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혁명' 주역 "홍콩에 더는 민주주의 없어…시민들 '일상 저항'중"
2014년 홍콩의 민주화 운동 ‘우산혁명’의 주역인 찬킨만(陳健民·64) 대만 국립정치대 교수는 홍콩의 대표적인 행동파 지식인으로 꼽힌다. 홍콩 중문대 부교수 시절인 2014년 중국을 상대로 홍콩 행정장관의 직선제를 요구하는 ‘도심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 운동을 동료 교수들과 기획했다. 지난 2019년 구속돼 11개월 간 옥고를 치렀던 그는 출소 이후 대만으로 건너가 사실상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지난 27·28일 주최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러 방한했던 찬 교수를 26일 서울대에서 만났다. 그는 “지금 홍콩에선 시민들이 거리가 아닌 카페·일터에서 ‘일상적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찬 교수는 “2019년 도입된 홍콩 국가보안법(보안법)에 따라 ‘외국 세력과의 결탁’도 범죄로 처벌한다. 외신 인터뷰도 홍콩 사람이 홍콩·중국 정부를 공격하는 말을 해선 안 된다는 의미”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럼에도 그가 쏟아내는 말엔 거침이 없었다.
현재 망명 중이다. 밖에서 지켜보는 홍콩의 상황은 어떤가.
A : 친구이자 홍콩 당국에 의해 폐간된 언론 빈과일보(蘋果日報) 사주 지미라이(黎智英)는 홍콩 보안법으로 1000일 넘게 구금된 상태다. 아직 재판을 받지도 않았다. 이 법에 저항하는 교사 약 3000명은 학교에서 퇴출당했다. 모두 은퇴가 한참 남았었다. 이런 걸 보면 홍콩엔 더이상 민주주의가 없다고 느낀다. (중국이 약속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도 아니다. 중국의 또 다른 도시일 뿐이다.
Q : 민주화 운동의 동력도 사그라들었다고 보나.
A : 겉으로 볼 땐 쇠퇴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라졌다고 보긴 어렵다. 현재 홍콩 민주화 운동은 ‘일상적 저항(everyday life resistance)’으로 전환되고 있다. 민주화 시위가 거리에서 카페·일터로 옮겨갔다. 민주화 운동가를 몰래 후원하거나 교도소에 구금된 운동가들을 줄서서 면회하는 식이다. ‘노란(우산을 의미) 경제 순환’이라는 기업 후원, 불매 운동도 해당된다. 젊은 세대는 소셜미디어에서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Hongkonger)”이라고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찬 교수가 이끈 2014년 우산 혁명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비폭력 시민 불복종’이란 의미에서 노란 우산을 들고 나왔다. 조슈아 웡(黃之鋒) 등 대학생들이 가세해 세계에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알렸다.
중국 정부와 홍콩 당국은 홍콩 보안법을 도입하는 등 처벌을 강화했다. 찬 교수는 “우산 혁명은 당국의 단속 의지 앞에 비폭력 시위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줬다는 점에서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어 “그런 면에서 한국은 아시아의 민주주의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라고 덧붙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A : 한국은 아시아에서 몇 안 되게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여서다. 서구는 과거 “아시아에선 민주주의가 자생하기 어렵다”“유교 가치관을 가진 아시아 국가에서 ‘야당이 있는 정치체제’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과 대만이 민주주의 정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국은 야당 정치가 활발하게 살아 있다. 야당이 매우 약한 일본과 비교해보면 극명하다.
Q : 홍콩 젊은이들이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A : 많은 홍콩 민주화 운동가들이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고 배우려고 한다. 이들 사이에선 영화 ‘변호사’, ‘택시 운전사’, ‘1987’ 등 한국 민주화 역사를 그린 영화들이 인기다.
한국의 민주주의에도 끊임없는 위협·도전이 있다. 조언할 점은.
국제투명성기구(TI)의 올해 국가 청렴도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 1위는 싱가포르, 2위가 홍콩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민주주의 국가인가. 정부는 청렴하다해도 사실상 일당독재에 가깝지 않나.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정작 이 순위는 비교적 낮아 아시아 5위·세계 31위였다. 한국이 부패 문제에선 뒤처지고 있다는 의미다.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문상혁 기자 moon.sanghy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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