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명 동시에 통화버튼 눌렀다…'예식장 전쟁' 벌어진 씁쓸 사연
지난달 1일 오전 8시58분. 세종시에 거주하는 예비신랑 정모(31)씨와 예비신부, 그리고 이들의 지인 20명은 휴대전화에 강남의 한 대형 웨딩홀의 연락처를 입력해놓고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시계가 8시59분을 가리키자 이들은 일제히 통화버튼을 눌렀다. 통화 중이라는 연결음이 뜨면 전화를 끊고 다시 걸기를 수십번 반복하는 사이, 한 명이 전화 연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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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건수보다 예식장 폐업속도↑…예식장 없어 발 동동
최근 예비부부들 사이에선 정씨처럼 예식장 선점을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게 일상이 됐다. 예비부부들이 많이 찾는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웨딩홀 선착순 예약 꿀팁'이라며 '취소 표가 나올 수 있으니 계속 새로고침을 눌러라' '무조건 PC방에 가라'는 등의 조언을 담은 후기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이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예식장의 폐업 속도가 혼인건수 감소를 앞지르고 있는 데다가 그간 결혼식을 미뤄오던 예비부부들이 앞다퉈 식장 예약에 달려들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0일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1~7월 월평균 전국의 예식장 수는 743곳이다. 2019년만 해도 936곳으로 1000곳에 가까웠지만 팬데믹 이후 폐업하는 곳이 증가하면서 2020년 876곳→2021년 821곳→2022년 778곳→2023년 743곳까지 감소했다. 2019년보다 약 20.6% 감소한 것으로 매년 약 50여곳의 예식장이 없어진 셈이다.
반면 올해 1~7월 월평균 혼인건수는 1만6551건이다. 2019년(1만9895건)보다 16.8% 줄었다. 혼인건수 감소보다 예식장 감소 속도가 더 빠르다 보니 예비부부들이 식장 예약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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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1년 반 전엔 예약해야…“2년 사이 격세지감”
익명을 요청한 한 웨딩플래너는 “예식장 목록을 파일로 만들어 예비부부들에게 보여주는데 파일 두께가 코로나 이전보다 확연하게 줄었다”라며 “최소 1년~1년 반 전에는 식장을 알아봐야 그나마 원하는 곳에서 식을 올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거리두기가 한창이던 2021년 10월 서울 구로구의 한 4성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모(31)씨도 지인들의 결혼 준비 과정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당시만 해도 예식장에서 '원하는 시간을 다 맞춰줄 테니 꼭 상담을 받으러 오라'며 당부했었는데,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방은 경쟁 더 치열…공공예식장 요구도
예식장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방의 경우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작년과 올해 7월 기준 전국 시도별 예식장 숫자와 지역별 혼인건수를 단순 비교해본 결과 울산은 예식장 1곳당 혼인건수가 14.9→18.8건으로, 세종은 26.4→30건, 부산은 15.5→17.6건으로 증가했다. 이들이 실제 해당 지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가정한다면 예식장 선점 경쟁이 과거보다 더 치열해졌다는 의미다. 이 외에 대구와 경북·경남·강원도에서도 예식장 1곳당 혼인건수가 올라갔다.
예비부부들 사이에선 ‘쓸만한’ 공공예식장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서울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는 소정의 대관료를 받고 공공시설을 예식장으로 개방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5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N포(취업, 자산, 집, 결혼 등) 세대’의 삶에 실질적인 지원책을 가동해 미래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청년 NO포 서울’을 만들겠다”며 서울형 결혼정보 플랫폼을 운영하고 공공공간을 ‘모두의 예식장’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 지나치게 낡은 건물이거나 예식장으로 쓸 준비가 안 돼 있어 사용이 꺼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전문 예식홀과 비교하면 아직 젊은이들의 취향에 잘 안 맞는 부분이 있다. 청년들이 예식장 문제로 고통을 겪지 않도록 리모델링을 하는 한편 공급 숫자를 좀더 늘리는 적극적인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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