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판단은 우리가 한다'... 윤석열 정부의 전체주의적 오지랖

유현재 2023. 10. 3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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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윤석열 시대, 언론은 좋아졌나 ②] 정부 주도의 '가짜뉴스-허위정보' 관련 정책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6개월. 정부여당은 언론을 의심했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고. 공영방송의 인적·소유 구성을 바꾸려 했고, 각종 정책적 조치도 뒤따랐다. 국회에서 집권당 국회의원들은 때로는 공세로 프레임을 만들었고, 때로는 정부의 조치에 힘을 실어줬다. 새 정부 1년 반을 즈음해 '그래서 한국 언론은 나아졌는가'를 세 차례에 걸쳐 진단한다. <기자말>

[유현재 기자]

▲ '방송장악 규탄' 내건 민주당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 한국교육방송공사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정권 방송장악 규탄한다', '공영방송 낙하산사장 결사반대' 손팻말을 내걸고 있다.
ⓒ 남소연
 
(* 지난 기사 <'전무후무한 1년 6개월... 국경없는기자회의 선견지명'>에서 이어집니다.)

나만 빼고 개혁

윤석열 정부는 '가짜뉴스'에 대한 경계를 유별나게 드러냈다. 대통령이나 정부 그리고 집권당에 불리한 보도는 '가짜뉴스'로 낙인 찍히기 일쑤였고, 정부여당을 검증하는 팩트체크 보도는 '불편부당'의 가치를 상실한 나쁜 보도가 돼버렸다. 

가짜뉴스나 허위정보가 전혀 없는 사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최소한 가짜뉴스가 지속적으로 유통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가짜뉴스 확산 방지의 노력은 성숙한 민주사회를 위한 핵심요소다. 그런데 가짜뉴스 자체도 문제지만, 분열이 일상이 된 한국 사회에서 '내게 불리한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프레이밍해 공격의 수단으로 삼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다. 한편으로 제기된 주장이나 정보를 두고 검증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언론이 확성기 혹은 녹음기 역할에 몰두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최근 팩트가 아닌 가짜뉴스에 대해 추상같은 단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폭 늘어난 것은 명확하다. 일례로 국회 과방위 소속 여당 의원들과 방통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짜뉴스 근절 입법청원 긴급 공청회(10월 19일)'가 열렸고, 국민의힘 내부엔 이미 '미디어정책조정특위/포털TF'도 설치돼 운영 중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류희림)가 지난 9월 26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현판식을 하고 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문체부 산하 한국언론진흥재단에는 올해 5월부터 '가짜뉴스 신고센터'가 개설됐으며, 방통위는 방심위에 '가짜뉴스 신고창구'를 개설해 접수순서에 상관없이 빠르게 심의하는 '원스톱 패스트트랙'을 구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심의 단계가 시작된 보도 콘텐츠에 대해서는 아예 '심의중'이라는 딱지를 달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가짜뉴스의 근절에는 일말의 이견도 없다. 그러나 최근의 '때려잡자' 수준으로 쏟아지는 정부 정책의 특징은 상당히 명확해 보인다. 하나는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과업의 주체가 모두 정부, 즉 '관'이라는 사실이다. 가짜뉴스·허위정보에 대한 판단을 정부 권한으로 수렴시켰다는 점이다. 민간이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영역은 없다. 다른 하나는, 일련의 개혁 그 어디에도 '자신'은 포함돼 있지 않다. '나만 빼고 개혁'이다. 

'판단은 우리 정부가 한다'는 오지랖

이런 환경의 영향일까. 2018년 이래 32개 언론사가 SNU팩트체크센터와 협업해 네이버에 게재되던 '팩트체크'가 중단됐다는 사실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네이버는 2018년 이래 뉴스홈에 지속적으로 게재하던 '팩트체크' 메뉴를 9월 26일부로 종료해 버렸다. 물론 팩트체크를 위한 재정지원도 모두 중단한 상태다. 32개 언론 소속 팩트체커들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보수를 지향하지 않는다. 진보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팩트를 지향한다"는 메시지로 중단의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팩트체크 기사의 질적 저하가 있어서 오히려 공공의 이익에 해가 된 것도 아니었다. 모든 팩트체크 기사엔 검증근거가 첨부돼왔으며, 2017년 기사 검증의 근거수 약 0.5개에 비해 2023년 작성 기사의 경우 평균 8개의 검증 근거를 담아냈다. 보도의 품질이 올라갔다는 이야기다. 
 
 네이버에서 9월 26일 서비스 중단을 앞둔 '팩트체크' 코너. 네이버는 지난 2018년 1월부터 SNU팩트체크센터와 제휴해 팩트체크 코너를 운영해 왔다.
ⓒ 네이버
 
SNU팩트체크센터를 통해 생산된 기사는 보수-진보 같은 진영논리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팩트체크 기사의 모범사례를 뽑는 SNU 팩트체크 우수상에는 MBC도, TV조선도 사이좋게 이름을 올려왔다. 

이런 한국의 팩트체크 보도 스타일은 SNU팩트체크센터를 매개로 다수 언론사가 참여하는 'K-팩트체크 모델'로 다른 국가나 문화권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 사례로 평가할 만한다. 여기에 네이버 같은 플랫폼 기업의 지원이 이뤄지는 것인데, 이는 메타(Meta) 등이 여러 팩트체크 기구를 지원하는 세계적 추세와 동일하다. 네이버가 팩트체크 보도를 지원하는 게 유별난 일이 아니란 이야기다. 

K-팩트체크 모델의 난항은 현재 국제적으로도 지탄을 받고 있다.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의 디렉터 엔지 홀란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팩트체크에 대한 정치권의 공격은 세계적 추세이며, 한국도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진단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는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고했다. 

SNU팩트체크센터에 기사를 올리는 팩트체커들은 "허위정보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사회 문제로 떠오른 최근 상황에서, 플랫폼 기업이 질 높은 정보를 유통시키는 것은 사회적 책무이자 세계적 추세다. (중략) 네이버의 일방적인 팩트체크 종료는 공익을 위해 언론사와 플랫폼이 함께 만들어 온 사회적 산물을 파괴"한 것이라며 중지의 이유를 밝히라고 촉구한 상태다. 

네이버는 표면적으론 '다른 서비스 띄우겠다'는 메시지를 내고 있지만, 실상은 정부의 강한 정책 드라이브에 눈치를 보는 것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13일 <기자협회보>에 실린 김보라미 변호사(법률사무소 디케)의 "포털은 지금 바람보다 빠르게 눕고, 바람보다 더 낮은 자세로 기어가고 있다"는 평가는 눈여겨 볼 만하다. 

다시 말해 정부의 '언론 손보기'에 한국 언론 기사의 가장 큰 유통 창구인 포털이 자율적인 결정을 내리기보다 '소나기를 피하자'는 성격의 결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방통위가 희망하는 대로 이미 언론중재위원회 등 관계기관 심의상태나 결과에 대한 안내 위치를 최상단에 강조해 노출하는 방식으로 뉴스 서비스를 개편했다. 

민주주의 국가 중 정부기관이 가짜뉴스 여부를 판단하는 나라가 존재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팩트체크의 가치, 가짜뉴스의 해악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팩트를 확인하고 가짜를 규정하는 주체와 이 과정의 설정은 더욱 중요한 영역이다. 자칫 정부가 국민의 사고를 지배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오만한 오지랖을 떠는 순간 민주주의는 그들 스스로가 문제라고 하는 '전체주의'로 진입하기 마련이다.
 
 14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청운관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2023 가을철 정기학술대회 특별세션으로 마련된 '언론 자율성의 위기, 한국의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돌아보다' 현장. 왼쪽부터 정은령 SNU팩트체크 센터장, 박기묵 노컷뉴스 기자, 김경희 한림대학교 교수, 서수민 서강대학교 교수, 홍혜영 TV조선 기자, 이웅 연합뉴스 기자.
ⓒ SNU팩트체크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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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유현재씨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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