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특별법’ 여야 충돌지점…특별조사위 구성은 공정한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공식 명칭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이다.
표현 그대로, 지난해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규명해 이 같은 대형 참사의 재발을 막고,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법안이다.
이 법안은 지난 4월 20일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진보당·기본소득당 등 야 4당이 공동 발의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원안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자 민주당 주도로 8월 30일 수정안을 확정했다.
하지만 이태원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태원 특별법의 쟁점은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의 공정성 문제, 피해자 인정 범위의 모호성, 법 자체의 필요성 여부 등 세 가지로 압축된다.
난제로 지목됐던 피해자 추모공원 조성이나 배상 문제, 의료지원금 등과 관련해 현재 단계에선 특별한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향후 논의가 진행될 때 쟁점이 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은 “이태원 특별법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주최자 없는 축제의 안전관리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의 조속한 처리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현재 이태원 특별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태원 특별법 통과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고수할 경우, 법안 처리에 걸림돌은 없다.
민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지난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태원 특별법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패스트트랙 법안은 ‘상임위 180일 이내→법사위 90일 이내→본회의 60일 이내 상정’ 단계를 밟아 최종 처리까지 최장 330일이 소요된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8월 31일 국회 행안위에서 단독으로 이태원 특별법을 의결해 상임위 관문을 통과했다.
남은 절차는 법사위와 본회의다.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법사위에서 법안 통과를 막는다고 하더라도 법안은 법사위에서 90일만 머물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국회 행안위에서 법사위로 이태원 특별법이 넘어온 날은 8월 31일이기 때문에 법사위 심사 기간(90일)이 끝나는 날은 오는 11월 28일이다.
이런 절차를 따르면 이태원 특별법은 11월 29일 본회의에 부의된다. 이 또한, 여야 충돌로 시한(60일) 내 본회의 상정이 되지 않을 경우, 60일을 완료한 내년 1월 28일부터 본회의에 자동상정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르면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태원 특별법을 직권상정하지 않거나,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1월 말·2월 초가 유력하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당이 밀어붙인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지 여부가 내년 4월 눈앞에 둔 연말·연시 정국에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여야가 가장 충돌하는 지점은 진상규명을 담당할 특별조사위 구성 문제다.
특조위가 구성될 경우 직권으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조사를 수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자료 및 물건의 제출명령, 고발·수사요청 권한을 지닌다.
특히 특조위는 특별검사 수사가 필요할 경우 국회에 요청할 수 있다.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이태원 특별법은 특조위원을 11명으로 구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이 1명, 여당이 4명, 야당이 4명을 각각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나머지 2명은 유가족 단체에서 추천한다.
이 같은 특조위 인적 구성은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설득하기 위해 일부 내용을 변경한 수정이다.
당초 원안에서 특조위원은 17명이었다. 여당 측 3명과 야당 측 3명, 유가족 측 3명 등 모두 9명이 모여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추천위원회에서 특조위원을 추천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추천위원회 규정이 삭제되고 특조위원 인원수와 추천 방식이 달라졌다.
하지만 수정안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은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유가족 단체 추천 인사 2명과 민주당 출신 김진표 국회의장이 추천할 인사 1명 모두 야당 성향 인사가 될 것이라는 것이 국민의힘의 주장이다.
국회 행안위 소속 이만희 의원은 지난 8월 31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11명 조사위원 중 (여당 측) 4명, (야당 측) 7명으로 구성해 놓아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현재 법사위에 계류된 이태원 특별법의 피해자 범위에는 희생자의 배우자, 직계 존·비속, 형제·자매가 포함돼 있다.
여야가 갈등을 벌이는 대목은 ‘피해구제심의위원회’의 문제다.
가족을 제외한 경우 피해구제심의위원회가 피해자로 지정할 경우 피해자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초 원안에는 희생자의 ‘3촌 이내의 혈족’도 피해자의 범위에 넣었다. 예를 들어 이태원 참사로 조카를 잃은 삼촌까지 피해자로 인정해 보상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반발로 수정안에서는 3촌 이내 혈족 조항은 삭제됐다.
또 ‘참사 당시 체류자, 구조·수습 활동 참여자, 사업장 운영자’ 등도 피해자 범위에 포함됐다가 수정안에서는 빠졌다.
그러나 피해구제심의위원회가 이들을 피해자로 인정할 경우 피해자에 포함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2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피해구제심의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피해자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고 심의위에서 지정하면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어 인정 기준이 더욱 모호해졌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는 “꼭 가족만 피해자라고 한정 지을 수 있나”라며 “참사 당시 구조에 참여했거나, 길거리에서 참사 장면을 목격한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국민도 많다”고 반박했다.
유일하게 다행스런 대목은 피해자 추모공원 조성이나 배상 문제, 의료지원금 등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는 점이다.
다만 ‘이태원 특별법 자체가 과연 필요한 법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놓고 여야는 심각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이태원 특별법은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여당을 궁지에 몰기 위한 정략적 의도를 가진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월 31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참사 발생 이후 경찰에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수사했고 용산경찰서장·용산구청장 등 23명이 사법처리돼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이만희 의원도 같은 회의에서 “이태원 특별법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유도해 대통령에 비난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이라며 “이태원 참사마저 외면한다는 식으로 정부·여당에 비정한 프레임을 씌워 정략적으로 총선용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생각은 다르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진상규명이 다 됐다’고 주장하지만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최근 진상조사 필요한 과제들을 따로 발표할 정도로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그런 의문을 풀어주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다른 의원은 “특별수사본부 등에 기소 의견을 올려도 대검찰청에서 틀어쥐고 있어 경찰·소방 하급직들만 ‘꼬리 자르기’ 당했지, 서울경찰청장 등 책임 있는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민지 이동환 박성영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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