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의 '뚫린 입'에 국민의힘 '자중지란'

박현광 2023. 10. 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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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발언에 TK 의원 공개 반발... '말바꾸기' 논란까지

[박현광 기자]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위원 인선 배경을 밝힌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남소연
 
'통합, 희생, 다양성'

지난 23일 임명된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세 가지 혁신의 기치를 내세웠다. 이를 통해 당의 단일대오를 이뤄낸 뒤 총선 승리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혁신위 출범 일주일 만에 당은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 모양새다. 그의 '거친 입' 탓이다.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거듭 강조한 인요한

인 위원장은 임명되자마자 TV와 신문을 가리지 않고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 나섰다. 호방한 화법을 가진 그는 발언을 거침없이 뱉어냈다. 특히 임명 다음 날인 24일 <TV조선>과 전화 인터뷰에서 "당내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당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영남권(TK·PK) 의원들의 '희생'을 뜻하는 것이었다.

당내의 비토 분위기가 감지되자 인 혁신위원장은 발언 직후인 25일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농담"이라고 수습했다. "좀 더 다양성이 있어야 된다는 의미에서 이야기한 것"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인 위원장의 '영남권 희생' 발언은 실언이 아니었다. 이후 그는 이어지는 언론 인터뷰에서 줄곧 국민의힘이 '영남당'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하는 동시에 '영남권 스타 의원'의 수도권 출마론을 내세웠다. 그러니까 깃발 꽂으면 당선되는 TK(대구·경북)와 PK(부산·울산·경남)에서 여러 번 당선된 의원들은 수도권 험지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당이 무슨 낙동강 하류당이 돼 버렸다" -10월 27일 <동아일보> 인터뷰
"스타가 있으면 험지에 와서 한번 힘든 것을 도와줘야 한다" -10월 27일 <채널A> 인터뷰

인터뷰를 거듭하던 인 위원장은 급기야 '영남 스타 의원'으로 김기현 대표(울산 남구을·4선)와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구갑·5선)을 지목했다. 그는 28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TK·PK의 스타는 (총선 때) 서울에 왔으면 한다"며 "김기현 대표도, 주호영 의원도 스타들 아닌가"라고 밝혔다.

영남 의원 반발 거세자 인요한 "오보가 나갔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대구광역시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영남권 의원들은 결국 폭발했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용판 의원(대구 달서구병·초선)은 공개적으로 인 위원장의 사과를 요구했고, 류성걸 의원(대구 동구갑·재선)은 '영남권'을 소홀히 하는 방식으로 가선 안 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이날 의원총회 이후 국회에서 진행된 '대구광역시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인요한 위원장은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으로 하라고 운운한 데 대해 대구·경북의 시·도민들에게 정중히 사과해야 된다"며 "해당 행위 가까운 언동이다"라고 인 위원장에게 강하게 경고했다.

홍준표 대구시장 또한 지원사격했다. 홍 시장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대구광역시 예산정책협의회' 참석을 마친 뒤 "(미국) 콜로라도주의 의원을 워싱턴DC에 갔다 놓으면 그게 선거가 되느냐"는 말로 영남권 중진 수도권 차출론을 일축했다.

일각에선 영남권 의원들의 공천 불안감을 자극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여의도 정치권을 휩싸고 있는 용산 대통령실발 검사 출신의 '낙하산 공천' 소문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인 위원장은 영남권 의원들의 반발이 있자 "많은 오보가 나갔다"며 말을 바꿨다. 그는 30일 서울 국립현충원 참배 이후 취재진에게 "그러니까 경상남북도에 훌륭한 국회의원들이 서울로 와서 경쟁력이 있으면 도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이름을 거명한 것도 없고 거기에 더 큰 의미도 아니고 더 작은 의미도 아니"라고 답했다.

리스크가 되어 가는 인요한의 '입'과 그의 말 바꾸기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위원 인선 배경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인 위원장의 말 바꾸기는 처음이 아니다. 24일 <중앙일보>와 만나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몇 년 전 '길길이 산다(예능 프로그램)'에 (최명길) 사모님과 같이 출연해서 엄청 친한 사이"라며 "평소에도 전화를 매일 한다"고 밝혔다.

이 발언 이후 인 위원장 임명 배경엔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이어졌다. 혁신위가 개혁군이 아닌 결국 또 다른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 조직이 아니냐는 비판도 함께였다.

파장이 커지자 김 위원장 쪽에서 "아마 '매년'을 '매일'로 잘못 답변했던지 아니면 듣는 쪽에서 잘못 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김한길-인요한' 친분을 부인하고 나섰다. 그러자 인 위원장은 "(김 위원장과) 4~5번 정도 통화했고 다 합쳐봐야 그것밖에 안 된다"며 "팩트를 잘 확인하라"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선 발언 후 수습' 상황이 임명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확대하는 당내 전선...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몰라" 우려도
 
▲ 눈물 훔치는 이준석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현안 관련 기자회견 중 해병대 채모 상병, 서이초 사건 등을 이야기하다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남소연
 
인 위원장이 당내에 형성한 전선이 하나 더 있다. 이준석·홍준표와의 싸움이다. 이는 인 위원장이 27일 1호 안건으로 '중징계 대사면'을 들고나오면서 시작했다. 주요 인사의 징계를 취소해 당내 통합을 이루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이 결정은 당 내홍을 심화하는 결과만 낳았다.

'사면'으로 '수혜'를 입을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이 오히려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당을 비판하자, 당 지도부가 참전한 것이다. 이 전 대표와 홍 시장은 자신들이 중징계를 받은 건 잘못해서가 아니라 권력 암투에 밀린 치욕이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자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자중하라"고 경고했다.

홍 시장은 30일 국회를 찾아 "사면이란 건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는 대통령의 권한"이라며 "징계를 취소해버리면 될 것을 왜 사면이라는 용어를 쓰느냐"고 격분했다. 

이 전 대표는 30일 C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학교폭력을 한 연예인이 피해자한테 억지로 사과하고 관계가 개선됐으니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라며 "징계가 잘못됐고, 과거에 당이 다른 의견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윤리위를 가동했던 것을 반성한다고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3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지금 당이 이것저것 어렵고 힘든 상황인데 그래도 당을 오랫동안 지켜온 중진으로서 챙겨주시고 감안하고 해줬으면 하는 부탁이 있다"며 "각각의 얘기들을 쏟아내는 건 자중하셨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부탁을 가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인 위원장이 들어와서 지금 얼마 됐다고 당이 엉망 아니냐"라며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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