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서른일곱 신형민의 불꽃, 천안의 열정을 깨웠다

서호정 기자 2023. 10. 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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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신형민은 2010년대 K리그를 대표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다. 2008년 포항스틸러스에 입단, 빠르게 존재감을 드러낸 그는 UAE의 알자지라를 거쳐 전북현대에서 활약하며 허리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포항에서 4개의 트로피(AFC 챔피언스리그, FA컵 2회, 리그컵)를, 전북에서는 6개의 트로피(리그 5회, FA컵)를 들어올렸다. 2021년에는 홍명보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울산현대로 이적, 이청용과 함께 베테랑으로서 무게감 있는 역할을 했다. 2022년 울산이 17년 만에 비원과 같았던 리그 우승에 성공할 때 신형민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있었다. 


하지만 2023년 신형민은 K리그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향했다. 울산과의 2년 계약이 종료되며 작별했다. 1, 2부 리그의 많은 팀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계약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고, 겨울이적시장에서 팀을 찾는 데 실패했다. 6개월 동안 소속팀이 없는 무적 신분이었다. 다시 유니폼을 입은 것은 7월 초, K리그2에 새로 진입한 천안시티FC에 입단하면서다. 천안은 당시 K리그2에서 20경기 동안 첫 승을 달성하지 못한 채 최하위를 기록 중이었다. K리그1 챔피언 팀에서 K리그2 최하위 팀의 일원으로 내려간 것이다. 


축구 인생에서 가장 고된 시간을 뒤로 하고 천안에서 다시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된 신형민. 그런데 7월부터 천안은 다른 팀이 됐다. 7월 23일 성남FC를 상대로 첫 승을 따냈고, 최근 7경기에서 4승 1무 2패의 호성적을 기록 중이다. 서울이랜드, 부천FC, 전남드래곤즈를 연파하며 3연승을 달리기도 했다. 경기력 자체가 7월 이전과는 180도 달라졌다는 호평 속에 천안은 최하위 탈출에도 성공했다. 


파울리뇨, 정석화 같은 여름이적시장에 영입된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이지만 천안 팀 안팎에서 가장 칭찬하는 것은 신형민의 영향력이다. 이른바 '신형민 효과'로 천안이 확 바뀌었다는 것. 전반기에 잘 버티다가 맥없이 무너졌던 수비, 상대를 저지하거나 압박해야 하는 역할을 못하는 중원이 짜임새를 갖추면서 빠른 역습 패턴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신형민이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필드의 사령관으로 구조를 떠받친 덕분이다. 


경찰청(안산무궁화) 소속으로 K리그2에서 뛴 뒤 7년 만에 다시 온 2부 리그. 1986년생 미드필더에게 이 무대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여전히 묵직한 모습으로 클래스를 보여주는 신형민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겨울에 분명 많은 팀이 신형민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팀을 찾지 못하며 6개월 간 리그를 떠나야 했다. 어떤 일이 있었나?
오라고 한 팀은 분명 있었다. 그런데 나이도 많고, 무엇보다 연봉도 적지 않다 보니 결론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잘 조율했어야 했는데. 에이전트는 내 입장에 서서 최대한 해주려고 했던 것 같고, 구단은 구단의 입장이 있다 보니까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시간만 지나갔다. 작년에 울산에서 경기를 많이 못 뛴 것(리그 5경기 출전)도 영향을 미쳤다. 구단들이 경기력에 대해 반신반의했을 거다. 


- 선수로서 6개월의 공백기를 메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과거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결론을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2020년 중국 슈퍼리그 베이징 런허 이적이 확실시됐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국 입국 문제가 꼬였고, 팀도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며 반년 간 무적 신분으로 지냈다) 개인 훈련 만으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천안에 올 때 걱정도 됐지만 박남열 감독님께서 믿음을 주시며 빠르게 기용해주신 덕분에 극복한 것 같다. 감독님께 너무 감사한 부분이다. 선수를 쉬는 6개월 간 가족들과 최대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1남 1녀)은 그런 시간이 처음이라 좋아했다. 아내는 마음 고생이 많았을 거다. 내가 좋으면 좋다고 하는 사람이다. 처음엔 천안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을 걱정스러워 했지만, 내가 도전하고 싶다고 하자 응원해줬다.


- 사실 쉬운 선택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커리어가 충분히 화려했고, 은퇴한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종지부를 찍어도 될 나이다.(웃음) 연봉과 다른 모든 건 뒤로 하고, 아직은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직접 와서 해 보니까 여전히 축구가 즐겁더라. 어린 후배들과 함께 하는 것도 재미있고. 지금 와서는 성적이나 경기력 애기를 하지만, 그때는 후배들을 돕고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내 할 일은 하는 거다 라고 생각했다. 


- 지금 와서 보니까 신형민의 몸 상태나 경기력은 여전하다. 지난 겨울 의심하고, 선택하지 않았던 팀들이 후회한다는 얘기도 있다. 
글쎄… 들리는 얘기와 현실은 다른 거 같다.(웃음) 한참 때하고는 분명 다르다. 무엇보다 주변의 생각이 다르게 흘러간다. 내 몸 상태는 좋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는 의지는 강하지만 바라보는 시선은 차이가 있다. 그게 깔려 있으니까 아쉽더라. 사실 해결책은 하나다. 내가 운동장 안에서 계속 보여주며 그런 시선과의 갭을 줄여가야 한다. 


- K리그2 무대는 오랜만에 뛰고 있다. 과거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과거 경찰청 시절 때는 군경팀이 워낙 선수층이 좋아서 다른 팀들과 격차가 컸다. 지금은 각 팀 간의 전력 차가 적다. 부산을 비롯한 다른 팀들과 경기를 해 보면 미세한 차이로 성적이 갈린다는 걸 느낀다. 상위권 팀은 실점할 상황에서 한번 버티고 득점을 해 내는 능력이 있다. 하위권 팀은 막아줘야 할 때 무너지는 상황이 1부보다는 많은 것 같다.


- 천안이 신형민을 영입한 건 여러 면에서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경험, 리더십, 안정감이 돋보인다.  
박남열 감독님도 그 부분이 필요했으니까 불러주신 것 같다. 천안의 가장 약한 점이 경험 문제였다. K리그1을 경험한 선수는 꽤 있지만, 경기를 운영하는 측면에서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 7월에 합류하고 선수들에게 그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선수들도 그걸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며 따라와주니까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리더십은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가 한참 고참이니까 그렇게 포장되는 거다. 팀 후배들에게 고마운 게, 딱히 싫은 소리 없이 따라와주고 있다. 20경기나 못 이기고 최하위가 확정적인 상황에서 선수들이 '얼마나 바뀌겠어'라고 생각하면 포기하게 된다. 그런데 천안은 선수들이 해 보자는 마음이 살아 있었다. 그러면서 첫 승이 나오고, 3연승도 하게 된 거다. 



- 전반기와 후반기의 천안은 완전히 다른 팀이다.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나?
처음 팀에 왔을 때는 선수들이 웃음기도 없더라. 운동장에서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던 거 같은데 지금은 밝아지고 있다. 성적이 큰 계기가 되겠지만, 원체 어린 선수들이 많으니까 분위기를 타니까 같이 화이팅하고 반등이 빨리 이뤄졌다. 그런 경험을 통해 나도 얻는 게 있다. 천안으로 간다고 할 때 주변에서는 걱정들을 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오히려 내게 좋은 기회가 된 거 같다. 팀이 달라지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처럼 돌아오는 것 같다. 


- 최근 비슷한 또래 선수들이 하나 둘 은퇴를 선언하고 있다. 신형민에겐 무엇이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는 기준이 될까? 
축구에 대한 갈증이 사라진다면 멈춰야 한다. 선수가 경기장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기량과 열정,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면 가치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10분이든, 5분이든 적은 시간이라도 퍼포먼스를 보여드리는 게 내 일이다. 그런 갈증과 열정이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다. 몸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오면 받아들일 거 같다. 지금은 아직 선수들과 경쟁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상태다. 선배님들 얘기 들어보면 결국 나이 많은 선수의 가장 큰 숙제는 회복 부분이다. 만일 거기서 안 좋은 느낌이 오면 그만둘 거 같다. 


- 천안과 신형민 모두 서로를 살리며 좋은 도전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시즌 중반까지 부진해서 실망하신 분들도 많겠지만, 팀 전체가 포기하지 않고 나름의 목적 의식을 갖고 남은 경기에 임하고 있다. 목표와 목적이 사라지면 선수가 한발 더 뛸 원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최하위만큼은 반드시 안 할 것이다. 창단팀이긴 하지만 그걸로라도 천안 팬, 시민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그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 선수를 해 오면서 매일 간절함을 이어왔다. 지금도 다르진 않다. 간절하면서도 즐겁게 하자는 마음이에요. 언제 그만 둬도 이상하진 않지만,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 해서 쏟아내자는 그 마음으로 천안에서 뛰고 있다.


- 인생의 파도가 막바지에 크게 온 것 같다. 나중에 지도자를 하면 좋은 경험과 영감이 되지 않을까?
그것도 다 내 복이라고 생각한다. 원했던 상황은 아니지만,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지도자의 꿈은 있다. 먹고 배운 게 이거라… 차근차근 준비하고 싶다. 지금 쌓는 경험이 분명 그때는 자산이 될 것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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