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지상전 돌입…이란은 경고

김상진, 박소영 2023. 10. 30.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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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지상 작전을 확대하고 있는 이스라엘군 탱크가 29일(현지시간) 접경 지역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전쟁이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며 작전 목표는 무장 정파 하마스를 파괴하고 인질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지상 작전을 확대하자 이란이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반발하며 중동 정세가 험악해지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이 ‘두 번째 단계’에 진입했다고 28일(현지시간) 선언했다. 하마스 섬멸을 목표로 한 가자지구 지상전이 본격화됐단 의미다. 이스라엘군이 탱크 등을 동원해 가자 북쪽에 교두보를 확보한 가운데 하마스·헤즈볼라 등을 지원해 온 이란은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29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 정권의 범죄가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이것은 모두를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BBC 등이 보도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미국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에 전방위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며 “미국은 ‘저항의 축’에 메시지를 보냈지만, 전쟁터에서 분명한 응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항의 축은 이란이 지원하는 하마스·헤즈볼라 등 반(反)이스라엘 성향 동맹을 뜻한다. 라이시 대통령이 말한 응답은 이들이 시리아와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잇달아 공격한 것을 가리키는 발언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군, 인질 안전 위해 제한적 작전…“가자 내부 3㎞까지 진격”

네타냐후 총리

네타냐후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전날 가자지구에서 시작한 지상 군사작전으로 전쟁이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며 “길고 어려운 전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번째 단계의 목표는 하마스의 통치와 군사력을 파괴하고 인질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내 작전 병력을 늘리고 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기갑·공병·보병으로 구성된 전투병력이 27일 오후부터 가자지구 북부 지상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투입된 지상군은 가자지구 북부 일부를 장악했고 방어선을 구축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26일과 28일 가자지구를 촬영한 상업용 위성사진을 토대로 “이스라엘군이 가자 내부 3㎞ 지점까지 진격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28일 하루 하마스 지휘소 등 450곳을 공습해 하마스 항공대 수장 이삼 아부 루크베를 제거했다. 그는 지난 7일 이스라엘 남부 기습 공격 당시 하마스의 드론(무인기)과 패러글라이더 공격, 공중 탐지, 방공 작전을 지휘한 인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군의 지상전이 시작됐지만 전면전 대신 제한적 작전과 공습을 벌이는 것으로 관측된다. 뉴욕타임스는 27일 “(이스라엘의 공격은) 하마스 기습 이후 가자지구에 대한 가장 길고 야심 찬 지상 공격”이라면서도 “이스라엘 수뇌부가 침공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등 일부 전문가가 예측했던 것보다는 훨씬 제한적인 작전”이라고 평가했다.

이스라엘군 지상전의 최대 과제는 하마스가 가자 내에 그물망처럼 구축한 땅굴 망의 파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떠난 2005년부터 지하철 노선처럼 얽히고설킨 ‘가자 메트로(Gaza Metro)’를 구축했다. 세종시와 비슷한 360㎢ 면적의 가자지구 안에 건설된 지하 30m 이상 땅굴 망은 총연장이 483㎞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라이시 대통령

이코노미스트는 28일 이스라엘군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이스라엘군의 지상 공격은 수개월에서 1년이 걸릴지 모르는 군사작전”이라고 전했다. 전쟁이 길어지더라도 하마스를 섬멸하는 게 이스라엘군의 목표란 뜻이다.

지상전 확대 양상에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을 둔 이스라엘 가족들은 반발했다. 220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 인질 대부분이 가자의 지하 터널에 억류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터널과 시가지에서 벌어지는 전투로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상전 확대로 봉쇄 상태인 가자지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팔레스타인 주민은 더욱 불안해졌다. 식량·물·연료가 바닥을 보이고 전기 공급이 중단된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이 지상전을 위해 전화와 인터넷을 차단시키자 주민들은 30시간 넘게 외부와 단절됐다. 29일에야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 등 통신이 조금씩 복구되고 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한계 상황에 내몰린 가자지구 주민들은 유엔의 구호품 지원센터에 몰려들어 마구잡이로 물품을 가져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29일 “수천 명의 가자지구 주민이 구호품 창고와 물품 배분 센터에 난입해 밀가루를 포함해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을 가져가고 있다”고 밝혔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인도적 지원을 위한 즉각적인 휴전과 조건 없는 인질 석방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유엔은 지난 27일 긴급 총회를 열고 하마스와 이스라엘에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마무드 아바스 수반은 “이스라엘이 유엔 결의에 추가 폭격과 파괴로 응답했다”며 아랍연맹에 긴급 정상회담 소집을 요구했다.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아라비아·오만·이집트 등에선 이스라엘의 지상전 확대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칼리드 빈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방장관은 30일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등을 만나 관련 사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상진·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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