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항으로 10시간 이상... '롱디 부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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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18년간 가장 노릇을 하던 아내. 대학원 석사 시절에 결혼해서 박사, 강사를 거쳐 유럽 대학 교수가 되어 떠난 남편.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를 넘어 일 년에 서너 번 보는 롱디 부부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최혜선 기자]
체코와 한국은 7시간 시차가 있다. 내가 오전 7시에 일어났다면 그에게는 밤 12시인 셈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굿모닝~' 하며 아침 인사를 하고 싶지만, 그는 카톡 알람 소리에 잠이 깨서 한참을 잠 못 들고 설칠지도 모른다. 카톡 알림을 꺼놓으라고 해도 외딴 곳에 혼자 있는 남편은 가족단톡방의 알림을 끄지 않았다.
▲ 세계 각지의 시간 |
ⓒ ⓒ luiscortestamez |
남편은 잠귀가 밝은 편이었다. 머리를 대면 금방 잠들기는 했지만 옆에 있는 사람의 기척, 다른 방의 문소리 같은 작은 소리에도 깨곤 했다. 그나마 몇 년 전 우울증을 한바탕 앓고 난 후에는 쉽게 잠들지도 못 해서 그가 잠들어 있을 시간에는 절대 카톡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반대로 그에게는 내가 잠들었을 시간대에라도 그가 본 것, 생각한 것, 만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가족톡방에 사진을 올리든 글을 올리든 주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가 가 있는 세계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없으니 무엇이든 새롭고 반가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쉽게 잠들고 잠들면 옆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좀처럼 깨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중에'라고 미루다보면 사진 찍을 것도 찍지 않게 되고, 생각했던 것도 잊기 십상인지라 가능한 한 더 많이 더 가볍게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잠에서 깨었을 때 굿모닝 인사를 못 하고 그는 잠들기 전에 잘 자라는 인사를 못 한다. 그가 잠들 시간에 이미 나는 깊은 밤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한낮에 그에게 굿모닝 인사를 하고, 그는 해가 질 저녁 무렵 나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한다.
서로의 시간에 맞춰서 각자의 상황에서는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것은 우리 사이에는 시차가 있다는 것, 서로가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시간대에 사는 게 맞고 체코 시간대에 사는 게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다름이지 틀림이 아니다. 각 나라가 위치한 경도에 따라 시차가 존재하듯 자라온 환경, 사고방식, 현재 놓인 상황에 따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여러 차이가 있다. 하지만 사람 간의 다름은 종종 틀림으로 받아들여진다.
남편과 나는 결혼 생활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함께 박박 기었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자기의 힘듦에만 몰입해서 상대가 자신의 기대에 맞게 움직이지 않는다고 서로를 비난했던 때도 있었다. 그때 남편은 나에게 '넌 왜 나한테만 이렇게 인색하냐'고 화를 냈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내가 과연 남편에게만 인색한가?
생각해보니 나는 나에게 인색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도 나 자신에게 장하다, 수고했다, 한 번 말해주지 않았고 항상 돈 버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는 즐겨도 되는 부분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항상 아직 멀었다고만 생각했다. 반면 남편은 내 기준에는 가장 노릇을 하기에 턱도 없이 부족한데도 현재를 즐기려고 했고 나는 그런 그를 무책임하다고 느꼈다.
나는 남편을 나와 동격으로 두었던 것이었다. 그가 곧 나니까 특별히 배려하거나 존중하거나 내 입장에 대해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오랜 기간 상처받은 남편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그는 내가 아니었다. 우리는 달랐다. 시차만큼이나 엄연하게도 존재 간의 차이가 있었는데 나는 그걸 인정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옳고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맞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내 생각이 당연한 게 아니라 사람은 모두 다르며 그것은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라는 사고 방식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상처를 주고 받으며 애증을 쌓으며 살았다.
내가 나에게 인색하고 그를 나와 동일시했기 때문에 그도 나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는 것을 안 후로 나는 나를 조금 더 보듬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만큼 그에게도 '그럴 수 있지'라는 너그러움을 가질 수 있었다.
▲ 남편이 체코에서 보내온 사진. |
ⓒ 최혜선 |
우리가 편하게 서로에게 연락할 수 있으려면 한국 시각으로 오후 2시는 되어야 한다. 그때쯤이면 체코가 오전 7시이기 때문이다. 내가 밤 12시에 잔다면 그에게는 오후 5시이다. 그러니 우리가 함께 깨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10시간 정도다.
오후 2시가 되면 그가 전화를 걸어오고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밤새 잘 잤는지 묻고 오늘은 어떤 일이 있는지 물어본다. 밤에 잠을 잘 잤다고 하면 잘 됐다고 반가워하고 잘 못잤다고 하면 힘들었겠다고 공감해준다.
운동을 하러 간다고 하면 다치지 말고 즐겁게 하고 오라는 말로 배웅하고 연구실에 나가서 논문을 읽는다고 하면 이러다 세계적인 대학자가 되시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건넨다.
남편도 내가 쓴 글을 읽었다고 얘기하고 무사히 출장을 마치고 와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통화할 때도 잘 지내고 있는지 묻고 잘 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말을 해준다. 어질러진 방이나 낮에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은 보지 못하니 좋은 말만 오간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하루의 반 이하로 줄었지만 그래서 서로에게 건네는 말의 내용에 마음을 쓰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해야 하고 듣고 싶은 말은 응원과 공감이지 충고와 조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덕분에 나도 아이들에게 하는 말에서 가시를 조금씩 걸러내게 된다. 머리 속에서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중학교 2학년이나 되는 녀석이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적은 거 아냐?' 싶지만 그거라도 매일 하는 걸 인정(칭찬은 아니다)해 주는 쪽을 선택하려 한다.
직항으로 10시간 넘게 떨어져있는 물리적 거리와 그와 내가 공유하는 하루를 10시간으로 줄여놓은 시차의 제약 덕분에 벼리게 된 감각이다. 롱디 생활로 이 감각을 멋지게 내 것으로 만들고나면 함께 대화하기 좋은 부부 사이에 더 가까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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