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광주서 무릎꿇은 날, 당은 사면·험지출마로 종일 싸웠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혁신위원들과 함께 30일 오전 광주 5ㆍ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혁신위의 첫 외부 일정이다. 인 위원장은 행방불명자 묘역에 헌화한 뒤 5초가량 한쪽 무릎을 꿇고 묵념했다. 1970년 폴란드를 찾아 나치 정권의 악행에 대해 무릎을 꿇고 반성하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를 연상케 한다는 평가가 당 내에서 나왔다. 2020년 8월 광주를 찾은 김종인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이곳에서 무릎을 꿇었다.
인 위원장은 방명록에 “광주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참배 뒤 기자들과 만나 “광주 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업적이었고,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다”며 “유대인들이 한 말을 빌리자면, ‘용서는 하되 잊지 말자’”라고 했다. 인 위원장은 연세대 재학 중이던 20대 시절,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통역을 맡은 인연이 있다.
인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은 오후엔 서울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그는 현충탑에 헌화, 분향한 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또 우리도 여기에 들르면서 희생할 각오를 가졌다”며 “통합을 위해 힘이 될 수 있도록 뚜벅뚜벅 걸어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인 위원장의 첫 외부 일정은 그가 야심차게 던진 '통합'의 화두가 삐걱대는 상황에서 진행됐다. 혁신위 1호 안건으로 꺼내 든 ‘당내 대사면’ 제안이 당사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면서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던진 영남권 스타 의원들의 수도권 험지 출마론도 당 내에서 여러 논란을 낳고 있다. 실제로 그가 ‘산토끼’를 잡기 위한 외부 행보에 시동을 건 날에도 국민의힘은 온종일 시끄러웠다.
이날 혁신위는 현충원 참배 뒤 회의를 열어 1호 안건인 ‘당내 대사면 건의’를 의결했다.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김재원 최고위원 등이 대상으로 이들의 징계 해제 여부는 다음 달 2일 당 최고위회의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당내 사면에 대해 이 전 대표와 홍 시장 등 당사자가 강하게 반발하고, 이에 사면 의결 권한이 있는 당 지도부도 불쾌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당내 갈등이 또 한 번 표출됐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당 최고위회의 뒤 취재진과 만나 “(홍 시장 페이스북 글에 달린) 일부 댓글을 보니까 ‘홍카콜라인줄 알았는데, 쉰카콜라’란 글이 있었다”며 “(징계 사유인) 수해가 엄청 심했던 상황에서 골프 쳤던 걸 이제 와서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글을 뱉어내듯 쏟아내는 건 자중하셨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부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 이 전 대표를 겨냥해선 “반수생이 다시 시험을 봐서 다른 학교로 갈지, 지금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지난 학기에 교수가 평점을 안 줬다거나, 조교가 학사 지도를 잘 안 해줬다고 불평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이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제발 사면받아줘’는 인제 그만 하라. 좀스럽고 민망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준석한테는 몰라도, 홍 시장에겐 그러면 안 된다. 쉰카콜라란 말이 당 대변인 입에서 나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당 지도부를 치받았다.
이날 국회를 찾은 홍 시장도 “사면이란 건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용어 자체가 적절치 않다”며 “오히려 징계를 받은 게 앞으로 정치 역정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사면에 관심이 없고, 거기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당내에선 전광훈 목사와 5ㆍ18 망언 등의 대화를 나눠 징계를 받은 김 최고위원이 사면 대상에 포함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한 국민의힘의 중진 의원은 “5ㆍ18 민주묘지를 참배한 혁신위가, 같은 날 5ㆍ18 폄훼 망언을 한 사람을 사면 건의한 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인 위원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김기현ㆍ주호영 등 영남 스타 험지 출마론’‘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으로’ 등의 발언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종일 시끄러웠다. 특히 이날 오전 당 의원총회에선 대구ㆍ경북(TK)지역 의원들이 대거 인 위원장의 최근 발언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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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대구 달서병) 의원은 취재진과 만나 “인 위원장은 TK 주민들에게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된 곳이 TK 아니냐. 이런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마치 잡아놓은 고기 취급하는 격”이라고 반발했다. 의총에선 “혁신위에 내년 총선 출마 예정자들이 포진해 공정성이 의심된다”는 등의 성토도 나왔다고 한다. 홍 시장은 “(미국) 콜로라도주 의원을 워싱턴D.C.에 갖다 놓으면 선거가 되겠냐”고 비판했다.
이날 인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특정인의) 이름을 거명한 적은 없다”며 전날에 이어 또 한 번 부인했다. 그는 “많은 오보가 나간다. 정확하게는 ‘경상남북도에 훌륭한 국회의원들이 서울에 와서 경쟁력이 있으면 좀 도왔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라며 “이제 문화가 바뀌어서 정치인이 희생하고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그런 사상 전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당내에선 혁신위가 여권 위기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용산 대통령실과 여당의 수직적 당정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화하지 않고선 내년 총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날 하태경 의원과 10여명의 수도권 전ㆍ현직 원외위원장이 함께한 간담회에서 김용남 전 경기 수원병 위원장은 “당보다 더 중요한 당원은 없다. 그 당원이 1호 당원(대통령)이라도 마찬가지”라며 “수직적인 대통령실과 당의 관계는 반드시 정상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혁신위가 약효 두달짜리 스테로이드 주사가 돼선 안 된다. 근본적 질병을 치료하는 항생제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인 위원장은 이날 “저는 온돌방 아래서 자란 사람이다. 월권 하지 않는다”며 “대통령은 나라를 이끌 분이고, 당 대표는 당을 이끄는 분인데 거기 관여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다.
김기정·전민구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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