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팔레스타인의 수난사를 떠올려야 하는 이유

서부원 2023. 10. 3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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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강자적 관점'을 이미 습득한 아이들...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면

[서부원 기자]

 제주 함덕해수욕장에서 북촌마을에 이르는 19번 올레길을 아이들과 걸었다. 그곳에서 '낯선 시선으로 역사 마주하기'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 서부원
 
제주도를 '목적어'가 아닌 '주어'로 삼으면

'낯선 시선으로 역사 마주하기'. 이번 수학여행 때 올레길을 함께 걸으며 아이들과 나누려던 주제다. 역사적으로 수탈과 유배의 땅이자, 일제강점기 가장 가혹한 식민 지배를 당해야 했던 제주도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아이들에게 보편화한 전도된 가치관을 교정해보려는 시도였다.

제주도의 옛 지명이 탐라였다는 걸 모르는 아이는 없다. 제주도의 역사는 백제, 신라 등과 교역했던 어엿한 섬나라였다가, 고려 때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어 지배를 받았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교과서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건 무신정권 말 삼별초의 항전과 몽골 간섭기 때다.

조선시대에는 중죄인의 유배지로 활용됐다. 일제강점기엔 대륙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이자 미군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구축되기도 했다. '이재수의 난'이라 불리는 구한말 신축 농민항쟁과 해방 후 4.3 사건은 외세에 끊임없이 치도곤당한 제주도의 핏빛 역사를 증명한다.

"교과서마다 '피동형'으로 서술된 제주도의 역사를 '능동형'으로 바꿔보자. 제주도를 '목적어'가 아닌 '주어'로 삼으면, 우리 역사도 세상도 조금은 달라 보일 것이다."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근초고왕이 탐라국을 정벌했다는 걸, 아이들은 그의 '업적'으로 외운다. 몽골과의 화의를 거부한 삼별초가 제주에 입도해 저항한 걸 두고는 '순의(殉義 : 정의롭게 순국함)'라는 이름을 붙여 추앙한다. 덩달아 제주도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한 애국자로 호명된다.

따지고 보면, 당시 제주도에 근초고왕과 삼별초는 '외세'이자, 거칠게 말해선 '침략자'였다. 이미 고려에 복속된 제주도 사람들은 삼별초의 침입에 맞서 싸워야 했고, 삼별초에 의해 점령당한 뒤엔 여몽연합군의 공격을 상대해야 했다. 제주도는 늘 외세에 토벌됐고 정복당했다.

전쟁터가 제주도였던 까닭에 죽임을 당한 이들 대부분이 제주도 사람이었건만 그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근초고왕의 업적과 삼별초의 항전은 시험의 단골 문항일 정도로 유명한 역사가 됐지만, 죽은 자들은 말이 없다. 제주도라는 무미건조한 이름만 남았을 뿐이다.

아이들이 근초고왕과 삼별초의 '두 얼굴'을 깨닫기를 바랐다. 사적지를 답사하며, 섬이 아닌 뭍의 시각으로, 승자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납작한 역사 인식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중심의 역사관'으로 제주도를 이해해선 왜곡을 피할 수 없다고 여겨서다.

아이들이 제주도에 산재한 토속신앙의 자취를 그저 미신이라며 낮잡아보는 것도 그래서다. 섬 특유의 '괸당' 문화를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관습으로 깎아내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극심한 수탈에 시달려온 제주도 사람들의 생존 방식의 하나라는 걸 그들은 쉬이 납득하지 못했다.

제주도의 역사를 소재로 한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되는 게 있다. 그들의 뼛속 깊은 강자적 관점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형성됐고 지속적으로 강화돼왔다는 점이다. 한 아이의 이 살벌한 말에 모든 아이가 맞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인간의 본성인가 싶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은 온 세상을 관통하는 지구적 질서이자 규칙이에요. 인간 세상만 예외일 순 없잖아요."

아이들은 어릴 적 부모의 품에서 <콜럼버스 위인전>과 <탈무드>를 읽는다. 학교에 입학해선 '중앙집권화'와 '전성기'가 동의어처럼 묘사된 역사 교과서를 배운다. 여전히 '태정태세문단세'를 외우고, 과거 독자적 천하관으로 주변국에 선진문물을 전수한 민족임을 자랑스러워한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십중팔구 왕이거나 장군이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도 입이라도 맞춘 듯 대첩으로 갈무리되는 전쟁의 이름을 댄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필연적으로 '승자의 기록'이라고 강조하지만, 그들에게 DNA처럼 박힌 강자적 관점을 떨쳐내기란 역부족이다.

오래전 교과서 속 공식 명칭이 '콜럼버스의 신항로 개척'이라고 변경됐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입에선 '신대륙 발견'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기성세대들은 되레 '신항로 개척'이라는 표현을 어색해한다. 아이고 어른이고 그것이 제국주의적 관점의 용어라는 걸 간과한다.

<탈무드>는 유대인의 민족적 우수성을 은연 중에 각인시켰다. 율법서인 이 책이 생활의 지혜를 담은 격언집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느닷없이 유대인은 본보기의 대상이 됐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이 잇따르고 그들의 독특한 학습법인 '하브루타'까지 학교에 소개되면서, 그들이 세운 국가인 이스라엘에 대한 호감도까지 높아졌다.

아이들에게 강자적 관점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시중의 위인전과 학교의 교과서는 한통속이다. 승패를 선악으로 치환하는 구조라서다. 근초고왕과 삼별초, 콜럼버스와 유대인은 '선'으로 묘사되고, 반대로 제주도와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팔레스타인은 '악'의 낙인을 피할 길이 없다.

다른 관점에서 제주도를 바라보기 
 
 북촌리 학살 직후 시신을 내다버린 옴팡밭 풍경.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 <순이삼촌>의 내용을 적은 빗돌이 당시의 버려진 시신마냥 널브러져 있다.
ⓒ 서부원
 
제주도의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해석하자는 건,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과 팔레스타인의 입장에 서보자는 것과 같다. 역사를 통해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깨닫도록 해야 한다. 콜럼버스와 유대인을 '악'의 자리에 놓을 수도 있어야 제대로 된 역사다.

천연덕스럽게 "인간도 동물이니, 인간 사회와 동물의 생태계가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우리 기성세대의 거울상이다. 각자도생의 무한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주문은 아이들을 향해 콜럼버스와 유대인이 되어 라틴아메리카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공교롭게도,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팔레스타인 땅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팔레스타인의 신산한 역사를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선제적 폭격을 문제 삼으며 하마스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했다. 그들은 가자지구가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이스라엘의 편에 섰다.

사건이 발생하면 먼저 원인을 따져보기 마련이지만,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지역에선 늘 예외다. 흔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되며, 팔레스타인의 잔혹한 폭력성만 부각된다. 애초 유대인에 대한 호감에다 아랍과 이슬람교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덧씌워진 결과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이들이 제주도의 핏빛 역사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수난사에 공감할 수 있을 때라야 교육이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할 것이다. 제주도가 그저 며칠 놀다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파란만장했던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을 그들이 알게 됐으니 어떻든 첫발은 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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