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주변에 이런 애는 싫다"는 댓글, 충격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송성호 기자]
동성 부부로서는 국내 최초로 임신과 출산을 해 화제가 된 김규진·김세연씨 부부의 이야기를 최근 읽었다. 국내 첫 동성 부부가 딸 '라니(태명)'를 건강히 낳아, 치열하게 육아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통상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1명이 채 안 되는 기록(?)을 보유한 대한민국에서 비혼, 비출산은 이미 하나의 추세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런 와중에 동성 부부가, 입양도 아닌 출산을 통해 아이를 낳았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지난 8월 30일 새벽 4시 30분 국내 첫 레즈비언 부부인 김규진(32)·김세연(35)씨의 딸 '라니'(태명)가 태어났다. 3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출산 소감을 밝힌 규진씨와 세연씨는 '국내 첫 임신 레즈비언 부부'이자 '국내 첫 출산 레즈비언 부부'가 됐다. |
ⓒ 연합뉴스 |
무엇보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우선 현재 국내에서는 법적 부부나 사실혼 이성애 부부에게만 정자를 제공하기에 동성 부부가 출산을 원할 경우, 다른 나라에서 정자를 기증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더 놀라웠던 점은 프랑스 사례였는데, 프랑스에선 2021년에 이미 비혼 여성과 동성 커플에게까지 시험관 시술이 합법화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뒤 이성 커플 뿐 아니라 비혼 여성이나 동성 부부를 포함한 임신·출산이 늘어났다는 얘기였다(이걸 알게 되기 전까지 나는, 출산은 여성과 남성으로 이뤄진 한 쌍에서만 가능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기사 속 규진씨네 부부가 벨기에 난임센터에서 정자를 받기 전 필수적으로 받아야 했다는 상담도 인상적이었다. 센터에서는 '아이에게 엄마가 두 명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아이에게 소개해 줄 만한 좋은 남성 어른이 주변에 있는지', '(커밍아웃을 받아들이지 못한) 부모님에게 아이를 소개할 생각인지' 등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 보면 양육자로서의 책임감도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양육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능력은, 단순히 부부의 성별보다도 그에 대해 얼마나 각오하고 숙고했느냐에 더 많이 달린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여자친구가 덧붙인 말이 와닿았다. 남녀로만 이루어진 부부가 정답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갖기 전부터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졌으며, 낳고 난 이후에도 그 초심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 하는 것이지 않을까.
국내 1호로 출산을 한 동성 부부가 탄생한 것은 내겐 무척 고무적인 소식 같았다. 동성 커플도 얼마든지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동성 커플들에게 용기를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 일이니까 비난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제 아이 주변은 싫어요. 이것도 혐오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어요. 아이들한텐 평범한 환경, 일반적인 것들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크니까요."
모 인터넷 카페에서 읽은 댓글처럼, 일각에서는 자기 자녀 주변엔 이들 부부가 낳은 아이같은 동성애 커플의 자녀가 없길 바란다는 말도 있었다. 자기 아이를 사회적 규범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머물게 하고 싶다는 건 이해가 갔다. 그래도 그걸 굳이 글로 쓰다니, 내겐 다소 충격적인 지점이었다. 여자친구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규진씨·세연씨 부부 역시 엄연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 (자료사진). |
ⓒ pexels |
물론 마냥 지지만 하긴 어려운 부분도 있다. 제3자의 정자를 받아 기술을 이용해 임신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공학 기술은, 생명을 '만든다는' 측면에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윤리적 질문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동성 부부든 이성 부부든 결국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사랑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뱃속의 작은 생명체에게 사랑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 것은, 기술의 도움을 받든 받지 않든 모두 같을 것이다. 남들과 조금 다른 부부라고 해서 무조건 포기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여론 갈리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과거와 달리 요즘엔 개인을 위주로, 이전의 많은 것들이 해체되고 붕괴되는 것 같다. 물론 해체와 붕괴만이 답이라고 속단하진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기존의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 역시 답이 아니라는 것. 지금 눈 앞의 사회적 변화들은 보다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거라 나는 믿는다.
비록 여론은 혼란스럽지만, 이들 부부가 발 딛고 있는 일상 속 '삶의 현장'은 그와는 좀 다른 것 같다. 동성애 커플인 규진씨 부부가 이성애 부부 친구들에게 육아에 대해 배우는 것, 부부의 결혼 소식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던 규진씨 아버지가 임신 소식에 결국 든든한 지원군이 됐으며 연이 끊겼던 어머니가 이젠 "(아기 사진) 1일 1사진 필수로 보내라"고 한다는 이야기까지. 한 부부의 출산으로 인한 주변의 변화와 성장하는 모습은 내게도 감동으로 다가왔다.
인종, 성별, 지역, 지위... 인간을 구분 짓는 것들보다도 인간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가치가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 '비정상'을 함부로 재단하는 악플들을 읽으며 여자친구는 '사랑'을 떠올렸단다.
"구별과 구분 대신 사랑으로 연대하는 거, 그게 사람 냄새 나는 세상 아닐까. 그들 앞에 놓인 다양한 장벽과 그늘은 두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라 믿어. 그렇게 심지가 단단하고 굳건한 두 사람의 사랑과 양육 아래 자라난 아이라면, 주변 우려와는 반대로 오히려 더 멋지게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아이의 성숙과 행복은 소위 말하는 가족 형태의 '정상성'에만 달려있는 건 아닐지도 몰라."
동성 부부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주제에 관해 대화하고 이렇게 기사를 쓰는 건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자칫 내 부족함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불쾌함이나 상처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들어서다. 그런데도 용기 내어 기사를 작성한 것은, 덮어두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되는 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면보다는 직면이, 비난보다는 대화가 필요한 시점 아닐까.
규진씨 부부의 행보에 언론에선 이런 저런 해석들을 내놓지만, 부여되는 그 어떤 의미보다도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그들 부부 역시 엄연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 규진씨·세연씨와 딸 '라니'의 앞날에 평범하고도 평안한 행복이 가득하길 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