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도 미니멀리즘
나와 지구, 동물들이 더불어 살기를 바라며 책 〈몸에도 미니멀리즘〉을 출간했다.예쁜 디자인의 냄비 받침을 찾고 있던 순간 잠시 생각했다. ‘꼭 사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이 결심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부엌에서 늘상 사용하던 마른 수건을 툭툭 접어 냄비를 받쳐봤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냄비 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묘연하게 사라졌다. 그때부터였다. 뭔가를 쇼핑하기 전에 ‘없이 살아보기’를 선택한 것이. 나는 무언가 필요하더라도 구입하는 시간을 지연하며 지내본다.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물으며 쓸모를 가늠해 본다. 물건을 사는 순간은 정말 짜릿하지만, 소유에는 분명 책임이 따른다. 옷장에 옷이 가득하다면 옷을 정리할 더 넓은 옷장과 옷걸이도 필요하다. 세탁과 다림질 과정은 물론이다. 차를 산다면 주차를 위해 시간을 쓰고, 주유를 하고, 보험과 소유세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수많은 비움 중에서 온갖 메이크업 제품으로 가득 찬 화장대를 비우며 커다란 기쁨과 자유를 느꼈다. 물로 세안하고 샤워하면서 내 맨 얼굴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고치지 않아도, 수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혼자 살 때는 짬뽕, 피자, 떡볶이 등 자극적인 음식을 식탁 위에 늘어놓고 배가 불러도 식사를 멈추지 않았다. 즐겁게 먹기 시작했음에도 먹고 난 뒤에는 항상 속이 불편했다.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하루에 100번 넘게 방귀를 뀌고 트림을 했다. 매일 배달 음식과 통조림으로 식탁을 채우던 삶이 ‘비움’ 스위치를 켜자마자 완전히 뒤바뀌었다. 약도 안 듣던 오랜 고질병이 필요한 만큼 먹는 선택으로 완벽하게 사라졌다. ‘자동차에 연료를 넣듯 우리 몸에도 적절한 연료를 골라야 한다’는 말을 만나면서부터 매일 아침 신선한 제철 과일로 몸을 깨우고 있다. 점심은 현미밥과 된장찌개처럼 한식을 먹고, 저녁은 파트너와 함께 새로운 재료를 실험하며 맛의 지평을 넓혀 나가고 있다. 내 끼니를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작은 성취는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을 또렷하게 의식하는 계기가 된다.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필요 없는 물건을 줄이는 일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미니멀리즘은 물건뿐 아니라 음식에도 적용된다. 내 몸에 넣는 것, 내 몸에 바르는 것, 나아가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에도 비움의 미학이 깃든다. 이상할 만큼 많은 물건을 가졌던 예전을 떠올려보면 나는 오히려 갖고 싶은 것, 부족한 점에 집중했었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감각은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신나게 산책할 수 있는 두 다리와 내가 오늘 입을 옷과 하루를 지낼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 비움이란 단순히 텅 빈 공간만은 아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의식하고, 선택하는 일과 더 닮아 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 과도한 음식과 잡다한 생각까지 하나씩 줄여나가며 진짜 중요한 것에 몰두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황민연
5년 전 채식을 시작하면서 미니멀 라이프에 매료됐다. 나와 지구, 동물들이 더불어 살기를 바라며 책 〈몸에도 미니멀리즘〉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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