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평범하다고 모두가 똑같을 리 없잖아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편집자말>
[김지은 기자]
공모전에 틈틈이 응모하는 사람으로서 공모전에서 상을 탄 작품은 읽어보려고 하는 편이다. 제13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을 탄 <고요한 우연>이 올해 2월에 출간되고 '한 번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다른 책들에 계속 밀려 이제야 읽게 되었다. 더 뒤로 밀리지 않고 지금이라도 읽게 된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이 '평범한 여고생'이라는 정보를 어디선가 접하고 나서다.
최근 몇 년간 아동, 청소년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소설, 영화, 드라마는 '판타지'가 대세가 되었다. 주인공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시간을 거스르거나 미래로 뛰어넘기도, 시간을 멈추기도 한다.
이런 작품들이 많아지다 보니 오히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졌다. 청소년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청소년은 평범할테고 초능력을 가지지도 주목받을 만한 대단한 재능이 있지도 않을 거니까.
▲ <고요한 우연> 책 표지 제13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
ⓒ 문학동네 |
책을 다 읽은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이 소설은 평범한 청소년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작품이라는 거다. 이미 성인이 된 평범한 어른들이 읽는다면, 학창 시절의 기억이 바로 소환될 수도 있다. 난 책장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내 얘기를 쓴 게 아닌가' 싶어 깜짝 놀랐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특징이 없는 얼굴이다. 눈도 그냥, 코도 그냥그냥, 입도 그냥그냥.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말하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색이 바랜 사진처럼 희미한 얼굴."(p15)
이번 주말 처음 간 고깃집 사장님께서 날 보며 "우리 집에 오신 적 있으시죠?" 하고 환하게 웃으셨다. 비단 그 가게뿐 아니라 바로 집 앞에 생긴 삼겹살집 사장님께서도 분명히 날 어디서 봤다며 이 동네에 얼마나 살았냐, 혹시 자신이 전에 하던 가게에 온 적이 없냐 등등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나와 비슷한 평범 덩어리 주인공 수현은 반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정후'를 짝사랑하고, 공부를 잘하고 예쁘기까지 하지만 차가운 성격 탓에 왕따를 당하는 '고요'를 돕고자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우연이가 꿈에 나오고 '왜 이 아이가 내 꿈에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에 우연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평범한 인물인 수현과 우연,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정후와 고요. 그리고 수현의 든든한 단짝 지아. 이 다섯 인물을 중심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수현은 우연을 지켜보다가 우연이 핸드폰으로 누군가의 SNS를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언뜻 본 계정으로 아이디를 검색했고 팔로우 요청을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수현의 비밀계정 활동이 시작된다. 오프라인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정후와 고요와 온라인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정후와 고요는 모르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한다. 수현은 정후와 고요가 반짝반짝 빛나는 별 같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들도 나름의 아픔과 걱정이 있었다.
수현은 우연을 자신처럼 평범한 아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비밀계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어본 결과, 우연은 자신을 평범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연은 피규어 랜덤 뽑기 기계에서 원치 않는 캐릭터를 뽑고는 그 피규어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능력치 낮은 캐릭터. 자신의 부모는 특별 한정판 피규어를 뽑지 못하고 운이 없게도 자신을 뽑았다며 부모를 안쓰럽게 여긴다.
특별한 정후와 고요. 평범한 수현. 평범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연. 수현은 그 친구들의 가운데에 서서 그 모두에게 위로를 건넨다. 정후의 고민을 들어주고, 고요의 힘듦을 나누고, 우연에게 용기를 준다. 수현은 자신의 평범이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무난하고 동글동글한 성격으로 모두를 다독인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수현 자신도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수현은 자신임을 숨기고 비밀계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친구들을 속이는 것 같아 마음이 힘들다. 자신임을 밝히고 싶지만 친구들이 상처받는 것이 두렵다. 그때 수현의 단짝인 지아가 수현에게 말한다.
자신은 답답할 정도로 착한 이수현이 좋다고. 그리고 사실대로 말했을 때 그 아이들이 용서해 주지 않는다고 자책하지 말라고. 누구나 한 번은 실수할 수 있고, 그걸 반복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이다.
"밤하늘을 지키는 북극성처럼 내 중심축의 끝에는 언제나 지아가 있었다. 아무리 낯설고 어두운 곳에서 길을 잃어도 지아를 찾으면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아낼 수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나는 용기를 내야 한다. 그로 인해 많이 아플지라도. 많은 것을 잃어버릴지라도."(p216)
누군가를 응원해주는 한 사람의 든든함
나도 수현처럼 평범한 학생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아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내 어딘가에 특별함이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감정이 요동치는 사춘기, 어느 날은 내가 특별한 사람 같아 기분이 하늘 끝까지 솟았다가, 어느 날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기분이 땅속으로 꺼졌다. 현실의 내 모습과 이상적인 내 모습과의 거리가 멀었고 그래서 힘들었다.
그러나 수현은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특별함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건 바로 수현을 다정하고 단단한 아이라고 말하는 엄마와 그런 수현의 옆에서 수현을 좋아해 주는 지아가 있어서가 아닐까. 결국 독자들은 마지막에 수현의 작은 반짝임을 발견한다. 평범함 속에 숨어 있던 귀한 반짝임.
평범하다고 모두가 똑같은 사람은 아니다. 각각의 평범함 속에 각자 다른 반짝임을 품고 살아간다. 툭출나게 눈에 띄는 반짝임이 아닌 평범한 사람 속의 반짝임은 묻히기가 쉽다. 그 반짝임이 묻히느냐, 드러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믿고 지지해주는 한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게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응원하고,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표현하는 일은 얼마나 귀한가. 어쩌면 한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내 옆에서 나를 응원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힘을 내자. 그런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나부터 그런 사람이 될 결심을 하자. 조금 억울하겠지만 어떨 땐 내가 먼저 남이 해주었으면 하는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태원 찾은 이상민 "한번 포가 떨어진 곳은 다시 안 떨어진다"
- 3·1운동을 소재로 한 '조국' 들고 복귀한 친일파
- "끔찍한데요" 상사와의 대화에서 진심이 튀어나왔다
- 100일, 1년, 10년... 참사의 나라에 유족으로 산다는 것
- '이준석 신당'과 합당 가능성도 열어둔 정의당
- 내가 아침마다 이-팔 전쟁 뉴스를 검색하는 이유
- 이-팔 전쟁에 학교서 온 공지...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 파타고니아 실무자와 낙동강·금호강 '삽질' 현장에 가다
- 유가족 뿌리치고 추도예배 간 윤 대통령 "유가족에 깊은 위로"
- 당정 "팬데믹 때 선지급된 재난지원금 환수 면제…57만명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