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위기에 빠진 미국 대학의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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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은 몸살을 겪고 있다.
대학원을 포함한 미국 대학 전체 학생 수는 2012년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다.
실제로 미 전역에 걸쳐 약 73%의 학생들이 다니는 주립대학마다 인문학 전공과목을 폐강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미국 대학은 여전히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정치적 갈등과 대립, 대학의 가치와 존재 이유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으로 어려워지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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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은 몸살을 겪고 있다. 2020년 초 코로나19로 약 1년여 기간에 전면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은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불가능했다. 그러자 대학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대두됐다. 비대면으로 강의를 듣느니 차라리 중퇴를 선택하거나, 대학 교육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로 그만둔 이들도 있었다. 미국 몇몇 언론은 젊은 세대 대학관 변화를 기사로 쓰기도 했고, 직원 채용 과정에서 ‘대졸자’ 요건을 없애는 기업들도 늘어났다.
대학의 필요성을 둘러싼 논쟁 원인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만 국한할 수는 없다. 대학원을 포함한 미국 대학 전체 학생 수는 2012년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다. 한때 유학생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기도 했지만, 유학생들 출신국의 인구 변화와 국제 갈등 고조로 인해 그 수도 줄어들고 있다.
선진국 가운데 미국의 신생아 출생률은 높은 편이지만 지난 2010년경 감소세로 돌아섰고, 그 영향으로 2020년대 말부터 고등학교 졸업생 숫자가 줄면서 문 닫는 학교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생이 줄면 당연히 대학 신입생도 줄어든다. 학생 수가 줄면 작은 사립 대학들부터 타격을 입지만, 주립대학들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미 전역에 걸쳐 약 73%의 학생들이 다니는 주립대학마다 인문학 전공과목을 폐강하고 있다. 얼마 전 웨스트버지니아대에서 외국어 과목을 포함, 28개 과목의 폐강 발표 이후 학생들의 반대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컴퓨터 공학 같은 응용 기술 관련 과목은 인기가 있어 그나마 유지가 가능하지만, 인문학이나 순수과학 등 전통 학문 관련 과목을 들으려는 학생들은 줄어드는 현실 앞에 명분만으로 무작정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이 대학 당국의 입장일 것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미국 정치 상황도 대학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대학의 교수 및 관계자들 다수는 진보 성향이다.
전통적으로 대학은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사회 전반의 보수화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진보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러자 보수 성향을 가진 이들은 반발했고, 어떤 이들은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해오던 대학 기부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기부금에 의존하던 사립 대학으로서는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몇몇 주립대학들로서는 정치적 간섭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세계적으로 미국 대학은 여전히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정치적 갈등과 대립, 대학의 가치와 존재 이유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으로 어려워지는 형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로운 학문의 연구를 도맡아오던 전통적인 역할도 위협받고 있다. 민간 회사들이 대학 대신 일반 연구소와 손을 잡고 협력하는 추세로 기울어진 지는 꽤 오래됐다.
대학은 애초 지배 계층 양성과 교양 증진을 위한 곳이었다.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연구 중심 대학이 발달하면서 역할이 바뀌었고, 그 후로 세계적인 명문대학들마다 연구를 강조해 왔다. 20세기 후반 대학은 대중을 위한 교육 기관으로 다시 한번 변화를 꾀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대중을 위한 교육 기관이라는 특징을 더욱 강화해 복잡한 현실 속에서 이해력과 판단력을 갖춘 시민 양성의 장으로 거듭나는 건 어떨까. 지난 역할을 고집하기보다 지금 필요한 역할을 받아들여 그 방향을 고민하는 것이 오히려 이 시대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는 길이 아닐까.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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