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망사를 입은 샘 스미스
5년 만에 내한한 가수 샘 스미스의 공연에서 놀랐던 건 그가 입은 티팬티도, 객석에 등장한 코미디언 황제성도 아닌 뒷좌석의 중년 부부였다. 샘 스미스가 여러 번 “스탠드업!”을 외쳐도 꿋꿋이 앉아 공연을 보던 부부의 위기는 2부 말미에 왔다. 키 189㎝의 거구 샘 스미스가 티셔츠를 벗어 흔들고 망사 스타킹으로 갈아입자 객석에선 당황스러운 탄성이 나왔다.
그러나 곧 “Mummy don’t know…”가 흘러나오자 부부도 앞 좌석 관객들을 따라 주섬주섬 일어났다. 지난해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팝 듀오 곡에 선정된 ‘언홀리(Unholy)’다. 부부는 어색하게 박수를 치다가, 이내 발을 구르고 환호하며 춤을 췄다. 눈길을 끈 관객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19금 공연’에 딸과 함께 온 희끗희끗한 머리의 엄마, 빨간 뿔 머리띠를 함께 쓴 가족도 있었다.
어떤 음악은 어떤 인생을 알아야 들린다. 누군가는 “사탄 들렸다”고 손가락질하는 샘 스미스의 음악적 변화는 정장을 입고 짝사랑을 절절하게 노래하는 잘생긴 영국 남자를 사랑했던 한국에만 충격을 준 건 아니었다. 그는 2019년 스스로를 ‘젠더 논 바이너리(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별)’로 규정하고 정장을 벗었다. “평생 할 것”이라던 다이어트도 접었다. 꽉 찬 목소리로 부르짖던 짝사랑 대신 농염하게 “난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가치가 있지”라며 살랑살랑 춤을 췄다. 실망하고 돌아선 팬이 많았다. 길에서 침을 뱉고 대놓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음악이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는 건 특별하게 느껴진다. ‘남들만큼’ ‘남부럽지 않게’가 삶의 기준이, ‘남사스럽게’가 언행의 하한선이 되는 나라에서 그의 변신을 본 이들은 처음엔 당황했고, 일부는 “못 보겠다”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도 적잖은 이들의, “행복하면 됐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반응엔 성별과 연령을 넘나드는 따뜻한 인정이 있다. 아티스트의 행복이 명곡으로 이어진단 걸 믿는 단순명료한 응원이다.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회사 스포티파이가 올해 밝힌, 한국에서 역대 가장 많이 재생된 샘 스미스의 곡은 ‘I’m not the only one’이 아니라 반짝이는 장갑을 끼고 요염하게 춤추는 ‘Unholy’다.
샘 스미스는 올해 앨범을 내며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마음과 이 음악이 좋은 친구가 되길 바라는 진심을 담았다”고 했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이 한국 등 7개국 소비자 설문조사와 온라인 버즈(언급량)를 토대로 공개한 ‘2023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의 키워드는 ‘정체성 탐험’이라고 한다. 얼마 안 남은 올해, 남의 기준을 엄격히 대지 말고 나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고 예뻐해 주자. 행복하면 됐다.
성지원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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