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 폭력적 공권력과 침묵하는 사회를 고발하다 [볼 만해?]

유명준 2023. 10. 3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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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년들’, 11월 1일 개봉.

1999년 전북 삼례의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했다. 이 과정에서 슈퍼 주인인 70대 할머니가 사망했다. 이 사건은 한 지역 신문에 간단히 실렸다. ‘설 앞두고 강‧절도 날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 다른 사건과 함께 짧게 처리됐다.

2002년 5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 사건을 다룬다. 당시 용의자가 정신지체자를 포함한 동네 10대 3명이었는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며, 이후 진범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그러나 2002년 한일월드컵 분위기 때문에 대중의 시선을 크게 끌지는 못했다.

2014년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 사건을 한번 더 다루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다. 포털뉴스와 검색어 그리고 스마트폰과 SNS의 힘은 지역 신문에 짧게 기록됐던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었고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후 2016년 7월 재심이 결정됐고, 그해 10월 28일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됐던 3명의 소년들은 성인이 되어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3년 영화 ‘소년들’(감독 정지영)은 이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다시 대중 앞으로 가져다 놓는다.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영화적 장치를 넣었고, 황준철 등 새로운 인물을 몇몇 등장시켜 극 흐름을 이끌게 했다. 영화는 사건 발생 1년 후인 2000년과 재심을 청구한 2016년을 오가며,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보여준다.

영화는 완주경찰서 수사반장으로 부임한 황준철(설경구 분)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황준철은 우리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를 받고 재수사에 나선다. 그 과정에서 범인으로 몰린 세 명의 소년들이 강압 수사로 인해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건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던 황준철은 원래 사건 담당자인 최우성(유준상 분)의 방해로 실패하고 섬으로 좌천된다. 그리고 16년 후 섬에서 나와 파출소장으로 부임해 정년퇴임을 준비하던 황준철은 사건의 목격자이자 피해자의 가족인 윤미숙(진경 분)이 소년들의 누명을 벗기려 재심 청구를 준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또다시 최우성의 방해가 시작돼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고통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준철과 윤미숙은 소년들을 위해 재심을 밀어부친다.

‘소년들’은 ‘블랙머니’ ‘부러진 화살’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의 신작이다. 정 감독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건을 파헤치는데 거칠게 진행한다. 시작부터 최우성을 중심으로 한 사건 담당 형사들과 그를 믿는 고위직들 그리고 검사를 ‘최악의 존재’로 인식시킨다. 공권력을 남용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사건을 은폐하는 모습을 빠르게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의 감정은 상영 시간 내내 ‘분노 게이지’를 일정 수준 이상 올린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자칫 감정의 과도한 소모로 지칠 수도 있다. 그나마, 처음으로 악역이 아닌 역할을 했다는 허성태와 자신이 있는 공간을 ‘진짜처럼’ 만들어 버리는 염혜란이 가끔 게이지를 밑으로 끌어 내린다.

그리고 그 ‘분노 게이지’가 올라간 이유에 이러한 사건을 “내 일도 아닌데 뭐”라며 무관심했던 자신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을 느끼면 그 ‘게이지’는 흔들리고, 공권력의 피해자가 자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면 ‘게이지’는 파괴된다. 분노가 공포로 바뀌기 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영화의 결말은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러기에 어느 면에서는 영화적인 재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오히려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를 다시 보거나,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사건 정리 콘텐츠를 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시사 프로그램을 봤음에도 ‘순간의 분노’로만 흘려보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 영화 속 여러 극적 장치들은 그 ‘순간의 분노’를 오랜 시간 각인하도록 만들어 준다.

정지영 감독이 영화를 만든 이유 중 하나로 “우리도 그 소년들이 감옥 가는데 묵시적으로 동의한 게 아닌가”라고 말한 것과 황준철 역의 설경구가 영화 참여 이유 중 하나로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알고 있던 사건이었다. 분노했지만 나 또한 흘려보냈던 사건이지 않았나 싶었다”라고 언급한 것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것, 해야 할 일은 이것이지 않았을까. 11월 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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