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3대 행사' 핼러윈, 자취 감추자…"차라리 잘 됐다" 왜

최민지 2023. 10.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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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한 시민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 초입 마련된 추모공간의 추모의 글을 살펴보고 있다. 정부는 핼러윈 기간 인파 밀집 위험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 이태원과 홍대, 명동, 대구 동성로 등 4곳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뉴스1

서울 한남동의 한 유아 영어학원(영어유치원) 학부모 이모(35)씨는 최근 유치원에서 핼러윈데이 행사를 열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씨는 “이태원 참사 애도 분위기를 의식한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몇몇 친구들과 함께 따로 모여 과자를 나눠먹는 자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가운데, 매년 핼러윈 이벤트를 열었던 유치원과 어린이집, 학원은 올해 행사를 자제하는 분위기다. 한 유치원 관계자는 “참사를 애도하는 분위기라 올해는 대부분 행사를 열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핼러윈 행사, 취소하거나 대체…“학부모 의식”

핼러윈은 매년 10월 31일 미국 전역에서 유령이나 마녀, 괴물 등 다양한 복장을 갖춰 입고 벌이는 축제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대 초반 영어유치원 등에서 영어권 문화를 배운다는 이유로 퍼지기 시작해 지금은 대부분 영유아 대상 기관에서 연중 행사로 정착됐다. 한 유치원 관계자는 “핼러윈은 어린이날,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유치원의 3대 행사가 됐다”며 “11월 원아 모집 시즌을 앞두고 아이들이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홍보할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핼러윈 축제에 참석한 한 대구 시민과 어린이의 뒷모습. 뉴스1

하지만 올해는 행사를 취소하거나 대체 행사를 여는 곳이 많다. 충남 부여군의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매년 핼러윈 이벤트를 위해 원아들에게 코스튬을 챙겨 입고 오라고 하고, 포토존을 만들며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올해는 미니 운동회로 대체한다”고 말했다. 그는 “8월부터 ‘코스튬을 준비해야 하느냐’는 문의도 있었지만 애도의 취지를 안내했다”고 했다.

경남의 한 사립유치원장도 “핼러윈 이벤트 대신 아이들끼리 동물 옷을 입고 영어로 말하는 행사를 개최하기로 했다. 핼러윈 파티라는 오해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 날짜도 다음달 중순으로 잡았다”고 했다. 그는 “교육부에서도 30일부터 닷새 간 ‘재난 대응 안전 한국’ 훈련을 진행한다는 공문을 보내고 있는 분위기인데, 어떻게 핼러윈 행사를 하겠느냐”고 했다. 서울의 한 미술 학원도 “지난해까진 핼러윈 의상을 입고 물감 놀이를 했지만, 올해는 한국의 전통 놀잇감을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바꿨다”고 했다.

한국유치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학부모 세대에서는 핼러윈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데, 파티를 하기에는 부모들 마음이 무거울 것”이라며 “예전엔 핼러윈에 유치원 홍보 효과를 기대했지만, 이번엔 오히려 학부모를 의식해 행사를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교육적으로 무슨 의미” “차라리 잘됐다” 의견도


지난해 10월 30일 오후 전남 곡성군 섬진강기차마을에서 열린 어린이대축제에서 핼러윈 연관 행사가 취소됐다. 연합뉴스
핼러윈 행사를 이번 계기로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전 사고 위험이 있고, 교육적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서울의 한 유치원 교사는 “핼러윈 파티를 진행하다 보면 꼭 다치는 아이들이 생긴다. 지난해에도 한 학생이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다”며 “올해는 우리 유치원도 행사가 취소돼 차라리 잘됐다”고 말했다. 강원도의 한 유치원 관계자는 “유치원 교사들이 귀신 분장을 하고 나오는 곳도 있는데, 이런 게 교육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운동회 등 교육 과정과 연계된 행사를 여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 포털사이트 맘카페에는 “핼러윈이 영어 쓰는 나라에서 열리는 가장 큰 행사도 아니고 종교적 의미도 애매하다”, “핼러윈 이벤트를 하면 그날은 아이를 보내지 않겠다”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초등학생 학부모 한모(40)씨는 “지난해엔 아이가 학원에서 핼러윈 행사를 한다고 빨간 사인펜으로 얼굴에 상처를 잔뜩 그려왔다. 잘린 귀나 눈알같은 끔찍한 소품을 가지고 노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유치원생 학부모 이모씨는 “아이들이 친구들과 추억을 쌓을 기회인데, 너무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우리 세대에선 익숙지 않지만,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고 했다.

최민지·송다정 인턴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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