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책임을 외국인에게 떠넘기다... 차별의 건강보험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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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 헌법재판소. |
ⓒ 권우성 |
헌법재판소는 9월 26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외국인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차별문제에 대한 결정(2019헌마1165)을 선고했다. 이번 결정에선 크게 세 가지 쟁점이 다뤄졌다.
첫째, 내국인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경우 건강보험료를 6회 이상 체납하고, 건강보험공단이 별도의 급여제한 처분을 해야만 비로소 보험급여가 제한된다. 체납된 보험료에 대한 분할납부 승인제도가 마련돼 있어, 분할납부 승인을 받은 보험료를 1회 이상 납부하면 급여제한 기간을 포함해 소급적으로 보험급여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가입자가 건강보험료를 체납하는 경우 국민건강보험법 제109조 제10항에 따라 내국인과 달리 다음 달부터 곧바로 보험급여가 제한된다. 이러한 '보험급여 제한'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외국인을 차별하여 평등권을 침해하는지가 다퉈졌다.
둘째,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라 외국인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경우 실제 소득 또는 재산과 상관없이 전년도 가입자 전체 보험료 평균을 고려한 금액('평균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평균보험료는 12만3080원인데, 내국인의 경우에는 '최저보험료를 기준으로 할 때' 1만3980원으로 9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외국인 지역가입자에게 내국인과 다른 차등적인 보험료 하한 규정을 정하고 있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외국인을 차별하여 평등권을 침해하는지가 다퉈졌다.
셋째, 건강보험료는 '세대'를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한다. 따라서 생활을 같이 하는 '세대'의 범위는 실제 보험료 부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내국인 지역가입자의 경우 세대원 범위가 민법상 가족과 가족 아닌 자로서 동거하는 사람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외국인의 경우에는 그 개인을 각각 하나의 세대로 보고 산정한다. 예외적으로 외국인 가입자 본인의 신청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이 정하는 바에 따라 동일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그 범위도 세대주의 배우자 및 미성년 자녀에 한정된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거나, 동거하는 친족으로 실질적으로 부양하고 있는 경우라도 외국인의 경우에는 동일세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각각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외국인 지역가입자에게 내국인과 다른 세대구성 기준을 정하고 있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외국인을 차별해 평등권을 침해하는지가 다퉈졌다.
헌법재판소는 첫 번째 쟁점인 보험급여 제한조항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규정으로 헌법에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2025년 6월 30일까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해당 규정은 효력을 상실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 쟁점인 '보험료 하한 조항'과 '세대구성 조항'의 평등권 침해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차별취급이라며 신청인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결정을 했다.
헌법재판소가 외국인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급여 제한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보건복지부 고시에 따른 '보험료 하한 조항'과 '세대구성 조항'이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차별취급이라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다.
실제 다수의 외국인 지역가입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실질적인 차별 사안에 대해서는 눈 감고, 절차적이고 차별 사안에 대해서만 소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를 자임하는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미달한다.
무엇보다 한국사회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계속 늘어나는 사회변화 속에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평등권이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체류 외국인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현실의 차별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매우 실망스러운 결정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헌법재판소는 '외국인 지역가입자 집단 부분의 적자를 해소해 보험의 재정건전성을 향상할 필요'가 있고, '국민건강보험이 보험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어서 보험급여를 받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기여는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외국인 지역가입자에게 실제 소득 재산과 상관없이 일정 금액 이상을 납부하도록 한 것은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외국인 건강보험은 꾸준히 흑자 상태다. 외국인 건보 재정수지는 2018년 2320억 원, 2019년 3736억 원, 2020년 5875억 원, 2021년 5251억 원, 2022년 5560억 원 등 해마다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최근 5년간 총 2조2742억 원의 누적 흑자를 달성했다.
2019년 체류 외국인에 대한 건강보험가입이 의무화 된 이후 지역가입자들이 납부한 보험료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지역가입자한테서 거둔 보험료는 2018년 1203억 원에서 2019년 2705억 원, 2020년 4609억 원, 2021년 4782억 원, 2022년 5046억 원 등으로 대폭 증가했다. 최소한 외국인 가입자의 건강보험 재정수지가 적자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나아가, 보험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국민건강보험제도에서 가입자가 최소한의 자기기여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구인들의 주장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9배나 높은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이 불합리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그 기준이 내국인의 최저기준 부담액보다 9배 이상 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물론 일부 예외적인 경우 건강보험제도를 악용하는 외국인이 있을 수 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회보험으로서 건강보험의 의미와 차별금지 원칙과 예외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모든 보험제도는 기여와 혜택의 불균형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사람에 자신이 기여하는 만큼 혜택을 받는 것은 사회보험이 아니다. 제도를 악용하는 예외적인 사례는 국적을 불문하고 발생한다. 악용사례에 대한 대응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내국인에게 건강보험 남용사례가 발생한다고 해서 내국인의 보험료를 일률적으로 높이지 않는다. 사회보험으로서 공적제도는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가입자에 대한 차별취급을 지양하고 매우 엄격한 기준에 따라 최소화해야 한다.
▲ 2019년 8월 26일, 건강보험의 차별에 반대하는 이주민과 시민단체들의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청와대 앞에서 열렸다. |
ⓒ 이주민 건강보험 차별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 |
헌법재판소는 '내국인의 경우 납부한 보험료의 총합에 비해 보험급여를 일시적으로 많이 받게 되더라도 그 후 보험료 납부가 일생동안 지속되지만, 외국인은 한시적인 기간 동안 국내에 체류하기 때문에 차등적인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외국인'이라는 집단의 본질적 특성으로 외국인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차별을 손쉽게 정당화하는 가벼운 주장이다. 외국인이 한시적인 기간 국내에 체류하는 이유로 모든 차별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위와 같은 논리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 하려면 최소한 차별취급의 정당성을 엄격하고 적극적으로 심사했어야 한다.
특히, 가입자에 대한 소득과 재산을 파악할 의무는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정부기관이 해야 할 책임이다. 외국인의 국내 소득과 재산은 내국인 가입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인의 국외 소득과 재산에 대해 파악하기 어렵다면, 이를 파악할 수 있는 제도와 절차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은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평균보험료' 징수라는 차별적인 제도를 만들었다. 정부가 해야 할 책임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 부담을 외국인 가입자들에게 오롯이 떠넘긴 것이다.
결국 외국인 지역가입자들은 소득과 무관하게 한 달에 12만 원이 넘는 보험료를 내야 한다. 여기에 내국인과 다른 세대구성 기준 때문에 한 집에 살고있는 동거 가족들이라도 각각 보험료가 징수된다. 일례로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가진 형제가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4인 가족의 경우 3세대(형, 동생, 부모)로 분류되어 한 달에 총 36만 원, 1년이면 400만 원 이상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결코 합리적인 수준이 아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몇 건의 남용과 일탈 사례들의 이면엔 정부의 책임 방기와 정책 공백에 따른 부담을 떠안은 수많은 외국인 지역가입자들의 부당한 사례가 무수히 많다. 헌법재판소는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구체적 차별 사례들을 자세히 살피지 않은 채 '외국인'이라는 집단을 이유로 너무 쉽게 눈감았다.
출입국통계월보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체류 외국인 숫자가 코로나19 발생 이전을 넘어섰다고 한다. 법무부장관은 이민정책이 국가백년대계라고 선언했고, 각 지방자치단체는 인구소멸 정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주민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5년 동안 우리사회의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집단으로 외국인을 꼽고 있다.
▲ 조영관 변호사. |
ⓒ 조영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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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공익인권변론센터 월간변론 편집팀 조영관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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