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환위기의 몇십배” 비서실장의 뒤늦은 가계부채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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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쉽고 싸게 받는 정책, 가계부채 크게 늘려
정부는 단호한 의지로 고금리 장기화 대비해야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어제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겪었던 외환위기의 몇십 배 위력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놨다. “과거 정부에서 유행한 영끌 대출이나 영끌 투자 이런 행태는 정말로 위험하다”고도 했다.
그의 말엔 틀린 것이 없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폭발 직전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국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8.1%로 스위스(130.6%)에 이어 세계 2위다. 절대 수준도 높지만, 증가 속도가 무섭다. IMF가 데이터를 집계하는 26개국 중 우리나라의 최근 5년간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가장 빨랐다. 젊은 층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한다)’ 열기는 윤석열 정권에서도 식지 않고 있다. 2분기 30대 이하의 1인당 가계대출은 약 7900만원으로 2019년 2분기보다 27% 늘었다. 고금리 아래 청년들의 비명도 높아지고 있다. 2030 취약차주(다중채무자·저신용·저소득 대출자)의 빚 연체율은 8.41%에 이른다.
그러나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최고위 참모일 뿐 아니라 정책 조율에 깊숙이 간여한다는 점에서 김 실장의 경고는 다소 느닷없다는 느낌을 주는 측면이 있다. 그간 가계부채 대책을 놓고 정부와 한국은행은 상당한 엇박자를 내왔다. 한은은 현 정부 들어서만 기준금리를 2%포인트(1.5%→3.5%) 올린 뒤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사이 특례보금자리론과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제외,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허용 등 정부가 내놓은 조치는 가계대출을 가파르게 늘리는 쪽으로 작용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에 금리 인하를 종용하기도 했다. 여기에 전매 제한 등 부동산 규제에 대한 완화가 더해지면서 집값을 끌어올렸고, 이런 상황이 2030의 패닉바잉(공포 매수)을 부추기며 주택담보대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정부가 가계부채에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던 지난해엔 가계대출이 7조8000억원가량 감소하기도 했다. 물론 부동산 급락과 역전세난을 막아야 하는 필요성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의 가계부채 대처 전선이 느슨해졌던 것은 사실이고, 그 배경엔 뿌리 깊은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가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출을 보다 쉽고 싸게 받게 해달라는 요구를 수용하고 부동산 규제를 대폭 푼 데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 시엔 거시 경제의 건전성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법이다. 고금리의 장기화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중동 전쟁으로 유가 급등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한국 경제가 살길은 포퓰리즘을 배척하고, 각 부문의 부채를 줄여가며 구조개혁에 매진하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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