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의 시선] 월가의 경고

김창규 2023. 10. 3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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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규 경제에디터

몇달 전부터 미국 증시의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제러미 그랜섬(헤지펀드 GMO의 창업자)은 미국의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경기침체의 정도가 완만할지 심각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내년에는 더 깊은 침체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으로 고강도 긴축 여파가 경제 전반으로 퍼져 경기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진단이었다. 본격 침체 국면에 들어가면 주식과 부동산 시장도 무너진다고 설명했다. 현재 85세인 그는 세계 자산시장 버블(거품) 붕괴를 예측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89년 일본 부동산 시장 붕괴에 앞서 일본 주식을 팔아치웠으며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을 예측했다.

「 월가 거물의 잇단 미국 침체 경고
모든 거품 뒤엔 경기침체 이어져
장밋빛만 기대할 땐 낭패볼 수도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 금융시장에선 그의 주장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성장률·고용률 등 주요 경제 지표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등 주요 금융회사 수장이 일제히 경기 침체를 우려하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다이먼 회장은 “Fed가 1년 6개월 전 내놓은 경제 전망은 100% 틀렸다”며 “내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당히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Fed가 지난해 3월 전망에서 2023년 말까지 근원 물가상승률이 2.8%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는 이보다 1.1%포인트가량 높은 점 등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Fed와 정부가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을 갖고 있다는 정서가 있다”며 “지금은 1970년대에 가깝다”고 우려했다.

1970년대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달러를 마구 쏟아부었다. 이 탓에 물가가 크게 올랐다. Fed는 금리를 대폭 올려 간신히 물가를 잡았지만 고강도 금융긴축으로 심각한 경기침체가 뒤따랐다. 코로나19로 많은 돈을 풀었던 미국 정부가 요즘엔 물가를 잡겠다며 고금리로 경제에 충격을 주고 있는 점을 에둘러 비판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상황은 나쁜 정책이 펼쳐졌던 197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고,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과 한때 ‘채권왕’으로 불렸던 투자자 빌 그로스도 경기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애크먼 회장은 “최근 데이터가 시사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둔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 침체 우려가 잇따르는 건 4분기에 대한 전망이 흐릿하기 때문이다. 올해 3분기 미국은 ‘깜짝 성장’을 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율 환산으로 4.9%에 달했다. 1분기(2.2%)와 2분기(2.1%)의 두 배를 넘어선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4분기 GDP 성장률 전망치를 1% 내외로 예상한다. 3분기의 5분의 1 수준에 육박한다. 벌써 조짐이 있다. 미국의 3분기 소득 대비 저축률은 3.8%로 2분기(5.2%)보다 뚝 떨어졌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세후 소득도 1% 감소했다. 고금리의 역풍으로 소비 성장세 등이 꺾이며 갑자기 경기가 식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하지만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침체는 없다”고 단언하며 우려를 일축했다.

한국을 둘러싼 경제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한국의 1위 교역국인 중국 경제는 이미 흔들리고 있고, 2위 교역국인 미국마저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1년 6개월을 훌쩍 넘겼고, 중동에서는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에 투입돼 전쟁 장기화가 우려된다. 내부적으로는 가계 빚이 급증하고 있는 데다 금리는 고공행진 중이다. 올 2분기 가구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1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고물가와 고금리는 장기화 조짐을 보여 호주머니 사정은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 시장은 거래가 줄고 매물이 쌓여 완연한 조정 조짐을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각각 1.0%, 1.1%로 제시했다. 하지만 추경호 부총리는 “1.4% 수준에서 등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가 변곡점에 왔을 때 시장 참여자는 좀 더 부정적으로, 정부 관계자는 좀 더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투자의 결과는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다가오는 폭풍우(최악의 상황)를 두려워하기만 할 필요는 없지만 무방비 상태로 맞이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동안 모든 큰 거품 뒤에는 경기 침체가 이어졌다. 다가오는 위험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위험이 기회가 된다. 경제를 차갑게 식히는 동장군은 이미 문 앞에 와 있다.

김창규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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