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빙빙과 이주영의 케미, 기대 이상이었다

장혜령 2023. 10. 31. 10: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바라본 여성 이야기] 영화 <녹야>

[장혜령 기자]

  
 영화 <녹야> 스틸컷
ⓒ ㈜스튜디오디에이치엘
 
단조로운 일상에 지친 인천 여객항 보안검색대 직원 진샤(판빙빙)는 자신과 달리 자유분방해 보이는 초록 머리 여자(이주영)를 만난다. 중국에서 건너온 진샤는 한국 남자(김영호)와 결혼했으나 불행한 생활을 좀처럼 버티기 힘들었다. 폭력적인 남편을 떠나려면 돈이 필요했다. 브로커에게 줄 영주권 마련 자금 3500만 원이 절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밀매상 초록 머리 여자를 만나고 완전히 다른 삶으로 이끌린다. 둘은 자석에 이끌리듯 서로 다른 매력에 빠져든다. 초록 머리 여자는 보안 검색대의 진샤를 도발한다. 첫 만남에 기분 나쁜 행동을 했지만 어느새 그녀를 동경하며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버린다.

평범했던 진샤도 화교 남자친구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초록 머리 여자의 진실을 깨닫고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서로의 등불이 되어주기로 한 선택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위태로워질수록 나다워지는 아이러니를 동력 삼아 전력 질주하고자 한다.

판빙빙과 이주영의 케미 기대 이상
  
 영화 <녹야> 스틸컷
ⓒ ㈜스튜디오디에이치엘
 
영화를 통해 판빙빙을 다시 보게 되었다. 중국 톱스타의 화려함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초췌한 무채색 톤의 패션, 궁핍한 생활이 곧이곧대로 느껴진다. 사연 있어 보이는 여성을 해석한 변신이 돋보인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전염되는 슬픔과 고독이 진샤 자체로 보였다. 선뜻 도전하기 어려운 퀴어, 외국어까지 소화했다. 특히 탈세 혐의로 중국 연예계에서 사실상 퇴출 선고받은 판빙빙의 자전적 캐릭터로도 해석된다. 이제 홀로서기를 시작하겠다는 다짐이자,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의심 심장하게 읽힌다.

둘의 케미는 기대 이상이다. 익숙한 불행서사 한계점을 두 배우의 꽉 찬 존재감으로 채운다. 실제 판빙빙과 이주영은 통역사와 짧은 영어로 생각을 전달했다고 전해진다. 서로 알아가기 위한 현실과 영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며 모호하고 아득했던 관계가 깊어진다. 

이주영은 차근차근 독립영화부터 쌓아 올린 내공을 또 한 번 발휘한다. 거칠면서도 사랑스러운 얼굴로 마음을 훔치나. 영화 <야구소녀>나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등에서 보인 중성적인 캐릭터의 진화를 넘어선 발전이다. 선배이자 스타인 판빙빙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본인 한계를 넘어선다. 앞으로 이주영의 연기를 더욱 기대하게 한다.

진샤가 녹록지 않은 현실에 찌든 인물이라면 초록 머리 여자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파란 머리 엠마(레아 세두)처럼 판타지에 가까운 인물이다. 억압되어 있던 진샤를 깨워 목숨을 구해주기도 하고 위험에 휘말리게도 한다. 그러면서 가까워지는 감정은 우정과 사랑, 연대 그 어딘가를 향한다.

이국적인 서울과 이질적인 두 여성
  
 영화 <녹야> 스틸컷
ⓒ ㈜스튜디오디에이치엘
 
둘의 안정적인 연기 호흡, 독특한 무드, 스타일리시한 영상미를 담고 있다. 분명 한국이지만 이국적인 색깔로 물들어 생경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언제 밝아올지 가늠하기 힘든 짙은 녹색 어둠의 밤으로 안내한다.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지만 눈빛, 표정, 몸짓이 닿으며 공감하고 이해한다. 언어, 가치관, 나이도 다르나 서서히 물들어 가는 과정이 강렬하게 펼쳐진다.

<녹야>의 남성들은 대체로 여성을 용서하겠다고 말하는데 둘은 남성의 네트워크를 무너트리고 거침없이 질주한다. 극 초반 한국 남편에게 끌려다니던 진샤가 후반부로 갈수록 진취적이고 화려하게 변한다. 수어가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막을 넣지 않아 진샤의 고통, 공포, 분노를 대리 경험할 수 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무언가가 이들을 쫓고 통제하려 하는 억압을 상징한다.

한슈아이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여성만이 여성을 돕고 잘 알 수 있다. 마음이 통해 팬데믹이 가장 심각했던 시기의 촬영도 똘똘 뭉쳐 이겨 나갔다"고 말했다. 실제 감독, 배우, 제작팀(제작자, 조감독) 통역 등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협업했다.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초청되어 호평받았으며, 데뷔작 <희미한 여름>으로 주목받은 한슈아이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