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미터 크기의 양자점, 자연 그대로의 색에 도전하다
[최준호의 사이언스&] 나노 석학 현택환 교수의 노벨상 이야기
한국 과학자 중 노벨상 후보는 정말 없었을까. 누가 노벨상 후보였는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노벨위원회가 노벨상 후보를 포함, 선정까지 모든 과정을 50년간 비밀로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학술정보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매년 9월 하순 논문 피인용수 등을 근거로 ‘노벨상 유력 후보(Citation Laureates)’를 발표하는데, 이게 마치 ‘노벨상 후보’처럼 유통될 뿐이다.
다만 클래리베이트가 예측한 노벨상 유력 후보에 오른 과학자 다섯 명 중 한 명(17%)은 해당 연도는 아니더라도 결국 노벨 과학상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 중에는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2021년)와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명공학부 교수(2020년), 유룡 한국에너지공과대 교수(2014년, 당시 KAIST),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2017년)가 그간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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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화학상에 근접했던 현택환 교수
이 중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에 가장 근접했던 이가 현택환 교수다. 현 교수는 균일한 나노입자, 즉 양자점을 대량으로 합성할 수 있는 ‘승온법’(Heat-up Process)을 개발해 2004년 12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발표했다.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예키모프와 브루스가 양자점을 처음 발견·개발했다면, 공동 수상자인 바웬디 교수는 이를 실험실 수준에서 처음으로 균일하게 합성했다.
현 교수는 올해 수상자 3인과 함께 양자점 관련 세계 학계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다. 삼성전자의 QLED TV도 현 교수의 승온법으로 구현됐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제2공학관에서 현 교수를 만나 올해 노벨과학상 뒷얘기를 들었다.
Q : 양자점이란 무엇인가
A : 양자점(quantum dot)은 크기가 수㎚(나노미터·10억 분의 1m) 크기인 반도체 결정을 말한다. 양자점의 크기를 나노기술로 조절하면 가전자대와 전도대 사이의 밴드갭이 달라지고, 이 사이를 오가는 전자의 움직임도 제어할 수 있다. 빛을 흡수해 들뜬 전자가 빛으로 방출하는 에너지 파장을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Q : 양자점은 언제 어떻게 발견됐나.
A : 1981년 당시 러시아의 알렉세이 예키모프 박사가 논문으로 처음 발표했다. 이후 1982년 러시아의 알렉세이 에프로스 박사가 유사한 논문을 러시아 학술지에 냈다. 루이스 브루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앞서 두 사람이 양자점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1983년 사실상 같은 내용을 저명 국제학술지인 ‘저널 오브 케미컬 피직스’(journal of chemical physics)에 냈다.
Q : 올 노벨화학상이 남달랐겠다.
A : 사실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양자점 관련 3인이 노벨 화학상을 받는다면, 에프로스 박사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양자점 관련 세계 학계가 인정하는 견해다. 바웬디 교수는 브루스 교수의 제자로서, 스승이 발견한 양자점을 실험실 단계에서 구현했다. 우리 연구실은 균일한 나노입자를 대량으로 합성할 수 있는 승온법을 개발해 실제 산업에 쓰일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앞선 세 사람이 이론으로 먼저 노벨상을 받고, 10여년쯤 지나서 바웬디 교수와 내가 양자점 상용화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을 기회가 오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A : 양자점은 입자 크기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다양한 자연 그대로의 형광색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빨간색은 6.3㎚, 초록색은 3.4㎚, 파란색은 2.5㎚에서 구현된다. 양자점이 만들어 내는 빛의 삼원색을 이용해 양자점 텔레비전(QLED TV)의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거다. 에너지 효율과 내구성이 높아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의료기기 등 다양한 분야의 차세대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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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나노기술 세계 최정상급
Q : 삼성 QLED는 진짜 양자점 TV가 아니라는 얘기가 있다.
A : 삼성전자의 QLED 디스플레이는 엄밀히 얘기하면 ‘퀀텀닷 인헨스트(enhanced) LCD’다. 디스플레이의 맨 뒤에 파란색 LED가 빨강·초록빛을 내는 양자점층에 주사해서 빛의 3원색을 구현한다. 세계 어디에서도 아직 양자점 중 파란색은 완전하게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에선 현재에도 파란색을 얻기 위해 엄청난 R&D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QLED는 일본 소니가 2013년 처음으로 구현했다. 당시 독성 물질인 카드뮴을 이용하는 바람에 수출길이 막혀서 결국 포기했다. 삼성은 카드뮴 대신 인화 인듐을 써서 QLED를 개발했다.
Q : 한국의 노벨과학상은 언제쯤 나올까.
A : 개인적으로 노벨 화학상에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가 유력하다고 생각해왔다. 내가 상용화를 위한 양자점의 대량 합성 기술에 성공한 것처럼, 박 교수는 기존 실리콘 소재 태양전지의 단점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2012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2009년 일본 연구진이 처음 개발했지만, 에너지 전환 효율이 낮아 상용화하기 어려웠다.
Q : 현 정부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영입 1순위였다고 들었다.
A : 나는 연구자이지, 장관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직 연구자로서 할 일도 남아 있다. 우리 연구실이 나노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에 있는 그룹인데, 1~2년 자리를 비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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