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를 씨 뿌려 키운다고? 시장 뒤집은 '다이아몬드 1캐럿'
지난 25일 찾은 서울 종로구 KDT다이아몬드 매장. 화려한 반지·목걸이들이 전시된 매장 한 귀퉁이에 33㎡(약 10평) 남짓한 크기의 실험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도인 연마사들이 랩그로운(lab-grown) 다이아몬드(이하 랩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공간이다. 랩 다이아몬드는 말 그대로 실험실에서 자란 것이지만, 화학적·물리적·광학적으로 채굴된 천연 다이아몬드와 100% 동일하다.
KDT다이아몬드는 2021년 말 국내 최초로 랩 다이아몬드 개발에 성공했다. 가로 7mm·세로 7mm짜리 다이아몬드 시드(씨앗)을 화학기상증착(CVD) 기계에 넣으면 약 500시간 만에 다이아몬드 원석이 된다. 씨앗 위에 탄소 원자를 붙이는 원리다. 아직 반짝이지 않는 원석은 연마사들의 손을 거쳐 빛나는 보석용 다이아몬드로 변신한다. 3D 스캐너를 통해 크기·모양을 정하고, 레이저 기계로 원석을 깎아 낸 뒤 다이아몬드가 코팅된 디스크 판으로 섬세하게 가공하면 완성이다.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다이아몬드가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생산 업체 드비어스도 올 6월 랩 다이아몬드로 만든 결혼반지를 선보였다.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과 직접 경쟁하는 결혼반지는 만들지 않겠다”던 선언을 뒤집은 것이다.
다이아몬드 전문 연구원 폴 짐니스키의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랩 다이아몬드 시장 규모는 2021년 약 2조6000억원에서 2025년 5조2000억원으로 두 배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에선 이랜드그룹의 주얼리 브랜드 ‘로이드’가 2020년 말 랩 다이아몬드를 가장 먼저 도입했다. 올해 로이드의 랩 다이아몬드 매출은 2021년 대비 150% 증가할 전망이다.
랩 다이아몬드의 인기가 높아지자 백화점 업계도 적극적으로 매장 유치에 나섰다. 올해 초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입점한 KDT다이아몬드의 브랜드 ‘알로드(ALOD)’는 지난달 처음으로 국내 귀금속 매장 중 월 매출 1위를 찍었다. 천연 다이아몬드 브랜드보다 상품 수로는 훨씬 많이 팔린 셈이다. 랩 다이아몬드 전문 브랜드 ‘더그레이스런던’은 지난 8월 롯데백화점 동탄점에서 열린 VIP 행사에서 2시간 만에 1억원 어치를 팔았다.
인기 비결은 합리적인 가격이다. 중상급 기준 천연 다이아몬드는 1캐럿에 1500만원 수준이지만, 랩 다이아몬드는 약 300만원 정도다.가격 측면의 이점이 크다 보니 기존에 천연 다이아몬드 상품을 가진 고객들이 추가로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 일반적인 라운드(둥근) 컷이 아닌 ‘팬시 컷’(라운드 컷 이외의 모양)을 원해서다.
강성혁 KDT다이아몬드 실장은 “다이아몬드는 이상적인 연마 비율로 깎았을 때 가장 빛나는데, 천연의 경우 더 큰 중량을 위해 비율을 타협하기도 하지만 랩 다이아몬드는 훨씬 더 반짝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SSG닷컴은 가장 희귀한 보석으로 손꼽히는 핑크 다이아몬드를 실험실에서 길러내는 방식으로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의 영향도 컸다. 천연 다이아몬드 채굴 과정에서 환경오염과 노동착취 논란이 이어져 랩 다이아몬드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랩 다이아몬드는 채굴 시 발생하는 토양 오염과 과도한 탄소 배출 등의 문제가 없어 ‘에코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린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가치소비와 친환경에 대한 고객 관심이 높아져 랩 다이아몬드 브랜드 입점과 팝업 스토어 등을 확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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