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치료제 없는 전염병, 마약
가상화폐로 결제하는 시대
국내 마약사범 폭발적 증가
수사·처벌만으로 해결할 상황
이미 벗어난 것 아닌지 걱정돼
치료와 재활 통한 해법 찾아야
마약 확산 문제 해결하려면
중독 치료와 재범 방지 위해
약물치료법원 설치 고려할 때
마약 사건 법정에서는 온통 머리를 삭발한 피고인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대개 모발 검사를 통해 마약 투약 여부를 판정하고 있으니 수사기관에 출석하기 전 검사 대상이 될 두발을 모두 없애고 출석하는 것이다. 심지어 두발뿐만 아니라 온몸의 체모를 모두 제거하고 나타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대마 성분을 없애주는 샴푸를 사용한다는 사람도 있고, 체내 잔류 성분이 없어질 때까지 숨어지낸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증거들을 종합해 유죄가 인정되면 그에 따른 엄정한 처벌을 받는다.
수사 과정에서 체포된 마약사범들을 정보원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마약사범을 제보하면 수사 협조에 대한 공적으로 인정해 주기도 해서 검거된 마약사범들이 앞다퉈 주위의 투약자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치료에 성공한 사람들을 유혹해 다시 투약하게 하거나 멀쩡한 사람들에게 마약을 투약하게 하고 이를 제보하는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마약 투약자 리스트를 관리하고 있으면서 수사 협조에 대한 공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조직도 존재했다. 그래도 우리 주위에서 마약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고, 간혹 영화에서라도 마약이 만연한 다른 나라 모습을 보면 마약 청정국에서 살고 있는 것에 안도했다.
과거 알음알음 개인 간의 소개를 통해 마약을 사고팔던 시대에서 모바일 채팅 앱을 통해 마약을 주문하고 가상화폐로 대금을 결제할 수 있는 시대로 전환하면서 마약 거래는 지역과 국경을 초월해 이뤄지게 됐고, 국내 마약사범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등기우편이나 소포를 통한 해외 유입이 늘었고, 세관이 국제 우편물에서 마약을 발견하고 수신처를 추적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과거 유통됐던 고전적인 마약에서 나아가 이름도 생소한 합성마약들까지 너무나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마약과 관련한 뉴스가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그동안 마약사범에 대해서는 엄정한 처벌을 원칙으로 했다. 초범에게는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지만 범행이 거듭되는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엄격하게 처벌됐다. 엄정한 처벌을 통해 마약사범을 사회에서 격리함으로써 마약 확산을 방지하고자 하는 노력은 일정 부분 효과가 있기도 했지만 최근 마약 확산 경향을 보면 수사나 처벌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은 이미 벗어난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마약사범은 더 늘고 있고, 재범률도 높아지고 있다. 마약 확산을 방지하고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엄벌주의를 벗어나 치료와 재활을 통해 의료적 측면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더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마약사범은 범죄자이기 이전에 환자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공급자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단순 투약자에 대해서는 치료와 재범 방지에 정책의 목표를 둬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치료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지만 실상 투약자 치료를 위한 시설은 우리 주위에 턱없이 부족하다. 기존의 치료시설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거나 적자에 허덕이다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 투약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때문에 공개적·적극적 치료도 쉽지 않다. 마약 확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처벌 이후에도 실효성 있는 치료 및 재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연계함으로써 지속적 관리를 통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마약을 포함한 약물치료법원의 설치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때가 됐다. 약물은 혼자서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독 치료를 개인이나 가족들의 개인 책임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법원과 수사기관 및 보호관찰관 등 법 집행에 직접 관련된 기관, 변호인과 가족 및 치료 담당자 등 다양한 전문가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해 치료와 재범 방지를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 중독의 정도를 살피고, 치료 가능성에 따라 단계별로 다양한 치료 방법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연일 마약 소식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만 보더라도 마약에 관한 영화나 시리즈가 넘쳐나고 있다. 마약의 위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10대도 예외가 아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징표이리라. 너무 늦기 전에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최창영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다이소 이 욕실 슬리퍼, 환불하세요…납·카드뮴 기준 초과
- ‘진술거부’ 이선균…경찰, 소변 긴급감정 의뢰·통화내역도
- 尹 이태원 1주기 추도 예배…“살면서 가장 큰 슬픔 가진 날”
- 3m 제한터널에 들어간 화물트럭…신호등 부수며 달렸다
- 루브르 피라미드에 페인트 테러… ‘주황 멍’이 곳곳에
- 제빵 그릇에 소변 본 여직원 해고했다가… 반전 판결
- 고개숙인 이선균, 진술은 거부… 간이 검사는 ‘음성’
- ‘초등생 12명 성추행’ 담임 구속…“멈추지 못했다”
- 음주측정 때 남의 주민번호 댔다…난리난 피도용자 부부
- “명품 선물 받은 공범”…남현희 공모 의혹 경찰에 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