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거장이 소년에 투영해 말년에 하고 싶었던 말
[장혜령 기자]
▲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 |
ⓒ 메가박스중앙㈜ |
엄마를 잃은 소년의 그리움
혼란스러운 태평양전쟁 한가운데의 일본. 요양병원 화재로 졸지에 어머니를 잃은 11살 마히토(산토키 소마)는 아버지(기무라 타쿠야)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향한다. 낯선 그곳에서 마히토를 반겨주는 이모 나츠코(기무라 요시노)는 마치 어머니가 살아 돌아온 것만 같다.
한편, 아버지는 이모와 재혼해 동생까지 생겨 마히토의 혼란을 가중한다. 새엄마가 된 나츠코의 다정함과 가정부 일곱 할멈의 보살핌을 받지만 한구석에 자리한 외로움과 그리움은 숨길 수 없이 깊어진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어머니는 좀처럼 마히토의 곁에 다가와 주지 않아 애석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위를 맴도는 정체불명의 왜가리(스다 마사키)로부터 숲속 탑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듣는다. 왜가리는 엄마가 있는 곳을 안다는 솔깃한 정보를 흘리며 유혹한다. 그러는 사이 새엄마가 실종되자 둘 다 만나게 해주겠다며 다른 차원으로 이끈다.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 채 마히토는 키리코 할멈(시바사키 코우)과 이세계(異世界)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
▲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 |
ⓒ 메가박스중앙㈜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애와 궤적을 훑으며 미래 세대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지만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는다. 지브리 사상 최대 제작비, 최장 제작 기간을 투자했다는 후문에 걸맞은 거장의 정수가 담긴 자전적 이야기다. 60여 명의 애니메이터가 7년 동안 작업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준 요시노 겐자부로의 동명 도서 제목을 차용해 만들었다. 책은 1937년 일본이 군국주의 정점에 달했을 때 등장했다. 당시 분위기와 정반대의 '평화'를 설파해 오랫동안 금서였다고 전해진다. <바람이 분다>에서 차용한 폴 발레리의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처럼 삶이 흔들릴 때마다 붙잡아 주던 메시지처럼 들린다.
10년 만의 신작이 공개된 후 엇갈린 일본 반응은 의외였다. 대체로 예술성이 짙고 난해하다는 의견이었다. 신비주의로 일관하는 영화, 대체 어떤 영화일까 더욱 궁금해졌다. 한국에서도 일본과 똑같이 시사회 없이 개봉했다. 홍보를 일절 하지 않았지만 개봉 첫날 25만 명을 동원하며 단숨에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하는 기염을 토했다. 극장, 한국 영화 위기설에 비견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증명했다.
한국도 개봉 후 반응이 엇갈렸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거나, 제국주의의 향수를 논하는 의견,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된다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 감상하고 나니 완숙함의 경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읊조리고 있었다. 경력의 정점에서 작품을 집대성하고 삶을 정리하는 듯했다. 본인을 돌아보며 총망라한 영화였다.
▲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틸컷 |
ⓒ 메가박스중앙㈜ |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은 <바람이 분다>와 비슷했고, 다른 세계를 넘나들며 꿈과 환상을 쫓는 성장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올랐다. 귀엽거나 놀라운 크리처의 등장과 신기한 성의 전설은 <벼랑 위의 포노>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이 교차되었다. 내면의 갈등과 상처를 딛고 한 단계 나아가려는 보편적 이야기를 예술성 짙은 기법으로 표현한 황홀함 자체였다.
이 영화의 미덕은 정답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거다. 보는 사람에 따라 수백, 수천 개의 결말과 감상, 해석이 따른다. 자전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를 담았다지만, 판타지 장르를 결합해 자연스러운 설정으로 이어진다. 영화를 두고 제국주의의 향수, 전쟁 미화 등으로 해석하는 것도 포함이다.
주인공 마히토의 아버지는 전쟁 중 전투기를 생산하는 군수업자다. 태평양 전쟁 중 가장 조선의 수탈이 심했던 때라 한국인으로서 웃으며 넘길 수는 없어 불편함이 따른다. 다만 외피를 한 겹 벗겨 보면 달리 보인다. 그는 전쟁 특수로 유복했던 과거를 일찌감치 부채로 여겼다. 전쟁 중 호의호식했던 집안을 수치스러워했고, 아버지와 마찰을 빚기도 했었다.
아름다운 작화지만 어찌 보면 씁쓸해진다. 감독이 평생 천착했던 반전, 평화, 환경의 메시지가 여전히 필요한 까닭이다. 우리가 극장에서 영화 감상하는 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의 고통으로 힘든 사람들이 존재한다. 일생을 바친 꿈과 업적이 세상을 움직이지 못한 것인지 자괴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꾸준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용기야말로 느리지만 작은 희망을 선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다소 난해한 문장과 전개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라면 그것 또한 본인의 관점이다. 세상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관과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이고 그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야 하는 게 숙명이다. 부끄러웠을 과거를 솔직히 회고한 거장은 이제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이 영화로 대신하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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