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사령관은 왜 문재인 정부에 발끈했나[장세정의 시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1년 8개월을 넘었고,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침공이 보복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 사각지대에서 터진 무력 분쟁의 틈바구니에 '불량 국가' 북한의 불법 무기들이 출몰하고 있다. 두 개 또는 세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를 미국의 역량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면서 대한민국의 안보가 걱정된다.
이처럼 위협이 커지는 만큼 가용한 안보 자산을 총동원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 한·미동맹 강화는 기본이고, 한·미·일 안보 협력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가 보유한 안보자산 중에 소홀히 취급한 존재가 유엔군사령부(UNC)다. 북한의 1950년 6·25전쟁 도발 직후 유엔 안보리 결의(84호)로 탄생한 유엔사는 지난 73년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묵묵히 지켜왔다.
그런데 북한과 중국 눈치를 유달리 본다는 지적을 받아온 문재인 정부 시절에 유엔사는 찬밥 신세였고, 때로는 불청객 취급을 당했다. 3성 장군 출신의 국회 국방위원장 한기호 의원실에 따르면 제20대 대통령 선거 하루 전이던 지난해 3월 8일 북한 군인 6명과 민간인 1명이 탄 선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사건이 있었다. 북한 경비정이 선박을 뒤쫓다 NLL을 침범하자 우리 해군 고속정이 40㎜ 함포로 경고 사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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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LL 침범 북 경비정 조사 못 해
한국군 장교 40여명 파견 해제
유엔사 존중하고 안보에 활용을
」
선박이 백령도 용기포항으로 예인되자 해병대와 군사안보지원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간단한 조사만 진행했고, 국가정보원이 주도하는 관계부처 합동신문도 없이 국방부 지시로 대선 당일 오후 2시에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무엇보다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한 도발 행위는 2018년 9월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9·19 군사합의의 첫 위반 사례인데도 유야무야됐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당시 사정에 밝은 군사 전문가 A씨는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유엔사가 합동신문에 나서려 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며 "유엔사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유엔군사령관(폴 러캐머라) 측이 몹시 불쾌해했다는 말이 돌았다"고 전했다. 그 사건 여파인지, 유엔사는 참모부에 파견 나가 있던 한국군 영관급 장교 40여명을 갑자기 돌려보냈다. 영관 장교들은 유엔사 간부들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고 정전협정 관련 동향을 파악해 우리 국가 안보에 상당한 도움을 줬는데 유엔사를 자극하는 바람에 그 채널이 차단된 것이다.
유엔사의 불만이 터진 배경에 대해 군사 전문가 A씨는 "문재인 정부 시절 유엔사를 대놓고 무시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앞서 2019년 11월에는 북한 청년 어민 두 명이 동해 NLL을 넘어 귀순했지만, 판문점을 통해 몰래 강제 북송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문재인 정부는 판문점을 관할하는 유엔사에 강제 북송 사실을 알리지 않아 당시 유엔군사령관(로버트 에이브럼스) 측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커지면서 유엔사가 전투지휘 기능회복 등 재활성화를 추진했을 때도 문재인 정부가 사사건건 딴지를 걸어 갈등을 빚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의료지원국이던 독일과 덴마크가 유엔사에 회원으로 참여하려 하자 문재인 정부 국방부는 "전투병 파병국이 아니면 안 된다"며 거부했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에 집착했고, 북한은 유엔사 해체를 집요하게 주장해왔다.
2020년 8월 당시 민주당 의원이던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유엔군사령부라는 것은 족보가 없다. 이것이 우리 남북관계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처럼 유엔사를 무시하는 언행이 쌓이자 참다못한 유엔사 측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활동하는 유엔사는 한국 정부가 국내 정치적 이유로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강한 메시지를 발신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러캐머라 유엔군사령관(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겸직) 등 유엔사 주요 직위자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유엔사는 한반도 유사시 별도의 안보리 결의 없이도 유엔사 회원국의 전력을 즉각적이며 자동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국방 소식통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유엔사 회원 확대 등 재활성화를 지지하는 입장이고, 한국군 영관장교 40여명을 다시 유엔사에 파견하기 위한 물밑 논의가 긍정적으로 진행 중이다. 유엔사의 존재와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최대한 활용해야 국가 안보와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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