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뮤지컬 5000억 시대…1세대 제작자 박명성이 본 '위험신호'

나원정 2023. 10. 2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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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 출발, 신시뮤지컬컴퍼니 설립
40년간 뮤지컬 100만 관객 시대 다져
올 전국체전‧장애인체전 개폐회식 연출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전남 일대에서 열린 제104회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의 개폐회식 총연출을 맡았다. 사진은 현장을 지휘 중인 박 대표의 모습이다. 사진 신시컴퍼니

“상업적인 수단이 작품의 수준을 높일 순 없는데, 요즘은 한 배역에 네다섯명까지 캐스팅해요. 문제가 있죠. 여러 배우가 나눠 하다 보면, 각각의 연습량이 줄어 작품성이 저하될 수 있거든요.”
1세대 뮤지컬 프로듀서 박명성(60) 신시컴퍼니 대표의 우려다. 그는 1982년 연극배우로 데뷔, 조연출‧프로듀서‧제작사 대표까지 공연 경력 40년 차. 지난 23일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만난 그는 기록 행진 중인 한국 뮤지컬계에 “스타 위주보단 작품 본연에 충실한 작품으로 관객에게 접근해야 한다. 조심스러운 시기”라고 직언했다.


뮤지컬 시장 5000억 시대 "위험신호 보인다"


2019 시즌에 돌아온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_도나(최정원)_타냐(홍지민)_로지(박준면) [사진 신시컴퍼니]
올해 국내 뮤지컬 시장 규모는 사상 최초 연간 티켓 판매액 5000억원 시대를 맞을 거로 내다본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뮤지컬은 지난 한해 이미 사상 최고 매출 4253억원을 달성했다. 4000억원을 넘은 건 처음이다. 팬데믹 기간 피해가 컸던 공연계가 억눌린 관람 욕구가 폭발하며 오히려 팬데믹 전보다 팽창했다.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한 뮤지컬도 올 3월 ‘영웅’, 9월 ‘레베카’가 합세하며 총 열 편이 됐다. ‘명성황후’(2007년) ‘캣츠’(2009년) ‘맘마미아!’(2010년) ‘오페라의 유령’(2013년) ‘지킬 앤 하이드’(2014년) ‘노트르담 드 파리’(2016년) ‘시카고’(2018년) ‘아이다’(2022년) 등 2~3년에 한편꼴에서 올해 처음 한해 두 편이 탄생했다.
신시컴퍼니는 관객 200만을 넘어선 ‘맘마미아!’와 ‘시카고’에 이어 지난해 ‘아이다’가 초연 17년 만에 100만을 기록하며 세 편의 밀리언셀러를 보유하게 됐다. 박 대표는 “연간 뮤지컬 공연 작품 수로 런던‧뉴욕 다음이 서울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전 세계가 놀랄 만큼 급성장‧팽창했다”면서도 “올여름부터 뮤지컬계에 위험 신호가 보인다”고 긴장감을 드러냈다.
지난 5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열린 뮤지컬 '시카고' 오리지널 내한 프레스콜 행사에서 출연진이 공연 일부를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뮤지컬이 마니아 위주에서 대중으로 관람 저변이 확대되면서 경기를 타는 것 같다. 하반기 들어 조금 침체기가 보인다”면서 “인지도 있고 검증된 작품만 살아남고 초연은 선택받기 힘든” 양극화를 지적했다. 대작 공연이 늘면서 대관 경쟁이 치열해졌고, 팬데믹을 거치며 대관료가 급등하면서 전석이 매진돼도 적자를 간신히 면하는 작품도 생겨났다고 한다.

해남서 씻김굿 매료된 농부 아들, 뮤지컬 선구자로


2011년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과 신시컴퍼니 대표 박명성이 함께 인터뷰에 나섰다. 중앙포토
올해 신시 뮤지컬도 ‘마틸다’ ‘맘미미아!’ ‘시카고 오리지널 내한(공연)’ 등 유명 뮤지컬들은 캐시카우 노릇을 했지만, K걸그룹의 시초를 되짚은 쇼 뮤지컬 ‘시스터즈’ 초연은 흥행이 부진했다. 박 대표는 “박칼린 감독과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건데 초연이라 인지도가 없었다”면서 “그래도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고 연극도 지속해서 해야죠. 그래도 저희는 대박 콘텐트들을 갖고 있거든요. ‘맘마미아!’ ‘시카고’ ‘아이다’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이런 작품들에서 수익을 내서 창작 뮤지컬에 도전하는 거죠.”
그는 국내의 정식 라이선스 뮤지컬 시대를 이끌었다. 전남 해남 농가의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 차범석 연극 ‘산불’(1979)에 사로잡혀 무대 위 삶에 뛰어들었다. 극단 신시에서 배우로 출발해 조연출‧기획으로 발을 넓혔다. 98년 문화예술위원회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뮤지컬 본고장 뉴욕‧런던에 연수를 다녀오며 체계적인 브로드웨이식 제작 시스템을 접한 걸 계기로 99년 극단 신시를 신시뮤지컬컴퍼니(2009년 신시컴퍼니로 변경)로 전환, 이듬해 대표까지 맡게 됐다.
2003년 뮤지컬 '렌트'의 한장면. 중앙포토
박 대표는 “그전만 해도 주먹구구식이 많았다. ‘아가씨와 건달들’ ‘넌센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같은 작품을 라이선스 없이 무단 공연했다. 뮤지컬을 라이브가 아닌 녹음으로 공연하던 시대였고 다른 배우가 녹음한 노래를 그냥 사용하기도 한, 우스운 시대였다”고 돌이켰다.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작사‧작곡가에게 많은 정보와 도움을 받고 오리지널 무대장치를 공수하면서 한국 관객 눈높이가 높아졌다. 해외 배우들과 협업하면서 우리 배우들도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뮤지컬 도약 계기를 짚었다.

신인 배우 사관학교…대표작은 '렌트' '햄릿'


지난해 7월1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햄릿'. 6년전 연출가 이해랑 탄생 100주년 공연 '햄릿'에서 6번째 햄릿 역을 맡았던 배우 유인촌이 당시 비정한 숙부 클로디어스로 출연했다. [사진 신시컴퍼니]
1998년 그는 첫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뮤지컬 ‘더 라이프’를 가져왔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2200석을 매진시키며 자신감을 얻어 브로드웨이에서 도발적인 신작으로 주목받던 뮤지컬 ‘렌트’를 2000년 국내 초연했다. 동성애, 에이즈, 마약중독, 거리의 부랑아 등 당대 한국에선 금기시된 소재지만 “젊은이들의 사랑, 꿈과 희망”의 메시지가 관객과 통하며 효자상품이 됐다. 다음 달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9번째 시즌이 개막한다.
박 대표는 ‘렌트’를 가장 ‘신시다운 뮤지컬’로 꼽았다. “이런 파격적인 이야기에도 한국 관객이 공감하는구나, 했다. ‘렌트’ 자체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틀과 형식을 부쉈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하는 혁신적인 작품”이라고 돌이켰다.
‘렌트’는 재능있는 20대 배우들을 대거 데뷔시키며 국내에서 ‘배우 사관학교’라 불린 작품이다. “표가 좀 덜 팔려도 신인을 과감하게 기용한다. 새로운 인재 발굴‧양성이 한국 뮤지컬 미래의 핵심”이라 믿는 박 대표는 이후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등 어린이 주연 극으로 뮤지컬 새싹까지 키워왔다. “어려서부터 뮤지컬을 많이 봐야 소양을 쌓고 문화 강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소년 빌리(오른쪽) 성인 빌리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와이어에 매달려 공중에서 추는 플라잉 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신시다운 연극’으로 2016년과 지난해 손진책 연출로 올린 ‘햄릿’을 들었다. 배우 권성덕·전무송·박정자·손숙·정동환·김성녀·유인촌·윤석화 등 원로와 젊은 배우들이 뭉쳤다. 박 대표는 “제가 딱 중간세대다. 신구 세대를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영화 '취화선' 연극으로, 씻김굿 현대 뮤지컬화 꿈꿔


신시컴퍼니는 조정래의 1994년 동명 대하 소설을 토대로 창작 뮤지컬 '아리랑'을 제작했다. 2015년과 2017년 두 차례 공연했다. [사진 신시컴퍼니]
현재 신시에선 ‘햄릿’ 뮤지컬판, 화가 장승업을 그린 영화 ‘취화선’의 연극 작품도 준비 중이다. 내년엔 차범석 탄생 100주년 기념 연극 ‘산불’도 공연한다. 배삼식 작가가 새롭게 각색하고 손진책 연출, 박 대표가 프로듀서를 맡는다. 국내 공연 판권이 만료된 뮤지컬 ‘아이다’는 디즈니가 새롭게 매만진 버전을 최근 네덜란드에서 확인했지만, 향후 국내 공연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뮤지컬 '아이다'에서 극을 이끄는 두 주인공을 맡은 김수하와 민경아. [사진 신시컴퍼니]
박 대표는 지역 공연문화 융성도 과제로 꼽았다. 고향 전남에서 15년 만에 이달 중순 열렸던 전국체전 개‧폐회식 연출을 맡아 남도 소리꾼과 K팝 무대, 드론 쇼가 어우러진 무대를 만든 배경이다. 환경 파괴로 인한 자연의 분노‧경고를 전통 소리꾼의 해설, 뮤지컬의 첨단 무대 기술, 관객과 소통하는 마당놀이 요소를 살려 풀었다. “고향 마을이 해남 우수영 울돌목, 명량대첩이 일어난 곳이다. 다리만 건너면 진도여서 씻김굿‧북춤 하는 날은 꼭 보러 갔다”는 그다. “수도권과 지역 문화 예술에 대한 격차가 너무 크잖아요. 호남에 보물 같은 전통문화가 많은데 씻김굿을 현대적 뮤지컬로 해본다든지, 활성화하고 현대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몇천년 전 이야기를 최첨단 무대에 올린 ‘아이다’가 옛날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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