>, 플래시백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은 <레브레터> < 4월 이야기 > <하나와 앨리스>를 잇는 감성 이와이 작품 <라스트 레터>를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들을 지녔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방대한 이야기와 시대의 아픔을 담은 메시지, 심혈을 기울인 버스킹 장면까지 모두 넣으려다 보니 욕심은 지나치고 관객에게 전하는 인상은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 되고야 말았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담은 이야기와 세 명의 인물 모두가 주제의식과 관련된 감성을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보다 시리즈물로 제작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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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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