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트라우마 벗은 울산, '명문의 품격' 고민해야
[이준목 기자]
프로축구 K리그1 울산 현대가 팀 창단 이후 처음 리그 2연패라는 새로운 역사를 수립했다. 울산은 10월 29일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대구FC와 하나원큐 K리그1 2023 파이널A 35라운드 홈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울산은 21승 7무7패(승점 70)가 되면서 2위 포항 스틸러스(승점 60)를 따돌리며 정규리그 3경기를 남겨두고 조기에 K리그1 우승을 확정했다. 통산 4번째 우승(1996, 2005, 2022, 2023, 역대 공동 5위)이자, 연속 우승은 사상 최초다. 지난해 전북 현대의 6연패를 저지하며 2005년 이후 17년 만에 K리그1 정상에 올랐던 울산은, 올 시즌에도 왕좌를 지키며 K리그1을 대표하는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증명했다.
울산은 엄원상, 김영권, 조현우, 이청용 등 포지션별 주역이자 지난해 우승 주축들이 대부분 건재한 가운데, 주민규, 루빅손, 김민혁, 에사카 아타루 등이 새롭게 가세하면서 더욱 강력한 전력을 구축했다. 특히 4년만에 울산으로 돌아온 주민규는 1기 시절 주전경쟁에서 밀려 이적해야 했던 아픔을 만회하듯 팀내 최다인 15골(전체 2위)을 터뜨리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본인의 선수 커리어에 있어서도 첫 우승이다.
울산은 개막 6연승을 시작으로 초반부터 압도적인 기세로 승점을 쌓으며 질주했다. 지난 7월 2일에는 20라운드 만에 승점 50점 고지를 밟으며 2018년 전북 현대가 수립된 역대 K리그1 최단 라운드-최다 승점 기록과 동률을 이뤘다.
이렇다 할 경쟁자의 부재도 울산에는 호재였다. 지난 시즌까지 울산과 양강 체제를 이뤘던 전북이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빠지며 김상식 감독이 사퇴하는 등 우여곡절 속에 일찌감치 우승권에서 밀려났다. 동해안 라이벌 포항이 리그 최소 패배를 기록하며 그나마 울산을 견제했지만 초반에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라이벌없는 일방적인 독주가 오히려 독이 된 듯, 울산은 여름에 접어들면서 집중력이 크게 떨어진 모습을 보이며 기복심한 경기력을 드러냈다. 중원의 핵이었던 국가대표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가 시즌중 중동의 알아인(UAE)으로 이적한 이후 끝내 대체자를 찾지못한 것도 큰 악재로 돌아왔다. 주포 주민규도 후반기에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울산은 8월 이후만 놓고보면 더 이상 시즌 초반 압도적인 절대 1강이 아니었다. 우승을 확정한 대구전 직전까지 최근 10경기에서는 단 2승(5무3패)에 그쳤고, 이중 절반이 넘는 6경기에서 무득점을 기록할만큼 부진했다. 울산이 뒷심부족으로 대역전극을 허용하여 우승을 놓쳤던 2013시즌(포항)이나 2020-201시즌(전북)의 데자뷰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그나마 초반에 벌어둔 승점과 격차 덕분에 간신히 2연패는 지켜낼 수 있었다.
울산은 한동안 '2인자 징크스'와 '우승 트라우마'에 오랫동안 시달려왔던 구단이다. K리그 역대 최다 준우승(10회)이라는 달갑지 않은 기록이 대표적이다. 분명히 약팀과는 거리가 멀고 나름 우승도 여러번 해본 강팀이간 한데, 뭔가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무너진다는 나약한 이미지가 따라붙곤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명가 재건에 나선 2010년대 중반 이후 울산은 FA컵(2017),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2020)에 이어 K리그1 2연패까지, 꾸준히 우승을 추가하며 이제 아시아 무대에서 들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제 울산은 어엿하게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축구를 대표하는 강팀의 반열에 올랐다.
또한 좋은 성적은 인기로도 이어졌다. 창단 40주년을 맞이한 울산은 올 시즌 구단 역사상 최초로 홈 30만 관중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며 흥행면에서도 대성공을 거뒀다. 2023년은 울산이 리그를 선도하는 리딩 클럽으로 자리매김할 기반을 마련한 시즌이 됐다.
하지만 성적을 내고 인기가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모두가 명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리그 2연패를 달성한 울산에게 필요한 다음 과제는, 진정한 명문팀으로 거듭받기 위한 '품격'을 갖추는 것이다.
울산은 올시즌 그라운드 위에서는 최강팀이었지만 정작 그라운드 밖에서는 잦은 구설수와 논란으로 얼룩지며 아쉬움을 남겼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지난해 우승주역이었던 일본인 선수 아마노 준의 이적 파동으로 홍역을 치른 게 시작이었다. 울산 구단은 아마노가 약속을 위반하고 전북으로 이적했다고 지적했지만, 이 과정에서 홍명보 감독이 아마노의 국적까지 들먹이는 인신공격성 비난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올시즌 울산에 있어서 가장 최악의 사건은 6월에 터진 '인종차별 발언' 논란이었다. 울산 선수인 정승현, 이규성, 이명재, 박용우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외국 선수의 피부색을 빗댄 인종차별적 농담을 주고받은 사실이 팬들에 의하여 폭로됐다. 심지어 해당 인물들이 어린 선수들도 아닌, 프로 선수와 K리그의 모범이 되어야 할 울산의 '주장단'이었다는 점에서 실망감은 더 컸다. 여기에 연맹의 솜방망이 징계, 구단의 소극적인 사후 대처와 사과같지 않은 사과문 등은 오히려 팬들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했다.
울산은 인종차별 사태 이후 주장단을 교체했지만, 새로 선임된 주장 김기희마저 9월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홈팀 관중석을 향하여 '주먹감자'를 날리는 돌발 행동을 저질러 연맹으로부터 벌금 징계를 받았다. 거듭된 울산 주장단의 사건사고는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남겼고 구단 이미지 추락과 프로 선수들의 사회적 문제인식에 대한 우려까지 불러일으켰다. 후반기 울산이 어수선한 분위기속에서 경기력과 성적이 급락한 것도 일련의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스포츠 팬들은 단지 경기에 승리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는 결과보다도, 과정이 주는 가치를 중시한다. 승리에 대한 간절함, 수많은 역경을 극복해내는는 과정, 실패하고 실수하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정, 어떤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페어플레이와 스포츠맨십 등은 결과를 떠나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요소들이다.
울산도 올시즌을 돌아보며 다시 우승을 지켜냈다는 자화자찬으로만 끝내지 말아야 한다. 여러 가지 팀 문제와 논란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도 병행되어야 진정한 명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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