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출산에 특대 보상을 하라
무상 입주 지원할 '통 큰' 대책
정도 있어야 '혹' 하지 않겠나
한국 청년들이 왜 애를 안 낳는지 그 이유를 꼽으라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국민연금심의위원회가 지난 27일 발표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에서도 그 편린이 읽힌다. 아이를 한 명만 낳아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1년 더 인정해주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존에 둘째 자녀부터만 적용하던 ‘출산 크레디트’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납입 기간을 늘리면 노후에 받을 연금도 소폭이나마 늘어난다.
저조한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정책 결정자들이 머리를 쥐어짠 결과물이겠거니 싶다. 하지만 반응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기존 정책에 소규모 변화를 가미한 이 발표를 두고 애를 낳겠다고 결심한 이를 찾아볼 수 있을까.
한국 저출산 정책의 특징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한국에서 저출산 정책은 한 번에 규모를 키우지 않고 조금씩 덩치를 키워 왔다. 도입한 지 얼마 안 된 부모급여가 대표적이다. 올해 기준 0~11개월 아이를 가진 부모는 매월 70만원을 받고 12~23개월 부모는 매월 35만원을 받는다. 이 금액은 내년부터 각각 100만원, 50만원으로 늘어난다. 여기에 7세 아이까지 지급하는 월 10만원의 아동수당도 있다. 0~5세에게는 어린이집 무상보육 혜택도 부여한다. 이 혜택들을 모아 보면 규모가 작지 않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올해 출생아가 영유아기에 정부에서 받는 혜택 규모는 2700만~4297만원에 달한다. 이외에 산후조리원 부가가치세 면세, 출산·입양 세액공제, 의료비 세액공제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더하면 규모는 더 클 것이다.
이렇게 저출산 정책은 ‘티끌 모아 태산’이 됐지만 찔끔찔끔 늘려온 탓에 각종 혜택의 체감도가 낮다. 청년 세대는 점진적인 정책 변화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서울 동작구에 거주하며 대기업에 다니는 A씨(37)는 내년 1월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 A씨 가족이 둘째를 가지는 데 이렇게 늘어난 혜택이 도움이 됐을까. A씨는 “아니다”고 단언한다. A씨는 29일 “정부에서 돈을 주는 등 각종 지원을 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그 때문에 둘째를 가질 결심을 한 것은 아니다”며 “우리 부부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란 판단에 따라 가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 효과보다 개인 판단이었다는 설명이다.
정책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2015년 1.24명 기록을 기점으로 해서 지속 하락 중이다. 2018년에 1명 아래로 떨어지더니 지난해에는 0.78명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이 기간 동안 정부는 지속적으로 저출산 대응 예산을 늘려왔지만 통계는 반대로 움직였다. 찔끔찔끔 규모를 키워 온 저출산 대책이 효과가 없었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다시 국민연금 개편안으로 돌아가보자. 이번 개편안에 포함된 출산 크레디트의 ‘크레디트’는 사회적 보상이라는 성격을 지닌 개념이다. 아이를 갖는 일이 사회에 편익을 제공하는 행위라는 경제적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다른 무수한 저출산 대책들도 이런 개념을 깔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가 국력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면 경제학적 측면에서는 수긍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보상이라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게 흠이다. 이 보상에 비해 잃게 되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젊은 세대는 영혼을 갈아 넣는 수준의 교육비 부담으로 윤택하지 않은 노후를 보내는 부모 세대를 목도해왔다.
급진적인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낳으면 노후에 실버타운 무상 입주를 지원하는 대책 정도는 있어야 소위 ‘혹’하지 않겠나 싶다. 예산 타령을 비롯해 지나친 복지라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올 법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는 한국 출산율을 접하고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고 말했다. 어차피 망할 거라면 통 크게 뭐라도 해보고 망하는 게 낫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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