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바다를 육지같이, 이쓰쿠시마 신사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우리에게 불편한 기억이지만 신사(神社)는 일본 문화 이해에 가장 중요한 대상이다. 일본 전역에 산재하는 8만여 신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히로시마 인근의 이쓰쿠시마 신사를 꼽는다. 일본의 지중해라는 세토 내해의 섬, 미야지마 해안에 위치해 풍광부터 뛰어나다. ‘해상 용궁’이라는 별명대로 주요한 시설들이 모두 바다 위에 떠 있는 환상적인 모습이다. 정확히 말하면 해안의 완만한 모래톱 위에 건설했고 밀물 때 완전히 바닷물에 잠겨 해상 건축으로 변모한다.
신사는 바다 건너편의 신령한 미센산을 향해 자리 잡았다. 신사의 정문인 도리이도 바다 한가운데 세워졌다. 높이 16m, 기둥 간격이 11m인 대형 구조물이다. 원래는 배를 타고 도리이를 지나 항구의 잔교와 같이 만든 신사 회랑에 내려 들어갔다고 한다. 접근도 어렵고 건설은 더욱 어렵게 바다 위에 세운 까닭은 이 신사의 주신이 ‘무나카타 3여신’, 바다와 태풍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정토 불교가 들어와 신불일체설이 유행한 뒤에 이 여신들은 관세음보살의 현신으로 여겨졌다. 용궁에 산다는 여신들이나 ‘해수 관세음보살’도 바다를 거처로 삼았다.
이쓰쿠시마 신사는 593년 창건했고 12세기에 크게 중건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16세기에 다시 지었다. 일본의 고전 문화가 확립된 12세기 헤이안 시대의 절제되고 우아한 귀족적 품격을 간직하고 있다. 37개의 건물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주홍색 단청을 칠했다. 푸른 바다와 주홍색 단청, 그리고 백색의 벽체는 강렬한 보색 대비를 이룬다. 중심축선 위에 도리이-야외무대-배전-본전을 세우고 그 주변에 3개의 작은 부속 신사와 전통 연극 노가쿠의 무대를 산재시켰다. 길게 뻗고 꺾인 회랑이 이 건물들을 연결한다. 회랑에서 바다 건너의 무대와 신사들을 바라보고, 멀리 조각같이 떠 있는 해상 도리이와 더 멀리 미센산의 위용에 감탄한다.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건축의 진수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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