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브리튼 음악으로 전쟁 이야기할 것”

장지영 2023. 10. 31.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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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강연, 11월 14일 세종 솔로이스츠와 공연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는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c)Warner Classics

영국 출신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58)에게는 ‘박사 테너’ 또는 ‘노래하는 인문학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실제로 보스트리지가 옥스퍼드대 역사학 박사 출신으로 대학 강단에 서다가 29살의 늦은 나이에 성악가로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는 청명한 음색과 이지적인 해석으로 독일 가곡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다. 그리고 바로크 음악과 현대 음악으로도 점점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미상 13차례 후보 지명 및 3차례 수상의 영예를 얻기도 했다.

보스트리지가 11월 9~22일 서울에서 열리는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는다. 올해 6회를 맞는 힉엣눙크는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로, 세종 솔로이스츠가 정해진 형태나 경계 없이 음악계 최신 동향을 반영하는 축제다. 보스트리지는 9일 개막 첫날 거암아트홀에서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과 전쟁에 대한 강연을 펼친 뒤 14일 예술의전당에서 세종 솔로이스츠와 브리튼의 ‘일뤼미나시옹’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일뤼미나시옹’은 프랑스 시인 랭보의 동명 시집에서 발췌한 9개의 산문시에 브리튼이 곡을 붙인 작품이다.

보스트리지는 서면 인터뷰에서 “브리튼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곡가다. 20세기 전체를 조망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면서 “특히 브리튼은 사회적 주제를 작품에 직접 담아낸 작곡가”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브리튼의 걸작 중 하나인 ‘전쟁 레퀴엠’(1962년)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음악, 인문학으로의 초대’라는 타이틀의 강연에서 보스트리지는 브리튼의 음악과 전쟁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그는 “요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보면서 브리튼의 음악이 새삼 떠오른다. 이번 전쟁을 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려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 강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클래식 팬일 가능성이 크다. 클래식 음악이 인간의 깊은 사유와 감정을 다루는 매체라는 것을 잘 아는 만큼 이런 제목과 내용을 정했다”고 귀띔했다.

그는 2018년에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돼 그해에 7차례 내한 공연을 펼친 것을 포함해 한국을 종종 찾았다. 세종 솔로이스츠와는 당초 2020년 함께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향으로 미뤄졌다가 올해 드디어 함께하는 무대를 만들게 됐다. 다만 이번에 그가 세종 솔로이스츠와 선보이는 브리튼의 ‘일뤼미나시옹’은 한국에선 거의 연주되지 않았던 작품이다.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을 여는 세종 솔로이스츠.

그는 “‘일뤼미나시옹’은 환각적 이미지로 가득 찬 작품이다. 관능적이면서도 어두운 이 작품은 인간사를 거울처럼 온전히 담고 있다”면서 “브리튼은 시어만큼이나 언어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매우 중시했다. 그래서 가사를 사전에 읽고 오시면 그 소리와 뜻을 결합해서 좀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주와 연구를 병행하던 시절의 그는 음악계에선 ‘노래 잘하는 박사’ 정도로 알려지고, 학계에선 ‘음악으로 외도하는 박사’ 정도로 불렸다. 하지만 학자에 대한 꿈을 접고 본격적으로 성악가로서 활동한 이후 그의 인문학적 백그라운드는 그를 빛나게 만드는 장점이 됐다. 무엇보다 여느 성악가와 달리 폭넓은 글을 쓰는 그는 그동안 4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다른 성악가들과 달리 글을 쓸 때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면서 “학자적인 관점에서 집필할 때보다 예술가로서 관점을 가지고 폭넓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좋다. 학자였을 때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고 분석했던 습관과 훈련은 지금 음악가로서의 삶에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연이 중단됐을 때 그는 ‘노래와 자아’라는 제목의 강의와 그것을 모은 동명의 저서를 준비해 최근 발간했다. ‘노래와 자아’는 사회정치적으로 정체성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음악가인 자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그는 “내게 음악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존재의 본질, 죽음의 필연성, 개인의 정체성, 삶의 본질 등 우리가 알고 있지만 합리적으로 말할 수 없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피력했다.

그는 내년이면 늦깎이로 데뷔한 지 30년이 된다. 미리 소감을 묻자 그는 “성악가가 나이를 먹어가면 사람들은 음악의 새로운 해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내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떠한 것들이 가능한가다. 감정의 변화는 물론 기본적인 체력 조건의 변화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성악가들의 악기인 몸은 계속 변한다. 따라서 공연장 안에서 내 목소리가 어떻게 들릴지도 계속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 노래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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