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 논설위원이 간다] 지방의료원 66% 휴진 vs 수도권은 6600병상 신설

윤석만 2023. 10. 3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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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균형의료, 병상총량 관리제에 달렸다


윤석만 논설위원
지리산 자락에 있는 경남 산청은 예부터 약초가 많이 났다. 지금도 매년 약초축제가 열리고, 국내 최대 한방 테마파크인 동의보감촌이 있다. 이곳 사람 유의태(1652~1715)는 조선 숙종의 어의(御醫)로, 산청에서 의술을 깨치고 40년간 백성을 치료한 향의(鄕醫)였다. 조선 최초의 홍역치료서인 『마진편』을 썼고, 드라마 ‘허준’과 소설 『동의보감』에선 살신성인하는 허준의 스승으로 묘사됐다.

3억6000만원 주고 내과 의사 영입

그러나 현재의 산청은 의료 취약지다. 올 초 산청군보건의료원은 내과 전문의 모집에 ‘연봉 3억6000만원’의 파격 조건을 내걸어 화제가 됐다. 지난해 4월 공중보건의(공보의)가 전역하면서 공백이 된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5차례 공고 끝에 지난 6월 채용에 성공했다. 산청군청 담당 과장이 170㎞ 떨어진 충북 청주까지 달려 삼고초려한 덕분이었다.

「 조선 명의 유의태의 고장 산청
공보의 11명→7명, 구인난 가중

천명당 서울 의사, 경북의 2.5배
서울대병원, 비서울 환자가 49%

“의료공백 지역, 은퇴 의사 활용”
부산·경북대처럼 지역전형 확대

지난 23일 오후 대구의 경북대병원 로비에서 외래 환자와 가족 등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윤석만 기자

전문의가 온 뒤 의료 질은 높아졌다. 이전엔 외과 등 다른 전공의가 돌아가며 진료를 봐야 해 인슐린 처방 등 전문적 진료가 어려웠다. 박모(82)씨는 “해당 진료과가 없어서 함양까지 나가야 했는데 지금은 선생님이 와서 편해졌다”고 했다. 이모(18)양도 “진주까지는 차로 30~40분은 가야 해서 불편한 게 많았다”고 털어놨다.

애타게 바라던 내과 전문의를 1년여 만에 찾았으니 산청 주민들은 이제 안심해도 될까. 최모(56)씨는 “몇 년 전 둘째가 아파서 동네 의원에 갔는데 병명도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결국 서울대병원까지 올라가서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방이라고 소외되지 않고 균등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산청군보건의료원은 9개 보건지소와 15개 보건진료소를 함께 운영한다. 그러나 의사는 원장을 포함해 9명뿐이다. 이 중 7명은 공보의다. 권순현 산청군 보건정책과장은 “지난해 11명이었던 공보의가 올해는 7명으로 줄었다”며 “증원을 요청해도 전체 숫자가 줄어 의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고 했다.

지방의료원 의사공백 심각

정근영 디자이너

매년 새로 편입되는 공보의는 2008년 1962명에서 2022년 1048명으로 46.6% 줄었다. 이중 치과·한의사를 제외한 일반 의사는 같은 기간 1278명에서 511명으로 60% 급감했다. 의대생들이 현역병(18개월)보다 복무기간이 긴 공보의(36개월)를 꺼리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지방의료원에선 예산이 한정돼 있어 공보의 대신 일반 의사로 대체 모집하기도 쉽지 않다.

산청군보건의료원의 내과 전문의 유재등(69)씨는 “젊은 의사들은 농산어촌 의료원에서 근무하길 꺼린다”며 “은퇴 의사를 활용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충북 청주에서 유내과를 운영했던 그는 “하루 평균 환자가 100명이 넘었고, 연 소득도 지금의 2배 정도는 됐다”고 했다. 다만 그는 “도심보다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밝혔다.

김영옥 기자

의사 구인난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중 23곳이 의사가 없어 일부 진료과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9월 기준) 지난해(18곳)보다 5곳 늘었다. 전북 남원의료원은 안과·이비인후과 등 3개과가 휴진 중이다. 강원도 삼척의료원은 지난해 4월 공보의 2명의 전역으로 피부과·성형외과를 폐과했다.

정춘숙 의원은 “지역에서 거점 공공병원 역할을 하는 지방의료원의 의사 공백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했다. 경북의 한 지방의료원에서 근무 중인 30대 공보의는 “배우자의 직업이나 자녀의 교육환경 등을 모두 무시하고 지방으로 갈 수 있는 젊은 의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대도시 환자도 ‘서울런’

김영옥 기자

지방 대도시는 상황이 좀 나을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경북대병원은 칠곡분원을 포함해 2200여개 병상을 보유한 상급 종합병원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2021~2022년)를 제외하면 만성 적자를 면치 못했다. 김건엽 공공부문 부원장은 “충분히 지역에서 치료할 수 있는데도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017년 8개월 영아의 심장이식에 성공한 어린이 심장수술의 권위자 조준용 흉부외과 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조 교수의 수술 건수는 2014년 130건으로 정점을 찍고 2015년 108건으로 감소한 뒤, 지난해 26건으로 급감했다. 김건엽 부원장은 “지역에선 서울대병원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췄어도 환자들의 발길이 줄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반면 서울대병원에서 최근 1년 6개월 동안 치료 받은 환자 95만여 명 중 49%는 주소지가 서울 밖이었다.(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이들이 병원에 쓴 치료비만 8946억원이다. 교통·숙박비까지 더 하면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의 저자 박한슬 작가(약사)는 “암과 같은 주요 질병은 치료법이 표준화돼 서울·지방의 차이가 없고 진단장비도 거의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환자들이 서울로 몰려가듯 의료진도 ‘서울런’이 심각하다”며 “약사 월급이 대구에선 월 500만~600만원이지만 서울은 공급이 많아 강남 같은 경우는 400만원뿐”이라고 했다.

수도권 병원 지방인력 빨아들여

환자는 물론 의사·약사·간호사까지 빨아들이는 의료 블랙홀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47명이지만, 경북(1.39명)과 충남(1.53명) 등 11개 시도는 2명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경기 시흥) 등 9개 대학이 수도권에만 6600개 병상 규모의 분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에 따르면 이 정도 규모의 병원엔 의사 3000명, 간호사 8000명가량이 필요하다.

지역의료를 살리려면 무분별한 수도권 병원 설립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건엽 부원장은 “국가 차원에서 전체 병상 규모를 관리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각 시도가 종합병원 허가권을 쥐고 있으면 수도권 난립을 막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현재 300병상이 넘는 종합병원 설립할 경우 장관 승인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방 근무 의사들이 많아질 유인책도 필요하다. 지역의사제 도입이나 지역인재전형 확대 등 방안이 거론된다. 전병율 대한보건협회장(차의과학대 보건산업대학원장)은 지역학생 선발 비율을 70~80%로 높이면 지역 의료공백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부산대(81%), 조선대(64%), 경북대(61%) 등 일부 대학에선 절반 이상을 지역인재로 뽑고 있다.

■ “의대 증원만으론 안 돼, 지방 전공의 늘려야”

양동헌 경북대원장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관한 필수의료 혁신전략 회의에 참석했던 양동헌(사진) 경북대원장은 “지방·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발 벗고 나선 것은 처음”이라면서도 “방향은 맞지만 구체적인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수도권 의료 블랙홀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역 격차를 좁히는 게 관건이란 이야기다.

Q : 지역의료 공백의 가장 큰 이유는.
A : “서울과 지방 종합병원의 의사 수만 봐도 차이가 크다. 아산병원의 교수는 1419명인데, 경북대는 295명이다. 병상 대비 교수 숫자가 아산병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환자들도 지역에서 충분히 치료 가능한데 서울로 몰린다. 여기에 수도권에만 6600개 병상 규모의 분원 설립이 예정돼 있다. 결국 지역 의료인들을 모두 빨아들일 거다.”

Q : 지역인재전형의 효과가 있나.
A : “고향에서 대학을 나오면 지역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전공의까지 마치면 확률이 더 올라간다. 전공의 정원이 수도권과 지방이 6대 4인데, 내년부터는 5대 5로 하겠다고 한다. 전공의는 산청군의료원 같은 곳에서도 인근 종합병원과 협력해 할 수 있게 바꿔야 한다. 젊었을 때 지역의료를 경험하면 그곳에 남을 가능성도 커진다.”

Q : 공보의 부족도 큰 문제다.
A : “공보의는 36개월 근무하는데, 현역병은 그 절반(18개월)에 불과하다. 또 병사 월급도 많이 올랐다. 그렇다 보니 공보의 유입 요인이 많이 사라졌다. 현역병과의 격차 문제를 좁힐 필요가 있다. 또 의학전문대학원 시절 병역을 이미 마친 경우가 많아 일시적으로 보건의 숫자가 줄어든 측면도 있다.”

Q : 의대 쏠림 현상이 심각한데.
A : “이공계 등 다른 산업군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사 물론 똑똑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이다. 자기 일에 성실하고, 환자에게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입시에서 이런 역량을 평가하긴 어렵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우린 양성과정에서 의료인문학과 같은 교육을 중시한다.” 」

윤석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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