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피해자 의식

2023. 10. 31. 03: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가해자-피해자 도식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분석하는 중요한 틀이 되었다.

접촉사고가 났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를 판정해서 수리비를 산정해야 하고, 학교폭력이나 '미투'의 가해자를 가려내어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해자-피해자 도식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분석하는 중요한 틀이 되었다. 접촉사고가 났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를 판정해서 수리비를 산정해야 하고, 학교폭력이나 ‘미투’의 가해자를 가려내어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희생자의 부모는 책임자를 찾아 문책하라고 요구한다. 국제적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피해를 당한 이스라엘은 가해자 하마스를 궤멸하려고 시가전에 돌입했으며, 팔레스타인은 지난 수십 년간 자신들이 더 큰 피해자였음을 호소한다. 자신이 피해자라는 자의식을 가리켜 ‘피해자 의식(victimhood)’이라 부른다.

피해자 의식과 관련된 몇 가지 현상이 있다.

첫째, 사람들은 자기가 당한 피해가 자기가 가하는 보복보다 크다고 느낀다. 복수극의 성공 여부는 가해의 정도를 정확히 측정해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하는 데 달려 있다. 만일 피해자의 억울함이 남아 있다든지 혹은 더 나쁜 사람이 벌을 덜 받는다든지 하면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가해와 피해의 정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드라마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다른 사람 죽을병보다 아픈 법이다.

피해를 본 사람은 자신의 피해에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기 일쑤다. 예컨대 일본인은 자신들이 세계에서 유일한 원폭 피해자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일본인이 일본에 당한 주변국의 피해에 둔감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인의 피해자 의식이다.

둘째, 피해자 의식은 세습되고 강화된다.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주변 아랍 국가들을 억압하고 몰아내려는 것을 정당하게 여긴다. 과거 유럽에서 저질러진 반(反)유대주의로 인한 피해와 특히 홀로코스트로 생긴 피해자 의식을 세습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피해자 의식은 후손에 전수되는 과정에서 강화됐다. 세계 곳곳의 홀로코스트 박물관과 철저한 역사교육, 그리고 간간이 일어나는 국지전이 그 통로다.

셋째,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드라마에 나오는 순진한 피해자나 완벽한 악한은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해자는 종종 어두운 과거를 가진 불행한 사람이다. 상처를 제대로 치유받지 못한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신한 것이다.

“종종 피해자들은 바로 그들의 기억 때문에 가해자가 된다. 그들은 과거에 피해자로 겪었던 일을 기억하기 때문에 현재 자신이 휘두르는 폭력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기억이라는 보호의 방패는 폭력의 칼로 쉽사리 탈바꿈한다.” (미로슬라브 볼프, ‘기억의 종말’) 볼프는 9·11테러를 겪은 미국이 어떻게 이슬람 국가들을 응징하는지 지켜보며 이 책을 썼다.

위에서 말한 피해자 의식의 3가지 특징을 종합하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보인다. 가해자는 하나도 없고 피해자만 있는 곳,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모두가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민·형사상 피해를 보상하라고 아우성이다. 내면의 억울함은 분노로 뒤바뀌고, 그 분노는 때로는 집단행동으로 때로는 극단적 선택으로 표출된다.

피해자-가해자의 악순환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 피해자 의식의 세습과 강화를 멈출 수 있을까. 예수님의 십자가가 답이다. 우리 주님은 세상의 모든 원한과 복수를 십자가에서 온몸으로 받으셨다. 세상의 피해자가 도살당한 어린 양의 십자가 그늘 아래 선다면 모든 억울함이 해소되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세상의 가해자가 참혹한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자신의 손으로 가한 폭력이 부끄러워 슬그머니 돌을 내려놓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는 피해자의 연대가 돼야 한다.

장동민 교수(백석대·흥광교회 목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