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3대 부인암 순위 20년 만에 역전… 폐암·췌장암 가파른 증가

민태원 2023. 10. 3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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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여성 암 발생 지형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통해 여자 암 4위 → 10위 뚝
자궁체부암·난소암, 비만 등 환경 요인에 증가세
폐암, 간접흡연 등 원인… 일각선 女호르몬 지목도
췌장암, 고령인구서 발생… 당뇨병 지속땐 의심해야

한국 여성의 암 발생 지형이 바뀌고 있다. 자궁경부암 등 부인암의 발생 순위가 20년 만에 뒤바뀌었고, 주로 남성 암으로 인식됐던 폐암과 췌장암 발생이 여성에서 지속 증가 추세다.

최근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개한 ‘2023년 한국여성건강통계(5차)’를 보면 가장 눈에 띄는 점이 3대 부인암의 판도 변화다. 2000년 여자 암 발생 4위였던 자궁경부암은 꾸준히 줄어 가장 최근인 2020년엔 10위로 내려앉았다. 반면 자궁체부암은 같은 기간 13위에서 8위로 5계단이나 뛰었다. 인구 10만명 당 암 발생은 자궁경부암이 2000년 19.8명에서 2020년 9.6명으로 뚝 떨어졌고 자궁체부암은 3.4명에서 10.4명으로 크게 늘었다. 난소암 발생도 같은 기간 5.8명에서 8.5명으로 증가했다. 2000년 자궁경부암, 난소암, 자궁체부암 순이었던 부인암 순위가 20년 만에 자궁체부암, 자궁경부암, 난소암 순으로 역전됐다.


자궁체부암, 부인암 1위 ‘등극’

자궁경부암 감소에는 국가 암 검진 등을 통한 조기 발견, 주요 암 원인인 HPV(인간유두종바이러스) 예방백신 접종 등이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는 전 세계적으로 비슷해 세계보건기구(WHO)는 머지않아 자궁경부암의 박멸까지 내다보고 있다.

반면 임신 시 태아를 품고 있는 자궁 내부에 암이 생기는 자궁체부암과 난소암의 증가는 비만 여성의 증가와 함께 빠른 초경, 늦은 결혼·출산, 비혼 경향, 모유 수유 기피 등 사회문화적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분석한다. 여성암 1위인 유방암 역시 이런 이유로 1999년 암 등록 사업 이후 계속 증가 추세다(2000년 10만명 당 28명→2020년 77.1명)

특히 자궁 내벽에 암세포가 생기는 자궁내막암은 자궁체부암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20·30대 젊은 층에서도 발생이 느는 추세다. 그 외 자궁육종은 드문 편이다. 대한부인종양학회 사무부총장인 민경진 고려대 안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30일 “자궁내막암은 동양보다 서양에서 발생률이 높았지만, 서구화된 식생활로 인한 비만의 증가, 출산 기피로 우리나라에서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궁내막암 발생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노출과 연관성이 크다. 난소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은 프로게스테론이라는 또 다른 호르몬이 조절해 주는데, 고지방식으로 비만이 되면 체지방세포에서도 에스트로겐이 나와 노출이 더 많아진다. 만혼이나 비혼, 이른 초경 등도 에스트로겐 노출 기간이 길어지는 이유다.

자궁체부암은 다행히 비정상적인 질 출혈과 생리 불규칙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발견이 어렵진 않다. 70% 이상이 조기 진단되고 수술하면 완치된다. 초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은 97% 정도로 높다. 다만 수술 후 재발하거나 말기에 발견하면 20% 미만이다.

민 교수는 “문제는 선별 검사가 없어 조기 발견과 치료가 어려운 난소암이다. 60~70%는 3기 이상 진행된 상태로 진단된다. 주기적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해 이상 유무를 살피는 수밖엔 없다”고 조언했다.

비흡연 여성 폐암, 췌장암 증가 왜?

흡연 등이 주원인으로 꼽히는 폐암은 남성의 경우 흡연율 하락으로 지난 20년간 꾸준히 감소(2000년 10만명 당 60.7명→2020년 47.4명)했으나 여성은 같은 기간 15.5명에서 19.3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저선량CT(일반 CT 방사선량의 5분의 1 수준)를 통한 폐암 선별 검사가 보급되면서 여성에서 2㎝ 미만 초기 폐암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립암센터 흉부외과 송재원 전문의는 “의학계도 여성 폐암 증가를 유의해서 보고 있다. 전체 폐암 환자의 3분의 1을 비흡연 여성이 차지하고, 여성 폐암 환자 10명 중 8명은 비흡연자”라고 설명했다. 전체 폐암의 80%를 차지하는 비소세포폐암 중 흡연과 관련성이 큰 유형은 편평상피세포암인데, 여성의 경우 선암이 대부분이다.

송 전문의는 “지금까지 비흡연 폐암에서 명확히 밝혀진 원인은 간접흡연뿐이다. 여성의 경우 근래 조리 시 나오는 연기와 그을음(조리 흄·fumes)과의 연관성이 거론되는데 비교 임상연구가 어려워 명확한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며, 일각에선 여성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 이밖에 대기 중 미세먼지, 중국발 황사 속 화학물질 노출 등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비흡연 폐암은 제자리 암이나 최소 침습암의 비율이 높고 표적 항암제 적용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아 예후나 생존율이 흡연자에 비해 좋은 편이다. 송 전문의는 “가급적 조리 시 인덕션 등 직화에 의한 그을음·연기가 없는 방식 활용, 집안 환기를 지키고 미세먼지가 많을 땐 외출 자제,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다. 또 비흡연 여성이라도 위험 요인 노출이 우려된다면 비용 부담(10만원)이 있지만 저선량CT 검사를 고려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일각에선 30갑년(1갑년=하루 1갑씩 365일 흡연량) 이상 54~74세 장기 흡연자나 과거 흡연자가 대상인 무료 국가폐암검진 범위를 비흡연자까지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췌장암은 남녀 모두 증가 추세지만 여성의 상승 폭이 더 두드러진다. 여성 췌장암은 2000년 인구 10만명 당 4.9명에서 2020년 8.2명으로 1.7배, 남성은 같은 기간 9.4명에서 10.7명으로 1.1배 늘었다. 국립암센터 간담도췌장암센터 우상명 국제암대학원대 교수는 “남녀 모두 췌장암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고령화로, 고령 인구에서 많이 발생한다”면서 “여성의 증가 폭이 더 가파른 것은 비만율이 높아지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비만하면 당뇨병으로 이어지기 십상이고, 당뇨를 오래 앓으면 췌장암을 유발할 수 있다. 또 가족력이 없는데, 갑자기 당뇨병이 발생했다면 췌장암을 의심해야 한다.

이번 여성건강통계를 보면 성인 여성의 비만율은 연령에 따라 증가했으며 특히 65세 이상 3명 중 1명(34.3%)이 비만으로, 남성 비만율(37.5%)과 엇비슷했다. 또 남녀 당뇨병 유병률을 기반으로 추산한 당뇨 환자는 여성이 140만6000명으로 남성(119만4000명) 보다 많았다.

우 교수는 “고지방식과 흡연 등 안 좋은 생활습관을 피하고 당뇨 관리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또 췌장암 가족력이 있다면 추적 관찰을 거르지 말고, 이유 없이 소화불량 증상이 2주 이상 지속하면 췌장암이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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