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 75세 엄마, '캥거루족' 40대 아들들 상대 승소

방제일 2023. 10. 30. 09:4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법원 "부양 의무 40세까지 유효하지 않아"
'캥거루족' 서구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
취업난 커지며 독립하지 못하는 청년 늘어

이탈리아의 한 70대 어머니가 40년 넘게 집에 눌러앉아 사는 아들들을 내보내기 위해 '퇴거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파비아에 사는 75세 여성이 자신의 집에 얹혀사는 40대 아들 2명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보도했다. 아들 2명은 각각 42세, 40세다.

이탈리아의 한 70대 어머니가 40년 넘게 집에 눌러앉아 사는 아들들을 내보내기 위해 '퇴거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사진출처=픽사베이]

가디언에 따르면 두 아들은 각자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본적인 생활비를 내지 않은 채 집에 머물렀다. 여기에 집안일 역시 전혀 하지 않았다. 이에 두 아들의 모친은 "두 아들에게 '좀 더 독립적인 생활 방식을 찾으라'며 여러 차례 설득했지만 아들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아들을 부양하는 데 지친 모친은 결국 소송을 결심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모친이 겪은 어려움에 공감하며 두 아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다.

재판부는 "부모가 자식을 부양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두 아들이 집에 거주하는 것이 지금까지는 허용됐을지 몰라도 40세가 넘은 지금까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퇴거 명령에 따라 두 아들은 오는 12월 18일까지 집에서 나가야 한다.

성인이 되고도 독립하지 않는 청년 비율 높은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성인이 되고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들의 비율이 높은 상황이다. 지난해 한 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18세에서 34세 사이 인구의 약 70%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으며, 그 가운데 남성의 비율(72.6%)이 여성(66%)보다 높다.

특히, 이들 중 직업이 있으면서도 편의를 위해 독립하지 않는 청년들은 '밤보치오니'(쓸데없이 큰 아기)라고도 불린다. 이 용어는 2007년 한 이탈리아 정치인이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을 조롱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젊은이를 가리켜 영화 제목에서 유래한 '탕기 세대'로, 영국에서는 '부모의 연금을 좀먹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앞 글자를 따 '키퍼스(kippers)'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에서 직업이 있으면서도 편의를 위해 독립하지 않는 청년들은 '밤보치오니'(쓸데없이 큰 아기)라고도 불린다. 이 용어는 2007년 한 이탈리아 정치인이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을 조롱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젊은이를 가리켜 영화 제목에서 유래한 '탕기 세대'로, 영국에서는 '부모의 연금을 좀먹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앞 글자를 따 '키퍼스(kippers)'라고 부른다. [사진출처=픽사베이]

'밤보치오니'를 견디지 못한 이탈리아 부모들은 법정 소송에 나서고 있다. 앞서 2020년에는 부모의 퇴거 소송에 35세 파트타임 뮤지션이 퇴거 명령을 받자 약 2만 유로(2862만원) 수준인 본인 수입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나갈 수 없다고 항소한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탈리아 대법원은 "청년이 된 자식들이 부모에게 재정적 지원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캥거루족' 늘어나는 추세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라 여겨지던 서구사회의 청년들도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많아졌다. 고용 문제가 악화한 2040세대가 전 세계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서구뿐 아니라 한국 또한 캥거루족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2020년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성인남녀 4068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시대, 캥거루족에 대한 생각'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2.8%는 '캥거루족은 취업난과 불경기 등으로 당연한 현상'이라고 바라봤다.

캥거루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기 때문에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자신을 캥거루족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32.1%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중 53.3%는 현재 ‘코로나19?부동산 정책 등으로 인해 캥거루족의 삶은 더 길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캥거루족에게서 탈출하지 못할 것'(19.9%)이라는 답변도 20% 가까이 됐다.

이들이 스스로 캥거루족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고 있어서'(77.2%, 복수 응답)가 가장 컸다. 이어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어서'(38.7%), '부모에게 용돈을 받고 있어서'(20.7%), '경제적 능력이 있지만 자립하지 않아서'(14.1%), '중요한 결정 시 의지하고 있어서'(12.2%)가 뒤를 이었다.

부모에게 가장 많이 의지하거나 지원받는 부분은 역시 '주거'(70.9%)가 1순위였다. 계속해서 '생활비'(16%), '정신적 위로와 안정감'(5.4%) 등이 있었다.

캥거루족이 된 원인으로는 세대별로 양상이 달랐는데 20대는 '취업이 안 돼서'(26.4%, 복수 응답)가 가장 컸고, 30대는 '주거비가 너무 비싸서'(20.2%)였다. 극심한 청년실업 문제가 주거 문제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한편, 지난 8월 28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통계진흥원의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 비율은 57.5%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들 중 67.7%는 "아직 독립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경제적 여건을 갖추지 못해서'라는 응답이 56.6%로 가장 많았다.

이런 '캥거루족' 현상에 대해 가디언은 전 세계적으로 여러 세대가 한집에 사는 문화의 영향이 컸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독립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