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일본 고객은 왜 車회사에 손편지를 썼을까
지난해 재진출 후 전기차 구매·출고·정비거점
"부담 줄이고 정비 촘촘히…고객여정 함께"
친환경 자재 쓰고 정비 과정 투명히 공개
EV라이프로 고객 초청…현지 스며드는 전략
"마켓셰어 아닌 마인드셰어에 더 신경써"
일본 규슈에 사는 한 70대 노인이 얼마 전 전기차 아이오닉5를 샀다. 현대차는 지난해 일본에 다시 진출하면서 현지에선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던 터였다. 노인은 아이오닉5를 처음 보고 마음에 들었으나, 그간 차는 물론 다른 제품도 온라인 구매가 익숙지 않았기에 처음엔 걱정했다. 요코하마에 있는 현대차 고객경험센터(Customer Experience Center, CXC)에 들러 직원에게 설명을 듣고 사기로 결정했다.
전기차가 처음이었던 만큼 다른 차에 없는 기능이나 특징, 충전 방법에 관해서도 세세히 들었다. 구매 후 집으로 돌아가고 며칠 후 노인은 조원상 현대차 일본법인장(현대 모빌리티 재팬 대표)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온라인으로 6000만원을 쓴 경험이 짜릿했던 점, 차를 사고난 후 본인 삶 전반이 활력을 띠게 돼서 고맙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조 법인장은 "현대차만의 오모테나시(환대)를 알아주는 듯해 뭉클해 나도 손편지로 답장을 썼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찾은 현대 CXC요코하마는 현대차가 일본 사업을 12년 만에 다시 시작하면서 갖춘 복합거점이다. 차량 구매 상담을 비롯해 출고, 정비 등 새 차를 사기 전부터 이후까지 전 과정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다. 조 법인장은 "차를 사기 전 앞단에선 고객이 저항감,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하고 차량 관리·정비 등 뒷단은 촘촘히 하고자 했다"며 "차와 관련한 전·후방 ‘여정’을 함께 제공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CXC요코하마는 과거 창고로 쓰던 건물을 그대로 두고 안팎으로 일부만 손봤다고 한다. 1층 쇼룸 벽면은 편백나무를 재활용한 자재를 썼다. 일본에선 전용전기차 아이오닉5, 수소연료전지차 넥쏘 등 친환경차 위주로 들여왔는데 고객경험공간 역시 환경친화적인 인상을 강조했다. 실내에선 현지 유명 조향사가 편백나무를 중심으로 만든 방향제를 써 숲속에서 맡을 법한 향을 은은히 풍긴다.
차량 정비공간 역시 흔히 보는 칙칙한 풍경이 아니다. 배출가스가 없는 데다 애초 공간을 설계할 때부터 차량 정비 전 과정을 고객이 오롯이 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1층 쇼룸은 물론 2층에 있는 라운지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구조다. 여기에다 워크베이(정비작업장)마다 카메라를 설치, 정비상황을 실시간으로 가까이에서 보여준다.
이곳을 만들면서 공들인 공간 가운데 하나가 납차공간이다. 고객이 신차를 넘겨받을 때 1시간가량 차량에 관해 알려주고 축하해주는 곳이다. 자세하게 설명 듣기를 좋아하는 현지 문화를 감안했다고 한다. 현지 안내를 맡은 우치다 유지 세일즈 스페셜리스트는 "다른 브랜드에선 이런 장소가 없는데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독특하고 세밀하게 신경 쓴 방식이라 고객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보고 2~3시간 거리를 넘어와 출고식을 즐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 법인장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유럽, 중국 등 전 세계에서 일해 본 마케팅 전문가다. 일본은 과거 어린 시절 산 적이 있고 이번에 다시 진출하면서 현지 사업을 맡았다. 전 세계 어느 시장보다 까다로운 곳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각종 관세·비관세 장벽은 물론 좁은 길·주차장, 보수적인 소비자 성향 등 외산 자동차에겐 불리한 여건투성이다.
재진출 첫해인 지난해 아이오닉5가 현지에서 올해의 수입차를 받는 등 전문가 집단에선 가치를 인정받았다. 다만 완고한 일본 소비자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이후 1년여간 판매량은 700여대 정도. 조 법인장은 "다시 일본에 진출하면서 ‘마켓셰어’보다는 ‘마인드셰어’에 더 신경 쓰겠다고 마음먹었다"며 "일본 고객 사이에서 ‘현대’라는 브랜드를 인정받는 것이야말로 현지에서 한국을 대표해 얻을 수 있는 가치라고 여겼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용 전기차를 비롯해 파생 모델, 고성능 전기차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후광효과를 내면서 프리미엄 이미지를 갖춰가고 있다"며 "당장의 판매를 늘리기 위해 현지 업체와 딜러망을 확충하고 광고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식의 사업방식도 일본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차원의 전략을 우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인 사이에선 나지무(馴染む), 즉 서로에게 익숙하거나 친숙해지는 접근방식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차를 팔기보다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제안하는 것에 가깝다. 조 법인장은 "차량공유나 렌터카 등을 통해 직접 전기차를 접하게 하거나 차량 점검, 소소한 정비에서 드는 비용은 회사가 부담하겠다는 보증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현지 소비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기반부터 하나하나 다져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친환경차를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사업방식이 어디에서도 시도해보지 않은 만큼 일본에서의 경험이 중장기적으로 전사 차원에서 전략적 자산이 될 가능성도 있다. 과거 비행기표를 살 때 여행사를 거치는 이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애플리케이션으로 하는 이가 많아졌듯, 신차 구매 역시 앞으로 바뀔 것으로 보고 미리 경험을 쌓는 것이다.
조 법인장은 "자동차 판매 역시 디지털화(化)할 텐데 고객의 구매 여정 전반을 그런 맥락에서 관리하는 게 큰 과제"라며 "쉽지 않은 일본 시장에서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는 만큼, 다른 업체에 비해 판매가 부진하다는 지적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요코하마=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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