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이란 소중한 공간이 훼손됐구나 깨달았어요"
[용산FM 기자]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이태원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자에게 이태원은 어떤 의미인지,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 기록이 또 다른 이야기를 여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난여름, 일곱 명의 기록단이 아홉 명의 인터뷰이를 인터뷰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일곱 명의 기록단을 역으로 인터뷰했습니다.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이태원과 참사의 의미를 폭넓게 그리고자 합니다."
▲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인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4대종교기도회에서 유가족과 종교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
ⓒ 유성호 |
"안녕하세요. 한빛 엄마 김혜영입니다."* 혜영씨의 소개는 한결같다. 몇 해 전 아들 한빛을 떠나보낸 혜영씨에게 '기억'의 중요성은 남다르다. 난생처음 기록 활동에 자원한 까닭도 마찬가지다. 지난여름, 혜영씨는 그렇게 이태원 참사 관련 두 개의 기록단에 참여해 각각 지역 주민과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에도 희생자 송영주씨의 언니 지은씨를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해당 기록은 인터뷰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에 수록되었다). * 2016년, 이한빛 PD는 열악한 방송 노동 환경을 알리며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유가족이 유가족을 인터뷰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았어요. 조금은 알고 싶었거든요. 유가족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 말이 우습기는 하지만, 선경험자로서 위로나 용기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 역할을 다하고 싶었죠. 같이 동행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모집 공지를 보고, 혜영씨는 생각했다. 자신이 공감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먼저 유가족이 되었으므로. 언젠가 혜영씨 곁에 선 사람들처럼, 혜영씨 역시 유가족 곁에 서고자 했다. "죽을 때까지 그 은혜를 잊으면 안 되겠다." 그런 다짐을 되새겼다. 사실 인터뷰어가 되는 게 자신은 없었다. 그래도 몹시 잘하고 싶었다.
"자식이 죽었어요. 그럼 왜 죽었는지 알아야겠죠. 진상을 정확히 안다는 건 그 죽음에 대한 명예회복이에요. 그냥 죽은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지금 거의 안 되고 있잖아요. 또 하나는 흔히 말하는 애도의 과정이라는 게 있어요, 애도. 많이 슬퍼하고 많이 생각하면서 자식을 마음에서 잘 떠나보내야 하는데, 유가족분들은 진상규명하느라고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을 거예요. 그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가슴 속에 돌덩이가 그대로 있을 거고."
"왜냐하면, 내가 많이 변했거든요"
혜영씨가 또 하나 중요하게 여기는 건 '마을'이다. 혜영씨는 이태원이 마을로서 그 가치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의 슬로건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시 놀고 싶은 이태원을 만드는 데 고민을 보태고 싶었다. 혜영씨에게 이태원은 아주 낯선 공간이었다. 때문에 혜영씨는 기록단 활동을 하면서 이태원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혜영씨가 그동안 갖고 있던 편견을 스스로 깨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태원 클럽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네모나게 생겼을까, 세모나게 생겼을까. 그런데 기록단에서 이태원을 답사하면서 내가 여태까지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깜짝 놀랐어요. 난 이태원 하면 성소수자들만 오고, 클럽 문화만 발달되어 있고, 외국인들 자유롭게 입고 돌아다니고, 그러니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인 줄 알았거든요. 이렇게 편견을 갖고 육십 몇 살까지 살았다는 건 문제 있는 거 아닌가? 다 편견이에요. 편견. 제가 알지도 못하면서 편견을 품고 있었어요."
그 편견은 왜 생겼을까. 혜영씨는 언론을 떠올렸다. 언젠가 언론은 이태원의 클럽을 코로나 발상지로 지목하며 비난을 더했다. "그거 하나만 나오니까 나 같은 사람은 되게 편협해지는 거예요." 그에 비해, 혜영씨가 직접 만난 풍경은 훨씬 다채로웠다. 골목 사이 오밀조밀 자리한 가게부터 언덕 위에 위치한 부군당역사공원까지. 이태원의 고유성과 역사성에 감동한 혜영씨는 지역 주민 보영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었다.
"윤보영 선생님이 기꺼이 해줘서 고마웠어요. 그렇지 않아도 이태원에 대한 편견이 깨졌는데, 막 월요일이면 똥오줌 많다는 얘기까지 나왔잖아요. 분명히 맞는 말이잖아요. 거짓말한 건 아니니까. 그래서 환상도 깨지면서 이태원도 그냥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었죠. 그리고 이태원을 되게 사랑하대요. 부러웠어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사랑한다는 게."
맨 처음 혜영씨는 결과물이 나오면 유가족에게 전할 참이었다. 이태원에서 다시 놀고 싶다고 말할 때, 거기에는 애도하는 마음도 깃들어 있다고. 그런데 나중에는 이태원에 무지한 사람에게 또한 그 기록을 읽히고 싶어졌다.
"고정된 시각을 갖지 말아라, 편견을 버려라. 그렇게 전하다 보면, 혐오도 없어질 것 같고... 왜냐하면 내가 많이 변했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이 좀 더 많이 공감했으면 좋겠네요. 놀러 가서 죽은 게 아닌데. 이태원은 아무나 즐겁게 갈 수 있는 곳이고, 하루 즐겁게 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그런 곳이라는 걸 가르쳐주고 싶어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다
혜영씨는 비참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힘들어진다. 아들 한빛을 떠나보내고 나서 그 기억이 모든 문제에 자꾸 어른거린다. 동시에 혜영씨는 피해자들이 무엇 때문에 슬퍼하는지 끌어내야 한다며 두 개의 기록단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 중이다. 과연 그토록 힘든 마음을 안고서 어떻게 이 참사를 직면할 수 있었을까.
"제가 이쪽에는 무슨 전투하듯이 다짐하고 들어가잖아요. 그런 것 같아요. 자세히 아는 거는 두렵고 무서운데, 한 명에게라도 더 알려줘야 한다. 내가 기록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기억시켜야 한다. 이런 책임감이나 의무감 때문에 직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속으로 조금 힘들어요. 힘들어서 조절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드는데, 또 안타까우면 가게 되어요."
올해 핼러윈 계획을 묻자, 혜영씨는 유가족이 받을 상처부터 걱정했다. 그런 뜻에서 추모의 성격을 지닌 축제를 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그런데 고민할 사람이 있겠죠.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그 정도 고민은 하고 올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혜영씨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고, 그 메시지도 명료했다.
"기억해 달라. 잊지 말아 달라. 기억해 주고, 잊지 말아 달라. 내 문제다. 나의 일이다. 아이 끝났네."
▲ 2022년 10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에 유족의 요청을 받은 재미교포 이기동씨가 희생자인 미국인 청년 2명의 사진과 국화꽃을 놓았다. 한국에 오지 못한 유족과 지인들에게는 사진을 찍어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
ⓒ 권우성 |
정임씨는 기록 활동가다. 과거 노동 전문 잡지에서 일하며, 주로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 왔다. 그런 작업을 통해 정임씨가 깨달은 게 있다면, 일상의 소중함이다. 그러니까,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뒤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노동이 존재한다는 것.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떠받치고 있는 게 우리 일상인데, 참사는 누군가의 일상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더군다나 충분히 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임씨는 그날을 더욱 죄스럽게 기억한다.
"세월호 때는 제가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배가 부른 상태로 안산에 가서 추모 정도만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많이 컸음에도, 이 참사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더라고요. 녹사평역 쪽 분향소에 가서 슬퍼하고 그랬는데, 그냥 그때 힘들고 괴로워하는 마음만 잠깐 가졌을 뿐이라는 데 미안함이 있어요.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기성세대가 비슷한 무력감을 가질 거예요. 기록으로나마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집회 현장을 다녀 본 정임씨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이더라도 그만한 위험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태원 참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날의 슬픔을 어찌해야 할까. 참사 이후 현장 골목에는 샴페인과 와인 등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앞치마를 두른 채 담배를 태우는 한 상인의 모습이 정임씨 눈에 밟혔다.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정임씨는 생면부지인 사람들이 만난 기록단에 저절로 애정이 갔다. 대부분 버스 정류장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신청한 지역 주민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사실, SNS에서 기록단 모집 공지를 봤을 때는 저처럼 기록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 지역에 살면서 참사를 겪고 느낀 답답함, 트라우마, 괴로움을 공유할 사람들이 모인 거잖아요. 다들 이런 계기를 원했던 거겠죠. 어쩌면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드러내고 풀어낼…"
우리는 당사자를 좁게 생각하고 있다
처음 유가족을 인터뷰할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정임씨는 지역 주민을 만났다. 그렇게 모두가 참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점점 실감했다. 그 현장에 없었거나 그 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누구든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고 국가가 보호해주지 않을 수 있다고.
"우리는 당사자를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유가족뿐만 아니라 사고가 난 줄도 모르고 근처에서 춤추고 있던 사람들도 트라우마를 겪을 거 아니에요. 내가 그렇게 멋모르고 즐기고 있었다는 데 죄책감도 느낄 거고요. 그리고 멀리서 접한 사람들 역시 잠자고 있었거나 시월의 마지막 밤을 기다리며 일상을 보냈을 텐데, 그 미안함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우리도 당사자다. 때문에 유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당사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일까. 이미 많은 인터뷰를 했던 정임씨에게도 당황스러운 순간이 있었다. 인터뷰 도중 민희씨의 손이 벌벌 떨리자 정임씨는 생각했다. '아, 조금 더 긴장하고 왔어야 했구나.' 결국 참사는 현장에서 다치거나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또한 아직 끝나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지고 있는 문제였다.
"인터뷰이분들이 다 너무 빨리 잊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누군가의 기억에 이 참사가 계속 남아 있다는 거, 아직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이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이 지역이 다시금 살아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그걸 드러내는 게 기록단 활동의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소중한 공간이 훼손됐구나
한편, 정임씨는 기록단 활동을 통해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새로 배웠다. 물론 정임씨 또한 과거 용산에 5년 정도 거주했지만, 이태원에 가 볼 기회가 없었을 뿐더러 이전까지는 참사 그 자체에만 주목했다. 그런데 민희씨가 전한 이태원의 일상, 핼러윈의 풍경에는 다름이 공존하는 이태원의 특별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정임씨가 민희씨의 남편 원기씨를 인터뷰이로 추가 섭외한 까닭도 이태원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이 지역을 이리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소중한 공간이 훼손됐구나를 깨달았어요. 원기씨는 자기 추억이 사라질 것 같아서 두렵다고 했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이 공간이 다시 보여요. 단순히 유흥을 즐기는, 흔히 말하는 향락의 장소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 살고 있는 곳, 누군가 추억으로 삼고 애정을 품는 곳이구나."
덕분에 정임씨는 민희씨와 원기씨 두 사람을 만나고도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 속에 지역 주민들이 느끼고 있을 생각과 감정이 살아있으므로. 다만, 보다 높은 연령층의 이야기는 또 어떨지 궁금했다. 같은 지역 주민이라고 하더라도, 삶의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다른 기억을 간직할 게 분명했으니.
유가족의 마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지난 주말에 광주에 북토크를 하러 가서, 기록단 활동에 대해 말했거든요. 그러면서 참사로 몇 분이 돌아가셨는지 아시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몰랐어요. 159명이란 걸. 그런데 원기씨는 분명하게 이야기하시잖아요. 158명에 한 분 더 돌아가셔서 159명이라고. 그리고 그 중 한 명이라도 얼굴을 기억해 달라고 말씀을 하셨고요."
정임씨는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이 독자들에게 유가족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길 바란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순간에 떠났으니까, 그 순간은 상실감을 크게 느꼈을 거라 생각해요. 자신과 같은 시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니까."
정임씨는 우리 사회에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마다 자기 살기 바쁘지만, 나의 울타리를 넘어 공동체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어쩌면 기록단 활동이야말로 정임씨에게 다른 입장에 서 보는 경험이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는 올해 핼러윈은 없을 것 같았는데, 없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데요. 작년에는 초등학생 딸이 학원에서 핼러윈 파티한다고 마녀 옷 이런 거 다 샀거든요. 그렇게 나의 아이만 생각하다가, 이제 나의 아이만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아니니까 한 번 가보고 싶어요."
- 인터뷰어 : 이상민 / 인터뷰이 : 김혜영, 신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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