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쳐다만 봤는데…" 곱절 늘어난 '에너지바우처' 더 는다
서울의 한 임대 아파트에 사는 우모(50)씨는 혼자서 고교생 딸 둘을 키운다. 기초수급 대상이라 주머니가 얇지만 집이 낡아서 웃풍이 들어오는 통에 겨울마다 할 수 없이 보일러를 틀었다. 그나마 여름엔 더워도 에어컨을 안 켜고 어떻게든 버텼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에너지바우처 지원 대상에 포함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바우처 덕에 월 16만원 넘게 나오던 난방비가 지난 겨울 12만원 안팎으로 줄었다. 올 여름 에어컨 가동도 조심스레 늘렸지만, 전기요금은 이전과 비슷한 4만원가량 청구됐다. 날이 점점 쌀쌀해지지만 다가올 겨울에 대한 걱정도 그만큼 덜었다. 우씨는 "쳐다만 보던 에어컨도 틀 수 있게 되니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다"면서 "애들이 혹여 냉난방을 안 끄고 학교에 가도 예전보다 덜 혼내게 되더라"고 말했다.
전 세계를 덮친 기후 위기, 지난해 이후 본격화된 에너지 위기로 우씨 같은 취약계층은 '에너지 리스크'에 직면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여파로 전기·가스요금이 빠르게 오르고, 이상기후에 따른 혹서·혹한도 잦아져서다. 올 겨울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비롯한 글로벌 변수로 에너지값이 들썩일 거란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저소득 가구(소득 하위 10%)의 월평균 연료비 지출액은 2020년 5만2325원에서 지난해 6만3044원으로 2년 새 20% 넘게 치솟았다. 같은 기간 다른 소득 분위와 비교하면 가장 큰 증가율이다. 특히 노인·영유아가 있는 저소득 가구는 집안 체류 시간이 길어 그렇지 않은 일반 가구보다 연료비 지출이 1.3~1.6배 많다. 이른바 '난방비 폭탄' 같은 에너지발(發) 위기가 이들에게 먼저, 그리고 깊게 찾아오는 셈이다.
이 때문에 에너지바우처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취약계층에 전기·도시가스 등의 에너지 사용 비용을 바우처 형태로 보조해 복지의 틈을 메우는 제도다. 기초수급 가구이면서 세대원이 노인·영유아·장애인·중증질환자·한부모 가족 등에 해당하면 신청할 수 있다.
에너지바우처 지원 규모는 점차 늘고 있다. 30일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바우처 발급 가구는 2018년 56만6000세대에서 지난해 113만3000세대로 4년 새 곱절이 됐다. 지원 대상 요건 등이 꾸준히 완화된 영향이다. 올해 기준 하절기(7~9월) 지원액은 4만3000원, 동절기(10~4월)는 30만4000원으로 합계 34만7000원이다. 이는 2020년(11만6000원)의 3배 수준이다. 지원액 인상에 따라 지난해 바우처 수급 가구가 쓴 동·하절기 에너지 비용의 절반(51%)을 바우처 지원액이 채워준 것으로 추정된다.
지원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내년 에너지바우처 사업 예산안은 약 6856억원으로 올해 대비 135.6%(3946억원) 증액 편성됐다. 정부가 '긴축 기조'를 내세웠지만, 바우처 분야만큼은 크게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취약계층 챙기기를 강조한 데다, 야당도 에너지 복지 확대에 긍정적인 만큼 혜택을 받는 가구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부터 동절기 바우처 금액을 하절기에 당겨쓸 수 있도록 하고, 올해부턴 기초수급자 신청 시 바우처도 동시 신청할 수 있게 되는 등 제도도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물가·고유가 시대 저소득층 '생존권' 차원에서 바우처 지원을 더 늘리고, 신청 누락 등 사각지대도 빠르게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에너지바우처 예산을 점차 늘리는 한편, 몰라서 못 받는 사람이 생기는 일도 줄여야 한다"면서 "기초수급 가구의 주거 급여 등에 바우처를 자동 연계·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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