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뒤 응급의학과 의사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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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류옥하다 기자는 대학 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류옥하다 기자]
우리 병원의 고층 병동에서는 남산타워와 그 아래 이태원이 보인다. 2년 전 10월 29일, 친구들과 몇천 원짜리 분장을 받은 채 노래 울려 퍼지는 이국적인 골목을 거닐었다. 1년 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있었던 날. 내가 그곳에 있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다음날이 학교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나 다시 10월 29일이 됐다. 나는 전공의로 한 달간 응급실에 근무하고 있다. 이곳에서 죽음은 흔하다. 지병이나 가족력이 있는 중년의 남자가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나면 가족들은 병원이 떠나가라 통곡한다. 아흔여덟 살로 장수하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한들 가족들의 울음소리는 전혀 작지 않다.
예정된 죽음의 슬픔도 그토록 클진대, 주말을 즐기려던 젊은이들, 데이트하던 연인들, 서울 나들이를 온 부모와 자녀를 한순간에 잃은 이들의 슬픔은 어떨까.
▲ [오마이포토] 이태원 인명사고, 줄지어 서 있는 구급용 이동침대 2022년 10월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30일 오전 2시 30분께 이태원 해밀턴 호텔 왼편 건물 앞에 소방·경찰 관계자들이 모여 있다. 구급용 이동침대가 줄지어 배치돼 있는 모습. |
ⓒ 권우성 |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것은 국가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다. 159명의 죽음은 빈약한 시스템과 무능한 어른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 정치권도 이태원 이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간 국회에서 48개 안전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절망적이게도 지금까지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1건에 불과했다.
누군가는 이태원을 찾아간 이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놀다가 죽었다.' '서양 귀신 명절을 왜 즐기냐?'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 이 말이 생존자와 유가족에게는 더한 상처가 되었다. 살면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놀지 않은 자만이 그들에게 돌을 던지시라. 우리 모두 '운이 좋았기에' 살았을 뿐이다.
고등학교 때도 또래들을 잃었다. 수학여행 가던 친구들을 비롯해 304명이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놀러 가다 죽었다.' '교통사고'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는 말은 10여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책임은 명확하지 않았고, 같은 사고는 다시 반복되었다.
재난의학(Disaster medicine)과 이태원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재난의학(Disaster medicine)'에 관심이 커졌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과 이어진 19세기의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로 부상자의 체계적 분류(Triage)가 대두되었다. 이후 전쟁, 테러와 같은 상황부터 자연재해까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재난의학은 생존자들의 건강 관리와 의료 자원 배분이라는 기능을 강화하며 발전해 왔다.
'재난의학'은 병원에서의 '응급의학'보다는 조금 넓은 분야로써 예방의학, 공중보건, 구호, 감염관리, 등의 여러 학문의 포괄적인 지식을 요구한다. 행정, 소방, 공공, 보험,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와 효과적으로 합쳐지면 재난 상황을 막고, 이미 닥친 재해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태원 당시에는 이런 재난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환자의 분류(Triage), 이송, 심폐소생, 자원의 분배, 생존자의 심리적 건강 관리 등 모든 분야에서 당시 재난의료는 처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장과 응급실에서는 잘못된 상황 판단으로 이미 사망한 환자에게 의료 자원이 투입되어 살 수 있는 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하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당시 재난의료지원팀(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DMAT)이라 불리는 4~5명의 의사/간호사로 구성된 의료팀이 존재했지만, 윗선의 늦은 상황 파악과 지연된 대응으로 인해 팀이 도착했을 당시에는 이미 심정지 환자가 수십 명 발생한 뒤였다.
▲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인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참사 현장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4대종교기도회에서 유가족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
ⓒ 유성호 |
159명이 죽었는데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굴러간다. 그러나 나도, 내 친구들도, 내 가족들도 언제든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새내기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학생 시절 읽었던 응급의학 교과서 서문 어딘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응급의학은 '죽음의 절벽에서 떨어지려는 사람을 붙잡고 있는 손'이라고 말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그리고 수많은 크고 작은 재난의 순간들에서 희생자들은 그 '붙잡을 손'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책임지지 않는 부끄러운 어른들, 정치인들과 달리 재난을 마주한 이들, 지나친 이들, 아프고 소외된 모든 이들 곁에 서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더 안전하고 따듯한 곳이 될 것이라 믿으며, 나는 오늘 응급의학과 의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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