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속 하마스 고사작전 통할까…가자 지하에만 483㎞ 깔렸다
이스라엘이 ‘두 번째 단계’라며 지상군 투입을 확대하자 "하마스의 땅굴 게릴라전을 봉쇄하기 위해 '가자 전투'가 장기화될 것"이란 서방 전문가들의 전망이 나온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참에 하마스를 완전히 소탕하겠다는 각오로 이스라엘군이 작전을 펴고 있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이스라엘이 목표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앞으로 더 많은 도전과 딜레마에 직면하는 등 예측불허의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27일(현지시간) 다수의 전차를 동원해 지상군 병력을 가자지구 안으로 진격시켰다. 외신들에 따르면 가자지구를 촬영하던 카메라에 이번 전쟁 중 가장 치열한 포격이 포착됐을 만큼 이스라엘군의 공세가 강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이후 이스라엘 측이 꾸준히 예고했던 사단급 규모의 전면 공격은 아니었다. 다만, IDF는 지난 작전들과 달리 가자지구에 남아 임시 거점을 구축하는 등 장기 작전에 대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지상전 양상을 두고 “하마스의 땅굴망을 고립·파괴하고 하마스를 가자에서 축출하는 게 이번 전쟁의 목표”라고 밝힌 IDF 지휘관들의 속내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28일 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군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가자지구 최대 도시이자 하마스 본거지인 가자시티를 남쪽과 북쪽에서 동시에 점진적으로 포위하려는 계획”이라며 “IDF의 지상 공격은 수개월에서 1년이 걸릴지 모르는 군사작전”이라고 전했다. 전쟁이 길어지더라도 하마스를 뿌리 끝까지 솎아내겠다는 게 이스라엘군의 목표란 뜻이다.
장기전으로 땅굴 게릴라 고사
IDF 지상작전의 최대 과제는 하마스가 가자 내에 그물망처럼 구축한 땅굴망의 파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떠난 2005년부터 마치 복잡한 지하철 노선처럼 얽히고설킨 이른바 ‘가자 메트로(Gaza Metro)’를 구축했다. 세종시와 비슷한 360㎢ 면적의 가자지구 안에 건설된 지하 30m 이상의 땅굴망은 총연장이 483㎞에 달한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공습으로 이런 하마스의 '지하세계'를 모두 없애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이스라엘군이 장기작전을 준비하는 것도 하마스 잔당이 스스로 땅굴에서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일종의 '고사 작전'이란 해석이 나온다.
국방장관 등을 역임한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는 이코노미스트에 “하마스는 이런 상황을 전혀 대비하지 못할 것”이라며 “하마스는 3~6주 동안 이스라엘 지상군이 침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연료, 식량 및 기타 필수품을 땅굴에 비축해 놓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언젠가 보급품이 고갈되고 발전기 연료가 부족해 지하에 신선한 공기와 조명이 들어오지 않으면 하마스는 결국 지상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이스라엘이 전면전에 나서지 않는 또 다른 배경으로는 220여명의 인질과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피해가 거론된다. 28일까지 4명의 여성 인질만 석방된 가운데, 이스라엘 측은 하마스와 채널이 있는 카타르를 통해 인질 석방 협상을 지상작전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일각에선 장기작전의 성과가 예상을 밑돌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중동안보 전문가인 대니얼 바이만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28일 게재한 포린폴리시(FP) 기고문에서 “이스라엘이 가지지구 북부를 점령하더라도 하마스 지도자들은 나머지 지역에 숨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미 하마스 고위급 중 상당수는 가자지구가 아닌 카타르·터키·레바논 등 훨씬 안전한 지역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 전부터 서안지구는 최악 상황
가자전투가 장기화하는 과정에서 확전도 우려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전쟁 발발 전까지 이스라엘군은 서안지구에 거의 매일 공습을 감행하는 등 2005년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봉기) 이후 최악의 상황이었다”며 “서안지구를 통제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취약성 등을 고려하면 또 다른 전선이 서안지구에 형성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뿐만 아니라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세력 헤즈볼라의 도발도 확전에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헤즈볼라는 이번 전쟁 초반부터 이스라엘 북부 국경 지역에서 로켓을 쏘는 등 규모는 작지만 산발적인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이란이 배후로 의심되는 공격도 늘고 있다. 27일까지 이라크(2500명 주둔)와 시리아(900명 주둔) 내 미군 기지 등에 대해 12건 이상의 무인기(드론) 및 로켓 공격이 보고됐을 정도다.
미국이 중동에 계속 군사력을 확대하는 것도 이런 확전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오히려 미국이 확전에 말려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FT는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여기에 이란과 이란의 대리인, 궁극적으로 미군이 개입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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