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무대 위의 판타지, 무대 뒤의 고통
오페라는 바로크 시대 초기,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을 재현하자는 의도에서 출발한 초창기 오페라의 목표는 무대 위에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를 펼치는 것이었다. 그 시대에는 오페라가 현실을 ‘묘사’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신, 영웅, 왕, 귀족이 아닌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일상을 무대 위에 올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크 오페라에서 신이나 영웅 같은 중요한 역할은 남성 거세가수인 카스트라토가 맡았다. 변성기 이전에 거세해서 어른이 되어서도 높은음을 낼 수 있는 카스트라토는 여성의 높은 음역에 남성 특유의 강력함을 결합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소프라노였다. 이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냈는데, 이런 성별의 모호함이 오페라의 ‘판타지’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당시 카스트라토의 인기는 요즘 한창 잘 나가는 대중스타 뺨칠 정도였다. 일단 이름난 카스트라토가 되면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에 어찌 영광만 있을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카스트라토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보면 일반인보다 큰 몸에 유난히 긴 팔다리를 가진, 매우 기형적인 체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남성은 사춘기가 지나면 성장이 멈추는데, 거세한 남성은 사춘기 이후에도 계속 조금씩 성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기형적인 체형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 18세기에 활동했던 한 카스트라토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의사들이 최첨단 기법을 이용해 유골을 검사한 결과, 그가 심한 골다공증을 앓았으며, 여러 부위의 근골격계 질환으로 만성 통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건강 상태가 거의 재앙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판타지의 대가치고는 너무 혹독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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