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의 퍼스펙티브] 직원 건강이 곧 기업경쟁력 “1달러 투자하면 3달러 회수”

2023. 10. 3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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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건강경영’인가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교수
기업이 직원 건강까지 관리해야 한다고 하면 반대하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기업이 건강경영에 나서야 할 때가 됐다. 무엇보다 건강보험을 포함한 국가 보건의료 체계만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 학술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업무 관련 스트레스나 노력-보상 불균형이 있는 사람에게 관상동맥 심장질환의 위험이 증가한다. 현대인 대다수는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직장 생활에 따른 지속적 스트레스는 우울증이나 심장질환을 유발한다.

「 직장 스트레스는 우울증·심장병 등 일으켜 생산성 하락
미국·일본 등 선진국 기업·정부 ‘건강경영’에 새롭게 눈떠
‘직장건강 평가표’ 보급하고 참여 기업에 인센티브 제공
개인은 연금처럼 건강 포인트로 저축해 의료비로 쓰게 해야

세계는 지금 만성질환 증가로 인한 생산성 손실과 지속 불가능한 의료비 문제에 직면해 있다. 비만, 흡연, 잘못된 식습관, 신체 활동 부족, 당뇨, 고혈압 같은 교정 가능한 위험 요인을 관리한다면 질병과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직원의 건강 악화는 생산성 저하의 주된 요인이다.

업무상 질병 10년 새 3배 늘어

2019년 10월 건강100세회의 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건강경영 원탁회의 참석자들. 왼쪽에서 여덟번 째가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중앙포토]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업무상 질병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거나 사망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업무상 질병자 수는 2013년 7627명에서 2022년 2만3134명으로 3배 늘었다. 사망자 수도 같은 기간 839명에서 1349명으로 1.6배 늘었다.

건강경영에 투자하면 생산성이 올라갈까. 미국 기업들은 1980년대 초부터 ‘건강경영’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건강 관리 프로그램의 효과를 평가했다. 실험 집단 2만9315명에 대조 집단 1만4573명을 대상으로 2년에 걸쳐 포괄적인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건강 평가, 건강 관련 소식지 발송, 워크숍, 그룹 토론, 체중 관리, 금연 혜택 등이 포함됐다. 실험 집단이 대조 집단보다 결근율이 14%나 감소했다.

건강 관리에 1달러를 투자했을 때 3달러가 회수돼 높은 투자수익률(ROI)을 보인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정신건강 관리는 ROI가 6.5로 훨씬 크다. 또 건강 프로그램은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도 가져온다. 국민 10명 중 7명 이상(77.7%)은 기업이 투자할 때 직원 건강자산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경영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핵심이 돼야 한다.

한국형 모델 ‘건강100세회의’

중앙SUNDAY와 서울대 의대는 2019년 2월 기업이 건강경영에 참여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만드는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건강경영 어젠다를 제시하고 건강문화확산공동캠페인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다. 정부와 기업이 중점을 두는 질병 관리를 넘어 건강 관리와 증진 활동을 통해 질병을 예방함으로써 생산성·효율성을 높이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건강경영 실천 풍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해 4월에는 기업의 건강친화환경 조성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고 7월에 중앙SUNDAY-서울대 의대 공동으로 기업건강경영실태를 조사하고 보도했다. 10월에 건강경영 문화 정착을 위한 ‘건강100세회의’ 추진위원회를 출범하기 위한 국회 원탁회의가 열렸다. 이후 대형 금융기관과 대기업·공공기관 등이 자발적으로 과학적 프로세스를 따르는 한국형 건강경영모델 만들기 선도 기업으로 합류하기로 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본격적인 실천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못했다.

그런 중에도 한국형 건강경영모델 개발에 가장 먼저 참여한 기업은 KB국민은행이다. KB국민은행은 두 차례에 걸쳐서 중앙SUNDAY-서울대 의대의 총체적인 건강경영체계와 정신건강 진단과 컨설팅을 받았다. 건강한 직장 만들기의 일환으로 전담 조직인 건강전략센터를 조직했다. 임직원 건강 관리를 기획하고 추진을 총괄하는 최고건강책임자(CHO)를 임명했다.

앞서 구글은 2019년 미국 보건부 보건정보기술 국가조정관 등을 역임한 캐런 볼링저 드샐보를 CHO로 임명했다. KB국민은행은 직원 건강 검진을 양적 증대에서 ‘참여와 책임의 건강 검진 품질 강화’로 전환하고자 했다. 서울대 의대와 건강 조사 기업 덕인원이 공동 개발한 ‘근거 기반의 건강검진 프로그램 기준’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해 직원들이 건강 검진 프로그램을 선택할 때 참고하도록 했다.

일본 건강인증 기업 5년 새 30배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선진국들은 건강경영정책을 어떻게 하고 있나.

미국은 질병관리본부 주도로 건강보험료 등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정책으로 건강을 국가자산으로 관리하고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2008년 직장 건강경영 체계를 스스로 평가하고 계획할 수 있는 ‘직장 건강 평가표’를 개발해 보급하기 시작했다. 또 기업들에 ‘국가 건강 직장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진단→계획→실행→평가’의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건강 전략을 실행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은 2009년 근로자복지법을 제정해 기업의 건강경영 비용에 대해 세액 공제를 해주고 있다. 특히 과학적으로 공인된 건강 프로그램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세제 혜택을 준다.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무분별한 건강 프로그램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일본은 경제산업성이 건강경영에 대한 기치를 내세우고 후생성이 지원한다. 경제산업성은 직원의 건강 유지·증진을 위한 건강경영이 기업 수익성을 높이는 전략적 ‘건강 투자’로 이해한다. 기업이 직원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면 직원들의 활력 증대와 함께 생산성이 향상돼 기업 가치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기업의 건강경영을 지원할 헬스케어 산업 육성이라는 효과도 노린 정책이다.

저출산·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일본은 2015년 직장·지역에서 구체적 대응책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 일본건강회의를 조직했다. 국민의 건강 수명 연장과 적정 의료 제공을 위해 경제 단체, 의료 단체, 보험자 등의 민간 조직이나 지자체가 제휴했다. 건강경영을 도입한 기업들을 표창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건강경영 우량 법인’ 인증 제도는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3월 기준 이 인증을 받은 대기업은 2676개, 중소기업은 1만4012개에 달했다. 인증 첫해인 2017년(대기업 235개, 중소기업 318개)에 비해 괄목할 만한 증가다. 일본건강회의가 기업 건강경영 진단부터 교육, 저변 확산, 프로그램 개발, 정책 제안 등 실무를 맡고 있다. 일본의 건강경영모델을 중국과 아시아 시장으로 확산한다는 목표까지 제시했다.

미국과 일본식 모델 장점 결합

우리의 건강경영 운동은 어떤 전략을 써야 할까. 미국식 과학적 프로세스를 도입하되 민·관·정 협의체의 상호부조 형태의 건강경영 공동체를 구성해 건강경영을 보급하는 게 효율적이다. 기업별로 최적의 건강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되, 일본처럼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하고 건강100세회의가 민간 추진기구로서 실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강100세회의를 통해 건강경영 기업들의 경험과 기술을 공유하게 한다. 또 직장인들끼리 자율적으로 만든 다양한 소규모 건강 관리 커뮤니티를 구성하되 디지털로 연계한다. 이를 협력사에 전수하고 지역사회와 협력한다면 사회적 공헌도 가능하다. 건강경영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이다. 건강100세회의 참여 기업들은 ‘아시아 건강경영 모델’ 표준이 될 것이다.

기업들이 과학적 근거와 건강 전략에 입각한 건강 문화를 조성한다면 건강과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고 건강보험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정부가 이들 기업에 건강보험료 인하와 세제 혜택을 제공하면 기업은 더욱 적극적으로 건강 투자에 나설 것이다.

또 여기에 참여하는 개인도 연금처럼 꺼내쓸 수 있는 건강 포인트로 저축해 의료비로 쓸 수 있도록 혜택을 준다면 건강도 좋아지고 의료비 부담도 줄어든다. 건강자산 투자다. 2019년 조사에서 ‘건강 친화 환경 촉진을 위한 법률’ 제정 필요성에 대해서 국민 86%가 찬성했다. 법률 제정을 통해 정책을 뒷받침할 때가 됐다.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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