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실망스러웠던 '2023 제주 탄소중립포럼' 내용

김순애 2023. 10. 3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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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건축관련 기술적 측면만 주요하게 다뤄져... "건축학회서 나올 법한 내용" 비판도

[김순애 기자]

제주는 국내 기후위기의 최전선이라고 할 만큼 기후 변화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한라산 구상나무 숲의 고사, 전국에서 가장 빠른 해수면 상승, 기후변화로 밭을 갈아업는 농부들의 모습까지 자연과 사람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주도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지자체 중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이산화탄소 제로' 정책을 펼쳐왔다.

2012년부터 '2030 카본프리 아일랜드' 정책을 도입, 지방정부 차원에서 대한민국 탄소중립 시대로의 이행을 선도해 왔다. 이 정책의 4대 주요 과제는 ▲재생에너지 ▲전기자동차 ▲에너지수요관리 ▲융·복합신산업 부분이었고, 제주도는 이에 따라 전기자동차 구입을 지원하고 대형 풍력 발전 단지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펴왔다.

이에 비해 건축물의 탄소중립에 대한 제주도의 관심은 미약한 편이었는데, 제주도는 지난 10월 27일 건축물 온실가스 감축을 주제로 '2023제주 탄소중립포럼'을 열었다.
 
 2023제주탄소중립포럼 홍보물
ⓒ 제주특별자치도
 
건축물은 우리 삶의 질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분야이면서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발행하는 지역에너지 통계연보를 살펴보면 2019년 기준으로 제주의 최종에너지소비량 154만1000톤 가운데 상업과 가정에 사용된 에너지총량은 49만2000톤으로 수송 73만7000톤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제주도가 작년에 발표한 '제2차 제주도 녹색건축물 조성계획 수립 연구용역'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제주도내 건축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6년에서 2020년까지 연평균 11%대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제주의 경우 에너지 사용이 많은 대규모 관광호텔이 많고 전체 건축물의 35%가 30년 이상된 노후 건축물이기에, 제주의 건축물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한 핵심 과제는 노후건축물과 대규모 관광호텔에 대한 부분이 될 것이다.

이날 행사는 '제주지역의 건축물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 경제의 미래'를 주제로 메종드글래 호텔에서 진행되었고 150여 명 정도 되는 참여자 전원에게 중식이 제공되었다. 포럼 자료집에는 제주도지사와 제주도의회의장, 교육감, 제주도의 국회의원들, 제주상공회의소 회장의 환영사, 축사들이 꽤 비중있게 담겨 있었고 포럼이 시작되기 전에 문화예술공연과 환영사, 축사가 30분 가까이 이어졌다.
 
▲ 2023제주탄소중립포럼계획안 .
ⓒ 제주특별자치도
 
포럼이 시작되자 정찬우 한양대 ERICA 환경에너지연구원 교수가 '건설산업 탄소배출 저감 기술정책 동향과 기술솔루션으로서의 모듈러 공법'에 대해 발표하고 이어서 오대석 정은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건축물 에너지 절감을 위한 패시브 기술 요소와 탄소제로 주택'을 주제로 발표했다.

정 교수는 건축물의 생애주기별 탄소 배출에 대해 시멘트와 철강 등 건축 자재의 생산 과정에서 약 30%, 건축물이 운영되는 과정에서 약 70%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고 보았고 두 가지 측면에서의 감축 방안으로 모듈러 건축을 제안했다.

모듈러 건축은 블록 형태의 유니트 구조체에 창호와 외벽체, 전기배선 및 배관 등 70% 이상의 부품을 공장에서 제작하고 현장에서 조립하는 건축시스템이다. 오대석 대표는 건축물의 형태와 기밀, 환기, 단열, 창호 등등의 건축 요소에서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건축 방법을 제시했다.
 
▲ 모듈러공법소개 .
ⓒ 김순애
 
대부분 건축물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기술적인 요소들에 대한 것이었고 이러한 내용들은 건축계에서 건축물의 탄소 감축을 위해 촉진되어야 하는 내용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제주도가 많은 예산을 들여 준비한 탄소중립포럼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라 보기 어려웠다. 탄소중립포럼에서 다루기에는 매우 지엽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는 내용 구성이었다.

이날 참석한 이들은 제주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들과 제주도와 제주연구원 관계자, 지역전문가 등 지역의 탄소중립을 고민하는 핵심 그룹이었다. '제주의 건축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중요한 의제에 대해 제주도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과 핵심적인 문제,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안과 토론이 이어질 것이라 예측되는 자리였다.

하지만 이어진 플로어 질문에서는 외단열과 내단열의 차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이에 대한 답변이 길게 이어졌다. 이날 참석한 김정도 제주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은 "탄중위 위원들에게 참여를 요청해서 왔는데 건축학회에서나 할법한 내용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제주의 '건축물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정책 리스트에는 올라와있지만 현황을 살펴보면 정책 실현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드는 수준이다. 2019년 제주의 녹색건축물 설계 기준이 고시되었지만 녹색건축물 조성 현황을 보면 2019년 882.0㎡, 2020년 483.0㎡, 2021년 1018.0㎡에 불과하고 노후 건축물의 그린 리모델링 역시 2019년 0.7천㎡, 2020년 0.5천㎡, 2021년 12.9천㎡로 사업을 시행했다고 하기도 창피한 수준이다.
 
▲ 2050탄소중립을 위한 제주특별자치도 기후변화대응계획 보고서 .
ⓒ 제주특별자치도
  
▲ 2050탄소중립을 위한 제주특별자치도 기후변화 대응계획 보고서 .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내 19개 환경 및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탈핵·기후위기 제주행동은 제주도에 있는 '에너지 다소비 건물 현황'을 상시적으로 공개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위 단체가 지난 6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의 에너지 다소비 건물 13위 가운데 상당수가 관광시설이다.
  
 제주 에너지 다소비 건물
ⓒ 탈핵기후위기제주행동
 
이처럼 제주 건축물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임에도 제주도가 주관한 탄소중립포럼은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그 의미가 갖는 엄중함은 사라지고 너도 나도 장식처럼 치장하는 가벼운 트렌드가 되어버렸다. 모두 탄소중립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 자연스럽게 탄소중립이 실현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이날 제주도와 공동으로 행사를 주관한 (사)탄소중립실천연합은 지난해부터 제주도와 함께 탄소중립포럼을 개최하고 있는데 지역에선 다소 생소한 단체다. 이 단체의 이사장은 제주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탄소중립실천'이라는 단체명을 사용함에도 포럼 외에 눈에 띄는 활동이 많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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