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전술핵 100기, '한국 안보지원용' 지정해야"
"전략적 모호성…더는 북핵억제 보장 어려워"
4단계 핵보장 방안…美 핵무기 '한국용' 개량
한미가 미국 전술핵무기 일부를 한국의 안보를 지원하는 용도로 지정하고, 이를 한반도에 실전 배치하는 등 단계적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생산 동결을 끌어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북한의 핵전력이 실제적 위협 단계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따라 한미도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분석으로 풀이된다.
31일 아산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연구원과 미 랜드연구소(RAND)는 '한국에 대한 핵보장 강화 방안' 제하의 공동 연구보고서에서 "북한은 이미 한국에 실제적인 위협을 가할 핵무기 전력을 확보했고, 미국에도 심각한 위협을 가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연구진은 구체적인 대응 방안으로 '한국 내 전술핵무기 저장시설 현대화'부터 '미 전술핵무기 한국 전개'까지 북한의 핵무력 증강에 맞설 4단계 접근법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2030년대가 되면 김정은이 최대 300~500개까지 핵탄두를 보유하려 할 것"이라며 북·러 군사협력으로 이러한 '김정은 비전'이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향후 북한이 대미 핵위협을 이용해 한미동맹을 와해하고, 한국을 직접 침략하지 않고도 지배하려 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한국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가능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의 지원 사격을 바탕으로 핵전력 증강을 가속할 것이라는 전망을 두고 여러 전문가의 우려가 이어졌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점을 언급하며 "원심분리기 소재인 알루미늄을 얻기 위한 목적도 포함돼 있다"고 추정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장은 러시아가 북한으로 과학자·기술자를 보낼 가능성에 주목하며 군사협력을 위한 인적 교류가 빨라질 수 있다고 봤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는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에 사용되는 물자의 주요 생산국"이라며 이를 5∼6년 전부터 북한에 제공하고 있다는 정황적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의 핵위협이 역내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도 주목했다. 중국이 핵무기를 한미 양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 중 하나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보고서는 그동안 중국이 한반도와 관련해 이해관계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초래되면 주로 경제적 수단을 사용했다고 보면서도 "한반도의 여건을 조성하고 (중국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점차적으로 군사적 수단의 사용을 고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직접적으로 중국이 북한과 협력해 한국에 핵위협을 가한다거나 북한 핵위협을 부추긴다는 상황은 상정하지 않았다"면서도 "한국이 핵보장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쓸 때 중국이 오히려 위협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거나 부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베넷 선임연구원도 중국이 동북아 지역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상정할 때 군사적 위협을 발휘할 가능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짚었다.
연구진은 미국 핵우산의 '전략적 모호성'이 더는 적절치 않은 상황이며 미국이 1960년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그랬듯이 '전략적 명확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봤다. 지난 4월 한미 정상이 채택한 '워싱턴 선언'으로 명확성을 강화하긴 했지만, 한국의 핵보장 수준을 실질적으로 높이려면 '디테일한' 이행 방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네 단계의 단계적 접근 방법을 상정해 북한의 핵무력 증강에 대응하고 핵무기 및 핵심 핵물질 생산 동결을 압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첫 단계로는 한국 내 미국 전술핵무기 저장시설을 현대화하거나 새로 지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저장시설을 마련하는 것으로 향후 미국 핵무기 재배치를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생산 동결을 거부할 때 (한국도 핵무기를) 재배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명백하게 경고할 수 있다는 제언이다.
다음 단계로는 태평양에서 작전 중인 미 전략핵잠수함에 적재된 핵무기의 일부 또는 전부가 북한을 겨냥하도록 지정하는 방안이 가능하다고 봤다. 연구진은 "오하이오급 탄도미사일 잠수함에 탄도미사일 20기와 미사일 1기당 약 4발의 탄두가 탑재된다"며 "북한을 표적으로 이런 잠수함 1대를 투입하는 것은 최대 80기의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이라고 추산했다.
세 번째 단계는 한국이 비용을 부담해 미국의 B61 전술핵무기 약 100기를 현대화하고 이를 '한국 안보 지원용'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노후화한 B61 폭탄을 정밀폭격이 가능한 B61-12로 개량하는 작업을 해왔지만, 예산 제약을 겪고 있다. 한국이 현대화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독자적 핵무기 생산에 드는 잠재 비용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 연구진의 견해다.
연구진은 최후의 단계로 "한미는 제한된 수(8∼12개)의 미 전술 핵폭탄과 핵 투발 이중목적 항공기를 한국에 배치하겠다고 확약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이런 방안이 시행된다면 향후 수년 안에 약 180기의 미국 핵무기가 한국 안보용으로 지정될 것이고, 실제 작전적 목적으로 한국에 배치된 8~12기의 B61 항공폭탄이 포함될 것"이라고 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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