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위기땐 외환위기 몇십배 위력”…대출 추가 규제 꺼내나
정부와 여당이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해 경고성 발언을 쏟아냈다. 고금리 상황이 길어지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듯 돈을 빌린다는 뜻)’ 가계대출이 한국 경제 새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해서다. 이미 예고한 추가 규제는 조기 시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가계부채 위기 시 1997년 외환 위기 몇십 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하는 꼼수를 차단하고, 동시에 금리 상승 부담이 서민 자영업자들의 폐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금융안전망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과거 주택 가격 급등기에 대비해서는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지만, 글로벌 고금리 기조 하에서 이자 부담과 상환리스크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가계부채 양과 질을 면밀히 점검하고 관리해 나가겠다”고 했다.
정부 규제에도 가계대출 확대 조짐
이후 가계대출은 증가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날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지난 26일까지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과 비교해 2조4723억원 늘었다. 이달 전체 대출액을 다 집계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추세대로면 한 달 증가 폭으로 2021년 10월(3조4380억원) 이후 2년 만 가장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5대 은행의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 폭(1조5174억원)과 비교해도 62.9% 증가한 금액이다.
가계대출은 정부 관련 규제 강화 이후 증가 폭이 일시적으로 감소했었다. 지난달 금융당국은 DSR 산정 만기를 최대 40년으로 축소하고, 부부합산 연 소득 1억원 초과 차주에게 제공하는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특례론)의 취급을 중단하는 가계부채 대책을 내놨다.
정부 대책 발표 이후 지난달 전월 대비 전체 가계대출은 2조4000억 증가하면서, 8월 증가 폭(6조1000억원)보다 크게 둔화했다. 하지만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이달 다시 큰 폭으로 늘면서, 전체 가계대출 증가세도 다시 확대할 가능성이 커졌다.
부동산 반등, 규제 풍선효과에 대출 증가
가계부채가 다시 늘기 시작한 것은 최근 주택 시장 분위기와 연관이 있다. 지난 26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주 대비 10월 넷째 주 아파트 매매가는 전국(0.05%)과 서울(0.07%) 모두 각각 15주·23주 연속 상승세를 유지했다. 주택 가격이 이미 바닥을 찍었다는 심리에 가을 이사 철까지 겹치면서,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세가 계속 이어졌다.
여기에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에 정부가 가계대출을 더 조일 조짐을 보이자, ‘대출 막차 타자’는 일종의 정책 풍선효과도 발생했다. 실제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달 26일 기준)은 지난달 말과 비교해 주택담보대출(2조2504억원)은 물론, 신용대출(5307억원)까지 늘었다. 5대 은행 신용대출이 는 것은 2021년 11월(3059억원) 이후 1년 11개월 만에 처음이다.
스트레스 DSR 등 추가 규제 가능성
가계대출 확대 조짐에 금융당국은 이미 예고했던 추가 규제를 시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대표적으로 ‘스트레스 DSR’ 도입이 꼽힌다. 스트레스 DSR이 도입되면, 변동금리 대출 상품의 DSR을 산정할 때 향후 금리상승을 예상한 가산금리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소득 5000만원 회사원이 변동금리 연 4.5%(50년 만기)로 대출할 경우, DSR 40%를 적용하면 최대 4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향후 금리상승을 예상해 가산금리 1%포인트를 적용, 5.5%로 DSR을 산정하면 3억4000만원까지 대출 한도가 제한된다.
현재 소득뿐 아니라 미래에 줄어들 소득까지 고려해 대출 만기를 설정하도록 제도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은퇴 후 연금 소득까지 고려해, 대출을 갚을 능력이 되지 않으면 만기가 줄어든다.
이 밖에 전세반환 목적 대출 등 현재 DSR 규제 예외로 적용하고 있는 항목들을 줄일 가능성도 있다.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사실상 대출 규제 우회 수단으로 이용되는 전세자금을 DSR 규제 내로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정부에서 시행했던 대출총량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다시 검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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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엇박자…정부가 대출 규제 예외 만들면 안돼”
전문가들은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막기 위해서 일관적 정책 신호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줄어들던 가계대출은 정부가 부동산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전매 제한 등 각종 부동산 규제를 풀고,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과 특례론 등에 DSR 예외를 허용하면서 다시 늘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꼽았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도 정부가 특례론을 통해 처음 도입한 상품이었다.
여기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생금융을 외치며, 시중은행에 대출 금리 인하를 압박한 것도 정책 혼선을 유발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 한 금융통화위원은 “창구지도 등 중앙은행이 통제할 수 없는 정책들이 통화정책 기조와 괴리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한은이 기준금리 중단 신호를 시장에 너무 빨리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 만큼 돈을 빌려준다는 기본 원칙의 예외를 정부가 만들면서 가계 부채 증가를 용인한 측면이 있다”면서 “한국은행도 가계부채가 계속 늘면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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