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걸 없애면 그만? '금녀' 야구장, 이대로 괜찮은가

이진민 2023. 10. 30. 15: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진민의 불편한 스포츠] 성차별 비판에 '여성' 삭제하는 야구장, 본질은 회피할 뿐

[이진민 기자]

선수도 남자, 감독도 남자, 코치진도 남자인 프로 야구의 세계. 그곳에 숨겨진 여성이 있으니. 정체는 배트걸, 한때 '미녀' 배트걸로 화제를 모으며 치어리더와 함께 야구장의 미녀군단이라 불렸다. 하지만 요즘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오랫동안 배트걸은 성 상품화의 일환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프로 야구도 마침내 움직였다.

예전과 달리 배트걸을 고용하는 구단 자체가 적어졌고 중계 카메라 또한 그들의 모습을 강조하지 않는다. 이제 대부분의 구단은 볼보이만 운영한다. 남초(男超)를 넘어 금녀(禁女)로 향하는 야구장, 어딘가 찝찝하다. 과연 배트걸을 없애는 게 최선이었을까? 야구장 속 문제적인 여성들을 하나씩 삭제하면, 성평등한 야구장이 탄생할까.

파울볼 날아다니는데 배트걸은 핫팬츠?
 
▲ '격하게 축하해요' 2019년 6월 23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9 KBO 리그 두산 대 SK 경기. SK 이재원이 4회말 1사 1루 3-1로 달아나는 좌중간 2점 홈런을 때린 뒤 홈을 밟고 배트걸의 축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배트걸은 1루, 3루 더그아웃에서 대기하다가 출루한 타자의 방망이와 보호대를 회수하는 진행요원이다. 또한 담장을 넘지 못한 파울볼을 정리하거나 심판에게 공을 전달하기도 한다. 즉, 야구 경기 운영에 방해되는 요소를 없애는 진행요원의 일원으로 야구 규칙과 경기 흐름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배트걸의 의상이다. 시속 50km 파울볼이 떨어지고 선수들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타격 연습하는 현장. 그곳을 오가는 배트걸의 복장은 핫팬츠다. 과거에는 핫팬츠에 크롭티를 입거나 상의로 하의를 가리는 식의 복장도 존재할 정도였다. 반면, 보호 장비는 헬멧이 전부이고 무릎 보호대나 정강이 보호대도 없다.

적나라하게 몸매를 드러내는 의상은 배트걸의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직업의식까지 존중받지 못하게 한다. 여론은 배트걸의 의상과 외모에만 초점을 두고 '각선미 배틀', '꽃미모', '매끈한 다리라인' 등의 헤드라인을 내걸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배트걸의 몸매를 자극적으로 담은 사진과 영상이 떠돌았고 성희롱적 발언이 이어졌다.

2010년대부터 배트걸의 의상이 성 상품화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고 점차 배트걸보다 배트보이, 볼보이를 기용하는 구단이 증가했다. 현재는 SSG 랜더스, 키움 히어로즈 등 일부 구단에서만 확인된다. 그러나 배트걸의 성 상품화 논란은 단지 여성을 고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똑같은 진행요원인 배트보이, 볼보이와 달리 몸매를 부각한 의상을 입어야 했다는 것, 이에 따라 직업군보다 '아이 캔디(눈요깃거리)'로 여겨진 현실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사라진 건 배트걸의 자극적인 의상이 아닌 배트걸 그 자체였다. 배트걸과 성 상품화에 얽힌 문제를 천천히 해결하는 것이 아닌 배트걸을 삭제함으로써 문제를 없앤 셈이다. 이는 스포츠계에서 여성 종사자에게 요구되는 성 상품화의 본질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존재 자체를 문제시하는 발상이다. 야구장에서 안전한 복장을 하고, 진행 요원으로 존중받으며 일하는 배트걸은 볼 수 없을까.

여성 차별 지워가는 MLB
 
 하루 동안 배트걸이 된 그웬 골드먼이 2021년 6월 28일 월요일 뉴욕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간의 야구 경기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70세의 골드만은 10살 때 양키스의 단장에게 배트걸이 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골드만삭스는 HOPE 주간의 일환으로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 AP Photo/ 연합뉴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도 배트걸이 있다. 선발 기준부터 엄격하다. 야구에 대한 지식과 장시간 서 있거나 물건을 들 수 있는 체력, 더불어 야구나 소프트볼 경기 참가 경험이 있는지 확인한다. 지난 3월, 다가올 시즌을 앞두고 이뤄진 규칙 개정에는 배트걸의 경기 진행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항목이 추가될 정도다. 기존 치어리더를 다시 배트걸로 고용하는 한국 프로야구 구단과 확연히 다른 방식이다.

복장 기준 또한 엄격하다. 반드시 소속팀과 같은 유니폼을 착용해야 하며 보호 장비도 필수다. 그들은 여타 야구 선수와 다를 바 없이 긴 바지에 구단 유니폼을 착용하며 한때 '섹시한' 배트걸을 내세웠던 구단도 사라졌다.

또한 배트걸이란 직함은 영광스러운 자리로 여겨진다. 2009년에 도입된 명예 배트걸(Honorary Bat Girl) 프로그램은 유방암 퇴치 운동(Going to Bat Against Breast Cancer)의 일환으로 유방암에 걸렸거나 유방암 근절에 헌신한 여성 팬들을 명예 배트걸로 표창하여 경기에 참여하게 한다.

더불어 미국 메이저리그는 한때 남성만 배트보이로 고용하던 과거를 반성하기 시작했다. 1961년, 배트보이로 지원했다가 여성이란 이유로 거절당한 뉴욕 양키즈의 여성 팬을 60년 만에 배트걸로 초대한 것. 이에 캐시먼 단장은 "우리 양키즈는 야구계 성별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며 "선수 대기석을 포함해 여성도 남성이 있는 모든 곳에 속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헌신"이라 밝혔다.

야구장에서 여성은 사라지고 있다

프로 야구 리그가 5년 만에 800만 관중을 돌파했고 특히 여성 팬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SSG 랜더스필드에 방문한 여성 팬은 지난 시즌보다 34% 증가했고 '2022년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에 따르면 남성보다 여성 관람객의 지출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야구장에 방문하는 여성 팬은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야구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야구를 사랑하는 여성들이 안전하게, 존중받으며 일하는 미래는 언제쯤일까. 메이저리그에서는 2020년에 최초 여성 단장이 등장했고, 2022년에는 최초 여성 코치가 그라운드를 밟았으며, 2023년에는 147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코치가 구단 감독 면접에 참여했다.

한국 프로 야구도 변화하고 있다. 올 시즌, 롯데 자이언츠는 최초로 여성 응원 부단장을 선임했다. 분명 마지막이 아닌 지금부터 시작인 '여성' 임명일 테다. 야구를 사랑하는 여자들, 공에 죽고 사는 여자들이 오늘도 야구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