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선수들의 징크스…‘숫자, 색깔, 음식, 대회까지’
우즈와 김세영 레드, 크리머와 이보미 핑크
최경주 아침 양식 먹기, 박희영 계란 피하기
골프는 멘털 싸움이다. 조금이라도 꺼림직하다면 과감하게 ‘제거’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골프계엔 징크스가 많다. 아웃오브바운즈(OB)를 두려워한 나머지 특정 상표의 맥주를 마시지 않는 주말골퍼도 있다. 어떤 골프장은 ‘양파’를 뺀 자장면을 내놓은 적도 있다. 골프 선수들이 가진 징크스와 루틴에 관한 이야기다.
골퍼들이 싫어하는 골프공이 있다. 2번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소연은 2번 공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2등을 하는 것이 3등을 하는 것보다 더 싫다"고 했다. 선수들이 2번 공을 꺼내지 않는 이유는 "준우승과 2퍼트를 하기 싫다"는 의미다. 4번은 동양권 문화에서 ‘죽을 4자’로 기피하는 숫자다. 연습할 때 주로 쓴다. 선수들은 버디를 잡은 공은 계속 쓰길 원한다. 커버가 상처가 나도 행운이 이어가길 바란다.
반면 신지애는 숫자보다는 공 상태에 신경을 쓰는 스타일이다. 스크래치가 생기면 홀을 마친 뒤 새 공으로 교체한다. 그는 "라운드를 하면 한 더즌을 쓴다"고 공개했다. 홀인원이나 이글을 해도 골프공에 이상이 있다면 바로 바꾼다. ‘빅 이지’ 어니 엘스(남아공)도 공에 대한 미련이 없는 스타일이다. 버디가 나오면 교체를 한다. “이 공이 운을 다했다”는 생각에서다.
골퍼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우승을 의미하는 ‘1’이다. 골프공과 자동차, 전화번호 등에 모두 1번을 쓰기를 원한다. 3번도 인기다. 18홀 중 가장 많은 파4(14개 홀)에서 버디를 하고 싶다는 의미다. ‘바람의 사나이’ 양용은은 2009년 메이저 대회 PGA 챔피언십 우승 당시 3번 공을 사용한 뒤 3번에 유독 애착을 갖고 있다. 김효주와 홍순상은 첫날은 1번, 둘째 날은 2번 등 라운드와 일치하는 공을 사용한다. ‘옛 골프황제’ 잭 니클라우스(미국)는 예전에 4번만 고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정 색깔을 고집하는 선수가 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최종 4라운드에는 반드시 빨간색 셔츠를 입는다. 우즈와 동반 라운드를 하는 선수들에겐 ‘빨간 공포’의 시간이다. 태국계 어머니 쿨티다가 점성술사에게 들은 우승 비책이라고 전해진다. 남다른 카리스마의 동력이 되는 등 메이저 15승을 포함해 통산 82승을 쓸어 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즈는 레드 컬러로 흥했지만 골드 컬러로 망했다. 2009년 금발 여성과의 ‘섹스스캔들’이 불거지면서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했다.
LPGA투어에서 12승을 쌓은 김세영도 ‘레드 마니아’다. 최종일엔 흰색 상의에 빨간색 바지를 입고 다닌다. ‘핑크공주’ 폴라 크리머(미국)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핑크색으로 도배한다. 최근 일본 무대에서 은퇴한 이보미도 핑크 마니아다. 은퇴한 김하늘은 이름과 같은 하늘색 계열의 의상을 고른다. 배상문은 검은색 모자를 절대 쓰지 않는다.
골프 선수들은 음식도 신경을 쓴다. 완도에서 태어난 최경주는 토종 음식을 즐긴다. 그러나 경기 당일 아침에는 오히려 양식을 먹는 루틴을 갖고 있다. ‘골프전설’ 박세리는 대회를 앞두고 달걀을 먹지 않았다. "깨진다"는 부정적인 의미 때문에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먹지 못하게 했다. 여전히 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박희영도 ‘계란 징크스’가 있다. 홍순상은 미역국을 잘 먹지 않는다.
선수들에게는 특정 대회 징크스도 있다. 아널드 파머(미국)는 PGA투어 통산 62승을 달성했지만 유독 메이저 대회 PGA 챔피언십에서 부진했다. 37차례 등판에서 단 한 차례도 정상에 서지 못해 결국 ‘커리어 그랜드슬램’이 무산됐다. 샘 스니드(미국)는 우즈와 함께 PGA투어 최다승(82승)을 보유했지만 US오픈에서, 니클라우스는 캐나다오픈의 우승컵이 없다.
‘백상어’ 그레그 노먼(호주)은 PGA투어 20승을 포함해 유럽과 호주, 일본 등에서 94승을 올린 당대 최고의 스타다. 하지만 메이저 대회에선 디오픈에서만 2승을 거둘 정도로 인연이 없었다. 마스터스에서는 특히 운이 따르지 않았다. 필 미컬슨(미국)도 불운의 주인공이다. 메이저 6승을 포함해 통산 45승을 수확했지만 US오픈 우승이 없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는 1999년과 2002년, 2004년, 2006년, 2009년, 2013년 등 여섯 차례나 2위에 그친 기구한 사연이 있다.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는 아직도 메이저 대회 무관이다.
노우래 기자 golfm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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