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보에겐 초보의 가르침이 제일 필요하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초보를 가르칠 자신은 없었다.
나는 읽어보지도 않고 뻔할 거라 단정지은 책의 내용들이, 실은 나같은 경제 왕초보에게 가르치는 초보의 지침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편집자로 일하고 나서야 그분들이 실은 잘하는 분야에 있어 왕초보였던 시절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신선숙 기자]
베스트셀러가 되면 일부러 더 안 사게 된다. 질투심인지 난 남과 다르다는 오만함인지 모를 요상한 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최근 <역행자>라는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꽤 오래 있었다. 처음 소개글을 봤을 때 '남들은 다 순행자로 살 때 당신만 역행자로 살아라'라고 하기에, 남들이 다 예스할 때 혼자 노!를 외치라는 뻔한 책인가보다 했다.
어제 밀리의서재에 들어갔다가 <역행자 확장편>이 나온 걸 보고 다시 호기심이 동했다. 이렇게 오래 베스트셀러를 지키는 책이라면 이번엔 서문까지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자 소개와 서문을 보니 '출간 1년도 되지 않아 40만 부나 팔렸다'는 소식과 함께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2023년 10월 50만부를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책의 저자 자청('자수성가 청년'의 줄임말)은 여느 청년들처럼 되는 것 없이 쭈굴한 인생을 살다가 너무너무 부자가 되고 싶어 닥치는 대로 이런저런 공부를 했고 20대에 돈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사연과 똑같은 흐름이었다. 문제는 다음 문장이었다.
"저자가 성공시킨 비즈니스 모델은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것'이다."
나는 뒤통수를 탁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요즘 <숨고>에서 글쓰기 수업을 조금씩 시도하는 중인데 글은 웬만큼 쓰는 사람 위주로 수업을 하려니 수요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초보를 가르칠 자신은 없었다. 이런 일로 고민 중이던 내가 마침내 이르려던 깨달음의 그곳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던 명제였다.
내가 50이나 되어서야 알게 될 뻔했을 명제를 저자 자청은 20대에 바로 깨닫고 이에 걸맞는 수많은 사업을 일으켜 그후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말이 전혀 의심스럽지 않았다. 이 책이 바로 그 증거였으니까.
▲ 역행자 확장판 (50만 부 기념 유니버스 에디션) - 돈·시간·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인생 공략집 자청 (지은이) |
ⓒ 웅진지식하우스 |
이 책에 반응하는 왕초보는 피라미드의 제일 밑단처럼 그 수가 가장 많다는 걸, 그래서 50만 부가 팔릴 수 있다는 걸. 자청은 책을 써서 직접 증명해 보였다.
한 분야에 뛰어난 전문가들과 책을 만들다 보면 도무지 독자에게 가닿지 못하는 글을 마주할 때가 있다. 더 쉽게 써달라는 요청을 아무리 해도 끝까지 더 쉬워지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그리고 한참을 편집자로 일하고 나서야 그분들이 실은 잘하는 분야에 있어 왕초보였던 시절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 분야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기에 후에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왕초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왕초보를 상대로 꼭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아니더라도 이 명제는 책을 만들 때도, 탁구를 칠 때도 알고 있으면 대단히 유효하다. 탁구에 큰 재능이 없는 왕초보인 내가 탁구를 배우는 방법은 김관장(남편이자 선수 출신 탁구관장)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따르는 것이며, 왕초보 시절이 없었던 전문가에게 책을 의뢰할 때는 "더 쉽게 써주세요"를 꾹 참고 '준전문가'가 읽을 전문가의 책을 만드는 데 만족하면 되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유가족에게 보복? '윤석열 추천' 인권위원의 수상한 행보
- 거품맥주 힘으로 버틴 웨이터 알바... 젊어서 고생, 사서 하지 말자
- 윤 대통령, 정부여당 앞에서만 추도사... 누구를 위한 예배였나
- 여기 1mm 들깨를 숲처럼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 '자폐아동' 별이 만든 <딩동댕 유치원> PD 울컥하게 한 사연
- 배트걸 없애면 그만? '금녀' 야구장, 이대로 괜찮은가
- 송영길 "나같은 사람이 밖에서 싸워야 민주당 개혁적으로 갈 수 있다"
- 충남 계룡시, 홍보안내판 디자인 업체 변경·디자인 도용 논란
- '가석방 없는 무기형' 밀어붙이는 법무부... 대법원은 부정적
- 대통령 하명 논란 국세청 "학원·스타강사 등 수백억 탈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