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브로드웨이에 도전장 내민 韓개츠비…벌써 뜨거운 현지반응
뉴저지서 마지막 관문 '트라이아웃' 공연, 전석 매진
내년 6월 브로드웨이 진출 목표
"이 작품이 브로드웨이에서 통하겠냐고요? 당연하죠. 아니라면 미친 거예요(That will be crazy not to)."
미국 브로드웨이 도전에 나선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처음 공개된 지난 22일(현지시간) 밤, 뉴저지 밀번의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 만난 나탈리 씨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굉장했다(amazing)"고 감탄을 쏟아냈다.
위대한 개츠비의 여주인공 데이지를 연상시키는 머리 장식을 한 그는 이 작품을 보기 위해서 어머니인 진, 딸인 캐롤라인과 함께 1920년대 복장을 맞춰 입고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왔다. 최근 몇 년간 이 극장에 올라오는 주요 공연을 대부분 봤다는 진 씨는 "노래, 무대, 연기, 연출 모두 감탄스럽다. 월드 프리미어로 봤다는 것도 기쁘다"면서 "브로드웨이에서 꼭 볼 수 있길 바란다"고 미소 지었다.
나탈리 씨 가족 3대가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남긴 여운을 잊지 못하고 굿즈 구입에 여념이 없을 때, 극장 안에서는 한 한국인 남성이 축하 세례 속에 서 있었다. ‘맨 오브 라만차’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등을 만든 한국의 대표적인 뮤지컬 제작사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프로듀서(대표)였다. 신 대표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소설을 뮤지컬화 한 이 작품의 '단독 리드 프로듀서'로서, 미 현지에서 기획부터 개발까지 제작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공식 오프닝나이트'인 이날은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꿈의 무대'인 뉴욕 브로드웨이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거치는 관문인 이른바 '트라이 아웃(Try-out)' 자리였다. 토종 한국인 뮤지컬 프로듀서가, 누구나 다 알법한 대표적인 미국의 이야기로 브로드웨이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공연을 앞두고 극장에서 만난 신 대표는 '왜 하필 개츠비냐'라는 질문에 "개츠비에 대한 해석, 평가는 누구나 다를 수 있다"면서도 "꿈과 목표, 사랑을 향한 인간들의 이야기다. 이는 지금 시대에도 유효한 키워드"라고 답변했다. 서사가 가진 보편성의 힘을 중시한 것이다. 1925년 출간된 이 소설은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매혹적인 스토리 중 하나로 꼽힌다. 신 대표가 제작한 뮤지컬 역시 소설의 줄거리에 충실했다. 다만 제삼자의 시선으로 풀어나가는 소설과 달리, 뮤지컬에서는 개츠비와 데이지가 직접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화려하고 격동적인 재즈 시대를 담아낸 첫 넘버 '로링 온(Roaring On)'은 극장 안 관객들을 즉각 1920년대로 데려간다.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그리움을 담은 넘버 '그녀를 위해(For her)'가 끝나자 감동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반면 데이지와의 재회를 앞둔 개츠비가 잔뜩 긴장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겨우 차 한잔(Only tea)'에서는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개츠비와 데이지가 함께 부르는 1막의 하이라이트 '나의 그린라이트(My green light)'가 이상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보여준다면, 2막의 마지막 넘버 '파이널: 로링 온'은 물질만능시대의 일그러진 탐욕과 그 속의 허망함을 드러낸다.
브로드웨이 베테랑들로 구성된 출연진은 이 모든 장면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데 톡톡히 한몫했다. ‘뉴시즈’, ‘보니 앤 클라이드’ 등에 출연한 제레미 조던이 제이 개츠비 역을 맡았고, 영국 웨스트엔드 '미스 사이공' 25주년 특별 무대에서 홍광호와 함께 출연해 한국 뮤지컬 팬덤에도 익숙한 에바 노블자다가 데이지 뷰캐넌 역으로 분했다. 개츠비의 화려한 저택, 맨해튼 할렘의 낡은 아파트, 아기자기한 닉의 코티지까지 장면 전환 연출도 매끄럽다. 스스로를 뮤지컬 빅팬이라고 소개한 알리시아 씨는 "귀에 맴도는 노래, 멋진 연기, 웅장한 세트, 화려한 의상까지 환상적(phenomenal)"이라며 "분명하게 말해, 대형 브로드웨이 작품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오는 11월12일까지 예정된 트라이아웃 공연은 이미 전 회차, 전 좌석(1200석) 매진 상태다. '뉴시즈', 디즈니의 '헤라클라스' 등 수많은 뮤지컬이 트라이아웃 단계에서 거쳐 간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도 1934년 개관 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 극장은 위대한 개츠비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제작비 120만달러도 투자한 상태다. 신 대표와 오디컴퍼니는 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증액을 거듭하며 당초 예산(300만달러)의 두배인 600만달러가량을 투입했다. 그만큼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막판까지 투자를 아끼지 않은 셈이다.
공식 첫 공연날 극장을 찾은 관객 중 상당수는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주, 관련 업종 종사자들이었다. 날카로운 이들의 눈에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뮤지컬 마케팅업계에 종사하는 앤드류 씨는 "기대했던 대로 굉장히 멋졌다(stunning)"면서 "브로드웨이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현지 매체인 NJ어드밴스 미디어는 공연 리뷰를 통해 "흥분과 드라마로 가득찬 뮤지컬 각색"이라며 "강 건너 (뉴욕 브로드웨이) 성공의 전조일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전했다. 브로드웨이월드는 "뛰어난 월드 프리미어"라며 "출연진은 완벽하고, 제작팀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반면 짧은 공연시간 소설 줄거리에 충실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풍성하지만, 내러티브에서 모험심이 없다", "부, 계급 등 피츠제럴드의 깊고 어두운 주제를 무대 위로 올리기엔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지적됐다.
한국인 최초 브로드웨이리그 정회원인 신 대표가 '뮤지컬 본고장' 브로드웨이 도전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내 소리 들리면 소리쳐(Haller If You Hear Me)’와 ‘닥터 지바고’를 올렸지만, 뼈 아픈 실패를 겪었다. 트라이아웃 단계에서 멈췄던 작품까지 포함하면 이번이 ‘3전4기’ 도전이 된다. 그는 "과거엔 마음이 급했고, 경험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번엔 모든 과정을 충실히 밟았고, 내가 단독 리드 프로듀서로서 흔들리지 않고 끌고 나갔다"면서 "진행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현장의 분위기가 있다. 이제는 보여줄 시기가 됐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때 브로드웨이에서의 실패로 크게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붓는 과정에서 '그걸 대체 왜 하냐'는 말도 수없이 들었다. 그럼에도 '돈키호테'처럼, 데이지만을 향한 '개츠비'처럼,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거듭해온 이유는 뭘까. 그는 "당연히 시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개발비처럼 버는 것 없이 투입되는 공연제작비를 '돈'이라고만 생각했다면 결코 브로드웨이의 문을 두드리지 못했을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브로드웨이의 누군가는 뮤지컬을 '돈'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꿈'이라고 말한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는 내년 6월 이후 브로드웨이 입성을 기대하고 있다. 단지 입성에 그치지 않고, 롱런하는 작품으로 남는 것이 목표다. 며칠 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만난 신 대표는 공연을 관람한 극장주, 투자자들과의 만남 이후 좀 더 자신에 찬 모습이었다. 그는 "한국 뮤지컬은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K팝, K클래식 등처럼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점점 존재감을 키워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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